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박장대소拍掌大笑

며늘아, 나도 명절이 무섭다

好學 2012. 9. 13. 10:44

 



      며늘아, 나도 명절이 무섭다

       
        
      영감, 잘 지내슈?

      여기는 시방 추석 명절이 콧등이라 어수선하다우.

      세월이란 놈은 또 왜 이리도 씽씽 달리는지.

      입만 청춘인 안동댁은 뜀박질 흉내를 내면서는 '우산 뽈트 달려가듯 세월이 간다'고 하더이다.

      '우산 뽈트'가 뭔지 영감은 아슈?

      또 그놈의 청승이라고 하겄지만, 내가 오늘은 이바구 좀 해야겄소.

      그까짓 갱년기 국물에 말아먹은 지 십수년이고,

      하루하루 숨 붙여 사는 것도 기특한 칠순 늙은이가 암만해도 우울증에 걸렸나 보오.

       

      해 저물녘 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면 엄마 잃은 코흘리개마냥 철철 눈물이 나고요.

      허구한 날 바람이라 내 속을 숯검댕이로 태운 영감탱이,

      산송장이라도 좋으니 아랫목에서 좀 더 뭉개다 가지 그새 갔나 싶습디다. 노망이 맞지요?

      어제는 웬수 같은 천식이 불같이 도져 부랴부랴 택시 잡아 타고 병원엘 갔댔지요.

      혼자 동그마니 앉아서 진료를 받으니 의사가 물어요.

      "보호자는 안 오셨나요?" 병원을 돌아나오는데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가관이데요.

      축 처진 볼에 기역자로 굽은 등이 마귀할멈이 따로 없어.

      팔뚝엔 또 염치도 없이 거뭇거뭇 저승꽃이 피어서는, 왕년의 강숙자,

      그 대찬 기운은 어디로 갔는가 서글퍼집디다.

       

      그래도 추석이니 자식들 만나 좋겠다고요? 좋지요. 햇살 같은 내 손주들이 좋지요. 자식들은 어려워요.

      그네들 머리에도 서리 내려 그런가, 해가 갈수록 말 붙이기도 힘드네요.

      대문간 들어설 때부터 내가 아들 며느리 눈치를 본다면 말 다했지 뭐유. 귀성길 차 안에서 다투진 않았는가,

      그까짓 차례가 뭐라고 돈 버느라 피곤에 전 아이들을 예닐곱 시간씩 고속도로에 갇히게 한 건 아닌가.

      미리미리 음식 장만해놔야지 서둘렀어도 차례상 올리기 직전까지 잡일이 넘쳐나니

      며늘애들 눈 맞추기 면구스럽고, 짜증도 나고요.

      명절은 1년에 한 번만 치르면 안 되는 건지 염라대왕한테 좀 물어봐주슈.

      지난 설엔 둘째 며늘애가 '기름진 명절 음식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하세요?' 하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디다.

      '누가 먹긴 누가 먹어, 니 남편이 먹고 니 자식들이 먹지 이것아!' 소리가 목울대를 넘어오는데, 꼴깍 삼켰지요.

       

      서울 올라갈 땐 동그랑땡 하나 안 남기고 들기름에 참깨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주제에.

      먹다 남은 과일까지 죄다 싸주면 그제야 얼굴이 뽀얗게 펴져서는

      '어머니, 또 올게요옹~' 하고 자동차에 낼름 올라타는데 얄미워 죽겄어요.

      이래저래 퍼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시에미는 김치 한 가지에 물 말아 먹기 일쑤라는 것을 자식들은 알까요.

      나도 뒷집 장성댁처럼 김치 담그고 고추장 담가 보낼 때 택배비에 수공비까지 에누리 없이 받아낼까 고심 중이라오.

      삼팔광땡 시어머니 만난 줄도 모르고 투덜거리기는. 안 그러우?

      그래도 몇 살 더 먹었다고 큰 며느리는 이 시에미 심중을 아는 것도 같습디다.

      그 목석 같던 며늘애가 음식 몇 가지는 알아서 만들어도 오고,

      말끝마다 '무릎도 아픈데 좀 앉아 계세요' '어머니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하는 소릴 다 할 줄 알고요.

      일면식 없는 처녀들이 느닷없이 전화 걸어 '고객님 사랑합니다~' 해도 가슴이 뭉클한데,

      며늘애한테 그 비슷한 소릴 들으니 마음이 다 울컥합디다.

       

      더러 못된 시어머니도 있겄지요.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안하무인으로 구는 시어머니도 가다가다 있겄지요.

      암만 그래도 배 속에서부터 며느리 괴롭히려고 작심하고 태어난 사람 있겄어요?

      유세를 부려봤자 한물간 권력이요, 낼모레 저승길 떠날 신세인데 애교로 좀 봐주면 안 되나요?

      제 아들 굶기나 싶어 며느리 집 냉장고 단속하는 시어머니도 별로지만,

      명절이라면 도끼눈부터 뜨는 유식한 여자들도 격은 없어 보입디다.

      허구한 날 어린 자식 쥐 잡듯 하는 저희는 얼마나 민주적인 시어머니 될란가, 저승 가서 지켜볼라고요.

       

      그러게 물려줄 땅이라도 좀 있었으면 나도 큰소리치고 살 것 아니유.

      살아 생전 뭐 하고 싸돌아다니느라 밭 한 뙈기를 못 사놨수.

      거두절미하고, 저승길에 무사히 갔거든,

      백수 된 우리 셋째 좋은 직장 구하게 해달라고 염라대왕님한테 빽 좀 써보슈.

      마흔이 코앞인데 여태 제짝 못 찾은 우리 딸내미,

      주름살 늘지 않게 틈날 때마다 좀 굽어살펴주시오.

      참, 올 추석은 큰아들네가 콘돈가 뭔가 하는 데서 지낸답디다.

      음식은 저희가 장만할 터이니 날더러는 맨몸으로 오랍디다.

      우리 손주들 좋아하는 깨송편 만들어서 이고 지고 갈라고요.

      영감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찾아오시오.

      새로 난 경춘고속도로가 빠르다 하니, 알토란 같은 손주들 보고자프면 우산 뽈트처럼 씽씽 달려오시오.

      날아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