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한 남자로 살아 가려면
민수기 19:1~10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마치 담장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선과 악의 경계선에 서 있는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조금만 치우치면 언제든지 불법과 탈세의 길로 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며 사업에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합리화될 수 있는 죄악은 없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이 죄악의 지뢰밭을 안전하게 뚫고 지나가기란 더없이 어려운 형편이다. 간혹 인생을 쉽게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 힘겨운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힘들기 때문에 잘못 살아도 된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 혹시 잘못된 일들을 행하면서 “가족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는가? 나에게는 잘못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자기 합리화에 빠지진 않았던가?
세상에 이유없는 무덤 없듯이 사연없는 범죄도 없다고 한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잘못된 습관과 죄악들을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문제 삼으며 사는 것이다. 정결하고 온전하게 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바로잡기 위해 회개를 통한 변화와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경건한 남자의 삶이다. 스스로를 온전하다고 여긴다면 그 자체가 교만이다.
민수기 19장에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 제물은 바로 죄로 죽어야 하는 나 자신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나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흠 없는 암송아지가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결예식에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서약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암송아지처럼 내가 죄를 범하였을 때 나도 이와같이 죽을 것이라는 생명의 서약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속죄제는 지난 날의 죄악에 대한 회개와 미래에 다가올 죄에 대하여 승리하겠다는 생명의 서약이다. 경건한 남성이라면 민수기 19장의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기 전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늘 나는 속죄제를 드리는 남성처럼 회개하고 결단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엄격하게 점검해보아야 한다.
많은 남성들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졌다. 죄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지고 자신의 욕구를 따라 살아간다. 오늘날 속죄제를 드리고자 하는 심정이 사라졌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 스스로 문제 삼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 이것은 남자들의 위기다. 스스로 고장난 브레이크와 핸들없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도 ‘나는 괜찮아’, ‘세상을 이렇게도 살아보는 거야’ 하며 무모한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남자들은 매일의 삶을 매일의 속죄제를 드리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수그리도의 대속사건을 오늘 나를 위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매일 샤워는 하면서 나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일들을 쉽게 잊어 버린다. 한번 스스로 진단해보자. ‘오늘 나의 삶을 어떠하였으며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합당한 생각과 행실을 가졌는가?’ 이렇게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나를 새롭고 정결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
남자들이여,
오늘 혹시 거울 속에 비쳐진 나의 정결한 외모를 보면서 흡족해했는가? 말씀의 거울을 통해 나의 마음과 생각도 비춰보았는가? 오늘 나의 대화, 나의 생각 중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었던 것은 몇 퍼센트나 될까? 매일 매일 나의 마음과 생각, 행동을 점검하자. 어긋난 인생이라면 되돌아 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되돌려 놓자. 마치 매일 샤워하듯 나의 일상을 정결하게 하자. 정결한 영혼은 아름다고 복되다. 남자들이 정결한 삶을 살려면 오직 예수그리도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요일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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