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울엄마, 그래도 좋아
♣ 성탄절 산타가 빨간 자루를 메고 유치원엘 왔어요. 눈 껌벅이는 마론인형을 받고 행복해 죽겠다는 아이, 로봇강아지를 받고 "산타 만세!"를 외치는 아이까지 굉장했죠. 분위기가 썰렁해진 건 저 때문이었어요. 산타의 선물이 '내복'이었거든요. 그때 알았죠. 산타는 없다는 걸. 딸의 낯빛이 사색이 되든 말든 박수치며 환호하는 저기 저 고순자 여사가 내가 꿈에도 그리던 산타란 사실을요.
♣ 노다지 맞은 기억밖에 안 나요. 말대꾸한다고 맞고, 밥 많이 먹는다고 맞고, 연애질한다고 맞고. 이게 다 맷살이에요. 이해 안 되는 바 아녜요. 바람기 많았던 아버지에 대한 분풀이랄까? 그래도 맞을 땐 너무 아파서 '자식인데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했지요. 커서 물었어요. "왜 그렇게 때렸수?" 김옥분 여사 왈, "그래도 고무호스로는 안 때렸다~"
♣ 딸 셋 줄줄이 낳다 늦둥이로 얻었으니 애지중지 당연해요. 고3인 저는 엊저녁 남은 찬밥을 내줄지언정 초딩 아들내미는 냄비밥 새로 지어 바치셨으니까요. 너무 서러워 하루는 아랫목에 숨겨놓은 찐빵 3개를 날름 들고 학교로 튀었지요. 1교시 끝날 때쯤인가. 저기 운동장을 가로질러 부지깽이 들고 달려오는 한 여인이 있으니 우리 엄마 강정례 여사였답니다.
♣ 발가락 뼈 튀어나오는 무지외반증 환자인데도 이춘옥 여사는 하이힐에 그물 스타킹만 고집했어요. 예비 시댁과의 상견례 때도 '젊음으로 압도해야 한다'며 호피 무늬 스커트에 부츠를 신고 나와 절 기겁하게 하셨죠. 협심증으로 숨이 깔딱 넘어가게 생겼는데도 병원으로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눈썹 그리게 아이 펜슬 달라시던, 그야말로 '여자'였답니다.
♣ 우리 엄만 달랐어요. '우리 새끼들 맛나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하시던 분인데, 환갑 지나며 조금씩 이상해졌죠. "애 좀 잠깐 봐달라" 하면 "꽃구경 가야 한다" 하시고, "고들빼기 좀 담가달라" 하면 "내가 미각을 잃었다" 하시고. 그제는 홍삼물을 정성껏 다리시기에 "딸 몸보신 시켜주게?" 했더니, 정순영 여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니 생각이고~. 이젠 나 좀 위하며 살란다. 왜 떫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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