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나야 할 남자들
누가복음 24:13~35
남자들은 크고 작은 교통사고 경험을 대부분 갖고 있다.
나의 과실로 인한 사고도 있지만, 누군가의 실수로 병원에 입원하여 큰 고생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성실하게 일하던 직장인이 회사의 부도로 실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 실수와 연약함으로 인한 고통이 아닌 외부환경으로부터 오는 고통에 대하여 남자들은 쉽게 좌절한다.
또한 남자들은 희망도 쉽게 갖는 반면 절망의 늪에도 쉽게 빠져든다.
내 인생의 희망을 걸었던 일들이 무너졌을 때 남자들은 좌절된 기대 앞에서 ‘이렇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라는 가슴 아픈 말들을 수없이 되뇐다.
한편 어려움 앞에 절망하는 남자들도 있지만 반항하고 거부하는 남자들도 있다. 출애굽기를 보면 출애굽을 거부한 바로와 출애굽을 시도하려는 모세와의 맞대결은 긴장감의 연속이다(출4:18~12:51). 결국 당시 가장 뛰어난 지략가들과 마술사들과 군사들을 보유한 바로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한 모세 앞에 굴복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출애굽은 시작되었다. 바로는 완강하고 완악한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 채 무장한 병사들을 병거에 태워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한다. 그러나 바로의 분노와 맹렬한 추격은 홍해에 잠수되어 실종되고 만다. 좌절된 기대 앞에서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일도, 반대로 바로처럼 분노하며 반항하는 일도 남자들에게는 고통이다.
글로바와 마리아로(요19:25) 추측되는 두 사람이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따랐던 두 사람은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예루살렘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엠마오 마을로 가고 있었다. 절망과 아픔의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무너진 기대를 가슴에 담고 있는 자의 발걸음보다 세상에 무거운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엠마오행 여행에 뒤늦게 동행한 한 남자의 “무슨 일이냐”(눅24:19)는 질문에 두 사람은 그 동안의 긴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자신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졌던 소망과 열정,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빈무덤이 가져온 절망에 대한 이야기들을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마치자 그 남자는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을에 도착하여 떡을 가지고 축사하며 떼어주는 순간 예수님이신줄 알아 보았지만 그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들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풀어주실 때”(눅24:32) 자신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그들은 절망으로 차가워진 마음이 뜨겁게 되어 힘을 얻었던 것이다.
남자들 역시 인생의 광풍이 몰아쳐 그 동안 세운 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 조난당한 인생처럼 당황해 한다. 그러나 삶의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남자들이 새로운 힘을 얻고 새롭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 또 다른 엠마오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펴서 그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기도의 무릎을 통해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이다. 위기와 절망 속에서 남자들이 엠마오로 가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면, 예수님은 다시 우리에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라고 물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전해주시고 삶의 문제를 풀어주시며 잃어버렸던 믿음과 인생의 열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남자들이여,
오늘도 혹시 엠마오 마을을 향해 힘없는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진 않은가?
절망은 우리의 부족한 생각, 어리석은 기대의 결과일 때가 많다.
예수님을 만나야 할 사람은 바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거친세상을 사는 남자들이다.
매일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할 때 우리는 엠마오로 향할 것이다.
엠마오가 아닌 우리에게 주신 꿈을 향해, 행복을 이뤄갈 가족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할 열방을 향해 지침 없이 달려가는 남자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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