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마태복음 8:23~27
세상을 사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 달 수입의 상당부분을 이런 저런 보험료를 지불하는데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의료보험조차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제각각이다.
어린시절 겨울 깊은 밤에 화장실에 사는 귀신이야기를 듣고 나면
화장실에 가는 것도 두렵고 화장실에 가서도 제대로 볼 일 못보고 등골이 오싹하여 도망치듯 나왔던 기억이 난다.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스스로 놀라고 스스로 움츠러든 것이다.
심리학에 예기불안(Anticipatory anxiety)이라는 말이 있다.
예기불안은 ‘그런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라는 두려움이 바로 그 일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일이 있기 전에 미리 부정적인 일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배를 타고 있었던 제자들은 저녁이 되고 바람이 불어오자 스스로 작은 두려움에 서서히 사로잡혀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남성들의 직장생활을 들여다보면 출렁이는 파도에 요동치는 제자들과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일과 예배시간과 다락방모임에서는 예수님의 기적을 목도하듯 믿음을 갖고 있으나
직장생활의 풍랑으로 들어서면 주님이 계시는 것도 믿음도 기억나지 않는 듯 생활하는 모습을 종종보게 된다.
두려움을 이기려하기 보다는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몰두하는 삶을 살아간다.
예수님은 하루 동안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셨다.
이스라엘의 의료기술이 해결할 수 없어 사회적으로 격리까지 했던 나병환자까지 치료하신
예수님의 기적을 제자들은 곁에서 지켜보았다.
치유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있었지만 광풍이 불자 두려움에 빠졌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다.
낮 시간에 백부장사건을 통하여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듣고 보았던 제자들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두려움은 사람들을 밤새도록 깨어 있게 한다.
그러나 믿음은 편안한 베개가 된다’는 말이 있다.
제자들은 믿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3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대공황 극복 의지를 강조하면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라고 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두려움일까? 믿음일까?
남성들이여,
오늘 현실의 광풍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빠져있는가?
아니면 백부장의 하인을 말씀 한마디로 낫게 하셨던 것처럼 말씀 한 마디로 파도를 잠잠케 하실 주님을 믿고 있는가?
우리는 어느 편이 더 익숙한가?
인생은 파도처럼 항상 출렁거릴 것이다.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파도는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될 뿐이다.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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