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박장대소拍掌大笑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好學 2012. 9. 18. 00:18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조카.

새해 황소 꿈은 꾸셨는가. 감기는 안 걸렸고. 여기는 남쪽이라 대청까지 볕드는 날엔 봄이 요 근방에 와 있는 양 등 언저리가 따사롭네.

나는 2009년이 소띠 해라 참 좋으이. 고집스러울 만큼 우직한 그 동물의 성품이 좋고, 우리 막둥이 진호가 소띠 해에 태어나 더욱 애착이 가네.

기억나는가? 우리 진호. 자네보다 한 살 많았던, 그리고 다운증후군을 앓았던. 소띠 해가 돌아올 적마다 나는 진호가 생각나 혼자 웃네. 그 애가 열두 살 때였을까. 나이 차 많은 큰딸이 시집을 가게 돼 그 댁에 상견례를 갔는데, 녀석이 대청에 앉자마자 스무 살 남짓한 사돈댁 처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겠지. 얼굴은 이쁘장한데 뭉툭한 코 끝이 딸기처럼 발그스레한 게 제 딴엔 이상했던 게야. 그예 처녀의 코 앞에 바짝 다가가서는 진지하게 물었지. "와, 소가 물어뜯더나?" 사부인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는데 면구스러워 똑 죽는 줄 알았다네.

동네에서도 유명했지. 별명이 '한시사십분'이었어. "밥 운제 묵었노?" 물어도, "아부지 오늘 멫 시 오시나?" 물어도 대답이 언제나 "1시40분"이었지. 속도 많이 썩였네. 주인 없는 사이 만화방 책을 공터로 죄다 끌고 나갔다가 경찰에게 잡혀오는가 하면, 저한테 방긋 웃어준 교회 집사님한테 장가들겠다며 집까지 따라 들어간 통에 애를 먹었지. 한번은 저를 놀리는 아이를 때려 코피를 터뜨렸길래 "고마 하늘나라 가재이, 어매랑 둘이 하늘나라 가불재이" 했더니 눈을 부릅뜨고 대들겠지. "싫다! 하늘나라는 무숩다, 캄캄하다" 하면서.

그러다 정말로 진호가 떠났을 땐 세상을 다 잃은 듯했네. 자네 고모부는 황소처럼 울었지. 장애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네 탓이니 내 탓이니 싸운다는데, 남편은 언제든 아이를 목마 태워 다니면서는, 신기해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기똥차게 안생겼습니꺼?" 하며 윙크를 날리던 호걸이었지. 만취해 들어온 날이면 "그래, 내한테도 듬직한 아들 있었제,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가 있었제" 하면서 자는 아이의 얼굴을 부비고 또 부볐지.

조카. 자네가 힘들다는 소식 들었네. 큰애가 대학에 실패했다고. 아니 학업엔 뜻이 없고 무슨 밴드인가를 결성해 음악을 한다면서. 매사 반듯한 자네에겐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겠지. 그럴 거야. 그런데 말이지, 그냥 아이의 선택을 믿고 지켜봐 주면 어떻겠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하네. 왜 우리는 아이들이 곁에서 함께 웃고 숨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지 못하는가. 돌아보니 바람 잘 날 없고 악다구니 끊일 날 없었어도 진호와 울고 웃었던 시간이 내 인생의 황금기였네.

조카댁을 잘 다독여주게. 당신 탓이 아니라고, 어깨 한 번 따숩게 안아주게. 연설이 길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