好學의 智慧묵상/[지혜묵상]신앙지혜

전심으로 사는 남자

好學 2012. 10. 3. 20:41

전심으로 사는 남자

열왕기하 10:31~32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보통 사람들은 몇 가지 등산로 중 자기가 선택한 코스를 따라 올라가게 된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만 하면 큰 성취감을 맞보게 된다. 그러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은 코스 선택의 자유가 없다. 정해진 코스대로 달려가야만 정당한 경기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달리기 역시 단거리이건 중거리이건 장거리건 간에 정해진 목표를 향해 전심으로 달려가야 한다. 단거리 선수는 숨을 참아가며 단 숨에 달려가야 승리한다. 장거리 선수라고 방심할 수는 없다. 역량을 잘 조절하여 끝까지 완주를 목표로 할 때 승리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정해진 목표가 있다. 정해진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심(concentration of mind)이 필요하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아합왕가를 심판하도록 예후를 사용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큰 보상을 내리셨다. 곧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오래토록 왕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약속을 하신 것이다(왕하10:30). 이러한 약속은 어떤 왕조도 3대, 즉 50년 이상을 유지하지 못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함으로(왕하10:31) 제한된 축복을 주셨다. 예후에 대한 보상과 징벌을 동시에 주신 것이다. 예수는 완전한 종교개혁을 하지 못했고,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에 대한 숭배를 멈추지 못했다(왕하10:29). 이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양면적이고 미온적인 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예후가 “전심(원어적의미, ‘가장 깊은 내부의 마음에 열중하라’)으로” 섬기지 못하였다는 것은 자신의 개혁에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 즉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에 대해 책망을 하신 것이다. 예후는 바알종교를 척결하고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은 단행했지만 정작 스스로의 종교개혁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미약했을 때보다 신앙성장이 이뤄진 이후 더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는 쉬운데 자기 스스로는 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일학교 교사나 순장이 되어 누군가에게 권면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는 말씀을 외면한 채로 사는 것이다. 가정에서 남자들이 아버지노릇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때가 있다. 자녀들에게는 이것도 해서는 안되고 저 것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본인은 아무렇게나 생활한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진리의 잣대를 갖다 대지만, 스스로는 합리주의 우산아래서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다.

전심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쓰는 것이다. 예후는 길고 험난한 마라톤 코스를 다 달려왔지만, 그가 달려온 길은 자주 코스에서 벗어나 엉뚱한 길로 우왕좌왕했다. 결국 골인지점 앞에서 탈락의 경고를 받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남자들이여, 그대는 스스로에게 냉정한 사람인가? 아니면 자신을 우상처럼 여겨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태도들이야말로 탁월하고 모범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가? 다른 사람을 속이려면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따르지만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혹시 나에게도 예후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붙드는 것들이 있진 않은지 살펴보자. 특히 익숙한 옛 습관들과 불필요한 욕망들이 있다면 단호하게 개혁대상이 될 것이다. 이제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전심으로 사랑해주시고 온전한 사랑으로 축복해주시는 그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