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David Brainerd)

好學 2012. 8. 27. 08:09

온 생애를 바친 헌신을 만나다. -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David Brainerd

(1718~1747) 미국

교회사에서 인디언 선교에 생애를 바친 미국 식민지 시대의 한 선교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생애는 후세에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슴과 생애를 뒤흔들어 놓았다. 1740년대 미국을 휩쓴 대각성운동의 주도자 조나단 에드워드의 삶에 깊은 감동을 끼쳤고 존 웨슬리의 마음에 큰 전환점을 주었다. 윌리암 캐리(William Carrey)와 헨리 마틴(Henry Martin), 짐 엘리엇(Jim Elliott) 선교사의 마음을 움직여서 복음 사역에 종사하도록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선교사님! 저희 지식의 거장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영적 거장들을 통해 선교사님에 대해 많이 전해들은 바 있는데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쁘네요.

 

A. , 만나서 반가워요. 저도 지식의 거장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Q1. 선교사님은 인디언 선교에 평생을 힘쓰셨죠?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역에 임하게 된 동기가 있었나요?

A.
선교를 하겠다고 결심한 데에 특별한 동기는 없었어요. 단지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느 날 기도하던 중 내가 나의 행복만 추구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따금씩 기도하는 날을 정해서 하루 종일 기도할 때가 있거든요. 24살이 되던 날, 그 날 저는 나의 삶을 드리겠다는 기도를 했어요. 이때껏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는지 새삼 깨달았죠. 그때만큼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길 원했던 적은 없었을 거예요.

 

오늘로 내 나이도 스물 네 살이 되었다. 지나간 나날에 내가 받은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을 내 앞에 그리도 자주 베풀어 주시지 않으셨는가! 그런데도 나는 전적으로 주의 종이 되어 영원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노라 일년 내내 맹세만 했을 뿐, 얼마나 초라한 내 모습인가! 오늘 밤만큼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를 그렇게 열망해본 적도 없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도우심 속에 나의 삶이 모두 쓰여지기를 원한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 P40

 

Q2. 기도하는 날을 따로 정하시는 군요! 얼마나 자주 종일토록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나요? 그리고 주로 어떤 기도를 하시나요?

 

 

 

 

A. 얼마나 자주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몸이 약해지거나 홀로 있고 싶을 때, 그 밖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은밀히 금식도 하고 기도를 하며 시간을 보내요. 이 밖에도 다양한 기도를 해왔어요. 남을 위해서 기도하고 온 세상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해요. 또 내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도 하죠.

너무 많아서 다 말하지 못하겠네요. 아 믿음의 친구들을 위한 기도도 해요. 기도 제목은 날마다 바뀌고 무수히 많아요. 지금은 선교지의 불쌍한 인디언들을 위해서 자주 기도하죠. 그들은 아직도 우상 숭배에 빠져있거든요.

 

Q3. 불쌍한 인디언들...저도 인디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네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셨나요? 혹시 모태신앙이세요?

 

A. 저는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었죠. 그 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고 죽음을 무서워하게 됐어요. 나의 영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신앙 생활에 들어 섰죠. 하지만 그 때 저의 신앙생활은 단순한 종교생활에 불과했어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어린 저에게 놀고 싶은 충동을 망가뜨리는 우울한 일로만 여겨졌죠.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13살 때 마을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면서 열심히 기도했고 점점 신앙생활에 젖어드는 듯했지만 그 해 3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나는 다시 침체됐어요.

그리고 19살 즈음에는 공부하느라 바빴어요. 공부가 가장 재미있고 중요했죠. 스무 살! 겨울이었어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들추셨죠. 나는 회개할 많은 것들을 생각해냈고 심한 낙심에 빠졌죠. 하나님 앞에 회심하며 나아가게 됐어요. 그 후로 내 신앙생활은 180도 변했어요. 단순한 종교생활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 거예요.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그때에, 나는 나의 영혼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죽음은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그러면서 나는 신앙 생활에 들어서게 되었다. 1738년 겨울이 문턱에 다가서고 있던 어느 주일 아침이었다. 그 날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날이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길을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진노와 위기의식이 갑작스럽게 나를 휩쌌다. 나는 우뚝 섰다. 이제껏 좋은 기분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내가 지은 죄와 더러운 행실이 온종일 나를 괴롭혔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 p.19, 21.

 

Q4. 선교사님은 예일 대학에서 공부하신 적이 있으시죠? 선교사님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A. 사실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울적해지기도 해요. 학생부장에 대해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다 퇴학을 당했거든요. 그 때 내가 말을 함부로 하지만 않았어도 일이 그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가 돼요. 하지만 저는 그 이후에 그 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했어요. 그리고 제가 하지 않은 말에 대한 오해와 비난을 주님께서 풀어주시길 간구했죠.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하나님께선 아시고 저의 마음을 용서해 주실 것을 믿었어요. 나는 나의 잘못을 공식석상에서 솔직히 인정했죠. 그리고 왜곡된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급급해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 충분한 위로가 됐거든요. 퇴학을 당하기 전까지 학교생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셨어요. 대학에 입학하고 많은 유혹이 있었거든요. 오늘날에도 많은 기독교 대학생들이 유혹을 받고 힘들어하는 것처럼요. 다행히 저는 끝까지 엄격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죠. 저는 말씀을 의지했어요. 하나님 말씀 그 자체가 제 길이였죠.

말씀뿐만 아니라 여러 사건들로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는 것을 경험했어요. 대학 시절에 홍역이 만연한 적이 있어요. 저도 병에 걸려 헤이담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저는 홍역에 걸리기 전에 신앙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죠. 어려운 공부와 학과 과정 때매 영적인 일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병이 나서 집에서 쉬게 된 거예요. 병이 난 것은 괴로운 일이었지만 학업에 대한 야심으로 죽어있던 영적 생활을 깨우는 계기가 됐죠. 학창시절 나의 신앙에 가장 큰 방해꾼은 학업이었어요. 청교도적 신앙관을 가지고 목회자의 꿈을 꾸며 입학했는데 막상 입학하니까 욕심이 앞서더라고요. 학업에 대한 욕심, 스스로 성취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을 때가 많았죠.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학업에 너무 열심을 내다가 건강마저 잃은 것 같아요. 좀 더 내 몸을 돌보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도 후회가 돼요.

 

Q5. 원래는 목회자가 꿈이셨군요. 퇴학이라니. 너무 상심이 크셨을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상심했죠. 워낙 학업이나 학위에 대한 욕심에 처음엔 타격이 컸어요. 하지만 저는 이 사건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온유함을 배우는 계기로 삼았어요. 그리고 세상의 명예와 학위 등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렸어요. 제적된 후 여러 목사들에게서 개인적으로 신학을 공부했죠.

저에게는 예일대학에 다니는 것보다 더 만족을 줬고 더 큰 배움이 된 것 같아요. 경건생활을 하는 가운데 저는 “불쌍한 영혼들과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의 확장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교도의 구원"을 위하여 선교를 해야 할 사명을 느꼈죠.

퇴학은 단순한 환난이 아니라 제가 선교사가 되는데 큰 계기가 된 사건이죠.

 

Q6. 원래는 목회자가 꿈이셨군요. 선교사님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큰 힘이 되었던 사람은 누구였나요?

 

A. 누구라고 콕 집어 말하기가 힘이 드네요.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저와 동행했죠. 그래서 결핵을 앓던 중에도 사역에 힘쓸 수 있었어요. 힘든 여행길도 견뎌낼 수 있게끔 주님께서 믿음직한 친구들을 허락하셨죠. 제 병이 악화되자 먼 길도 마다 않고 달려와준 동생 요한과 진심 어린 사랑을 보여준 나의 약혼녀 예루사. 또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인디언들까지. 내 일기로 책 출판을 돕고 6년 동안 함께 선교 사역을 해왔던 조나단 에드워즈도 빼놓을 수 없죠. 그 분은 내 약혼녀 예루사의 아버지에요. 저의 장인이 될 분이시죠.

 

Q7. 조나단 에드워즈 선교사님도 저희 지식의 거장 인터뷰에 응하신 적이 있어요! 선교사님과는 또 이런 인연이 있었군요. 두 분이 함께 하는 선교 사역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네요. 조나단 에드워즈 선생님과는 어떻게 친분을 맺으신 건가요?

 

그분과는 인디언 선교 사역을 통해 알게 됐어요. 함께 사역에 임하면서 관계가 깊어졌고 그는 자신의 귀한 딸을 주셨죠. , 결핵이 심해져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에도 자신의 집에서 저를 잘 보살펴 주셨어요. 몇 달 동안이나. 사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저는 제 일기를 책으로 낼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거예요. 그는 나의 모든 기록들을 버리지 말라고 필사적으로 저를 설득했어요. 저는 제 일기를 출판하는 일이 달갑지 않았거든요.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필사적으로 산 것은 제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마치 자랑하듯이 내 신앙과 노력들을 밝히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게다가 누가 자기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려 하겠어요. 그런데 출판이라니. 처음 저는 단호한 태도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어요.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죠.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내 일기가 주님께 쓰임 받을 것이라며 계속 설득했어요. 결국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신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에 한해 출판을 승낙했어요. 그 결과는 후회 하지 않을만한 열매를 낳았죠. 제 일기를 통해 윌리엄 캐리와 헨리 마틴이 회심하여 인도를 가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또 로버트 맥케인이 선교를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떠났다는 소식도 들었죠.

 

Q8.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기뻤던 때는 언제인가요?

 

A. 제가 27살이 되던 해 인디언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개종자가 나왔어요. 조나단 에드워즈와는 만나기 전이었고, 저 혼자 사역을 하고 있을 때였죠. 그 사람은 제 통역관이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의 아내까지 그리스도인이 되었죠. 그들은 공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어요. 그는 나와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 점점 말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영혼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요. 마침내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구원 받을 수 없음을 깨달았고 자신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했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게 된 거예요.

지금 그는 놀랍게 변화됐어요.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게 됐고 언어나 행동도 많이 바뀌었어요. 무관심했던 다른 사람들조차 그의 성질과 말씨가 크게 달라진 것을 대하고 놀라곤 하죠. 특히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일에 놀라운 변화를 보여서 굉장한 열정을 가지고 인디언에게 강연을 전해요.

 

Q9. 강퍅했던 마음이 말씀으로 녹을 수 있었네요. 정말 은혜로운 일입니다. 반대로 힘들었던 일도 있었을 것 같아요.

 

A. 선교를 하면서 많은 여행을 했죠. 저는 원체 몸이 약한 편이라 길고 험한 여행을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처음 선교 자격을 취득했을 땐 이스트 햄프톤에서 카우나우믹으로 갔죠. 길이 너무나 황폐하고 말을 오랫동안 타게 돼서 힘들었어요. 카우나우믹은 황무지에 있거든요. 잠자는 곳도 취약했죠.

그 곳 사람들은 마루도 없는 통나무 집에 지푸라기 더미를 깔고 생활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내 자신이 너무도 연약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사역을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어요. 인디언 틈에서 어떤 봉사를 한다거나 말씀을 전하는 자체가 불가능하게 여겨졌죠.

사역 중간에 몸이 너무 아파 고향에 내려간 적도 있어요. 그만큼 사역이 어렵고 힘들었어요. 쓸쓸한 황야에서 비를 맞으며 몇 시간이나 말을 탄 적도 있고요. 카우나믹에서 델라에어 강으로 갔을 때가 특히 힘들었죠. 낯선 길을 홀로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어려울 때마다 기도하고 예배하면서 회복됐어요.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의지를 허락하셨죠. 내 영혼은 늘 하나님 품에서 쉼을 얻었고 용기를 얻었죠.

 

epilog. 선교사라는 사역을 감당하시면서 고생이 많으셨네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선교사님의 수고와 헌신을 기뻐하실 거예요. 그리고 기억하실 것을 믿어요. 온 생애를 바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신 선교사님의 모습이 빛이 되어 이 땅의 크리스천 청년들을 깨우길 바라며 이상으로 인터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