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智慧묵상/[지혜묵상]신앙지혜

세상의 유혹 물리칠 수 있는 삶의 기준은?

好學 2012. 9. 9. 08:11

세상의 유혹 물리칠 수 있는 삶의 기준은?

마태복음 6:9~13

 

 

중년남성들이 가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경험하였을 때 떠올리는 대중가요가 있다.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다.

운동장에 달리기를 하는 선수가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달렸다. 정말 놀라운 속도였다.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따라붙는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선수는 등수에 들지 못했다.

달리기 경주 레인을 벗어나 달렸기 때문이다.

모든 레이스는 정해진 레인에서 진행되고 각 선수는 끝까지 자기의 레인을 달려야 한다.

그 기준을 무시하고 벗어난 인생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인생이다.

 

남자들은 최선을 다해 살지만 인정받기 어려운 삶을 살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삶의 기준이 어그러지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생이 최고로 허탈한 인생으로 전락할 수 있다.

오늘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마6:9)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규칙들과 마인드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전달해 주시고 계신다.

이 땅에 없는 삶의 법칙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침들을 주시고 계신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다.

 

주기도문은 성경에 있는 말씀들의 축약판이다.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주기도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데 무너지기 쉬운 약점들을 보완해주시고 계신다.

돈에 대한 것이다. 현대 남성들을 돈 벌어오는 기계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염려라는 표현을 예수님은 자주 사용하신다.

남성들에게는 삶의 기준이 필요하다.

하나는 하나님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는 주기도문적인 삶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염려에서 벗어나 돈을 다스리고 사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잘 조절하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크리스천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준이 혼돈을 일으키면 우리의 삶에 혼돈이 일어난다.

 

남자들이여,

그대에게는 세상 유혹을 이길만한 영적기준이 있는가?

그대의 영적기준은 주기도문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일치하는가?

매일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염려를 극복할 수 있는 가치기준을 갖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이렇게”살아야한다고 말할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 새겨져 있는가?

주기도문은 습관적으로 고백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간절한 영적 간구여야 하고 삶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염려로부터 벗어나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마6:35)로 인도한다.

그대의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