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9과 사무엘상(3): 사울과 다윗 (16-31장) 16

好學 2012. 8. 22. 09:35

제59과 사무엘상(3): 사울과 다윗 (16-31장) 16

 

 

 4-3. 아말렉으로부터 탈취 당한 가족을 구원한 다윗(30장)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블레셋 군사들을 떠난 지 3일째에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아벡'에서 '시글락'까지 약 75km를 행군하는 데 3일이 걸렸다. 그러나 다윗이 시글락에 돌아왔을 때에는 아멜렉 족속들이 시글락과 남방을 침략하여 불을 사르고 여자들을 모두 사로잡아 간 뒤였다(1-2). 이러한 아말렉 족속들의 침략은 1) 전에 다윗이 자신들을 침략한 일(27:8, 9)에 대한 보복과(Fay, Keil), 2) 생존을 위한 약탈물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아말렉 족속이 마음놓고 시글락을 침범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아벡'으로 이동함으로 그곳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나노는 '남방'은 유다의 남부 지역을 통칭하는 '네게브'지역을 가리킨다(27:10). 원래부터 이곳은 항상 아말렉 사람들로부터 침략의 위협을 받던 지역이었다(14:48). '침노했다'는 말의 기본 동사 '파솨트'는 '흩다', '벗기다'란 뜻으로, 이는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침략 행위보다는 갑자가 습격하여 필요한 노획물을 약탈해 가는 노략 행위를 가리킨다(27:8). 다윗은 성에 돌아와서 아멜렉에 의해서 성이 불에 타고,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혀 간 것을 보게 되었다. 이때에 다윗의 두 아내인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역시 사로잡혀갔다(3,5).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를 보고 기력이 떨어질 만큼 심히 통곡하였다(4). 백성들은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려고 했으며, 이로 인해 다윗은 크게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왕으로 기름 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6). "용기를 얻었다"는 말(이트하제크)은 '힘을 내다', '견고히 한다'는 뜻을 가진 '하자크'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말은 '(여호와 안에서) 자신을 위해 스스로 힘을 냈다'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확고한 신념에 근거하여 적극적인 방향으로 마음을 먹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난관에 대처하는 다윗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즉 이때 다윗은 휘하 군사들을 회유하는 설득이나 구구한 변명 대신 하나님께 그 어려운 문제를 맡기고 그분의 도우심을 전적 바라는 신앙인의 모습을  견지했던 것이다. 이처럼 성도는 환난을 당할 때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실로 신앙인이 불신자보다 월등한 점은 고난에 처했을 때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그 상황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 있다.  그리고 당신만을 소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위로를 제공하신다(시 50:15;사 40:31).

 

  다윗은 제사장 아비아달을 불러 에봇을 가져오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아말렉을 쫓아가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인지 물었다. 이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쫓아가면 반드시 승리하고 모든 잃은 것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7-8). 다윗과 그 부하들은 즉시 아멜렉 족속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브솔 시내에 이르러서는 200명의 군사들이 지쳐서 다윗을 쫓기를 포기해야 했다.

다윗은 그들을 그 곳에 그대로 두고 계속해서 아말렉을 추격했다(9-10). 브솔 시내는  '시글락'에서 남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유다 산악 지대에서 발원하여 '가사' 남서쪽 지역을 통고해서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였다(Raumer). 이 곳에서 200명이 추격을 포기하게 된 것은 1)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아벡'에서 '시글락'까지 3일 길을 행군하여 피곤했으며, 2) 쉬지도 못한 채로 온 힘을 다하여서 아말렉 족속을 추격했기 때문에 몹시 지쳤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힘들어하는 200명을 브솔 시내에서 쉬게 하였다.

 

다윗은 지친 자들에게 무리한 강행군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는 신앙에 기초를 둔 다윗의 인도적 조처였다. 다윗은 길을 가다가 한 애굽 소년이 지쳐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음식과 물을 주어 구해주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는 아말렉 사람을 섬기던 종이었는데, 그가 병이 든 것을 보고 아말렉 사람이 그를 버리고 간 것이었다. 다윗은 그를 인도자로 삼아 마침내 아말렉 족속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11-15). 다윗이 가서 보니 아멜렉 족속들은 탈취물로 인해 먹고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다. 다윗은 새벽부터 저물 때까지 그들을 쳤으며, 이때에 나귀를 타고 도망친 400명을 제외하고 모든 아말렉 족속들이 죽임을 당했다(16-17).

 

다윗은 탈취물을 가지고 브솔 시내에서 피곤해서 추격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일부 비류들은 다윗에게 그들에게는 탈취물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윗은 오늘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모든 탈취물을 똑같이 분배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후에 탈취물을 나눌 때에 전례가 되게 되었다(18-25). 다윗은 돌아와서 자신이 얻은 탈취물을 남방에 사는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었다.

이들은 다윗과 평상시에 친분이 있는 장로들이었을 것이다(26). 다윗이 이렇게 한 것은 1) 자신이 비록 블레셋 땅에 망명해 있지만,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2) 사울에게 쫓기는 동안 물심 양면으로 자신을 도와준 성읍의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며(30절), 3)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앞서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닦아 놓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다윗은 벧엘에 있는 자들과 남방 라못에 잇는자와 얏딜에 있는 자에게 선물을 주었다(27). '벧엘'은 '호라마'와 '시글락' 근처에 있는 '브둘'(수 19:4, 5)과 동일 지역으로 보인다(Smith). 그리고 남방 라못 은 브엘세바에서 남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시므온 지파의 성읍으로, 그리고 얏딜은  에스드모(수 15:50)에서 남서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는 곳으로 유다 지파에 속한(수 15:48) 제사장의 성읍이었다(수 21:14).

 

다윗은 아로엘과 십못, 에스드모아, 라갈, 여라므엘, 겐, 홀라, 고라산, 아닥, 헤브론에 살던 사람과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왕래하던 모든 곳에 선물을 보냈다(28-30). 아로엘은 브엘세바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그리고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13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십못은 유다 남방(네게브)에 있던 성읍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스드모아는 유다의 산악에 있던 성읍으로, 헤브론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있었다(수 15:50; 21:14; 대상 6:57). 라갈은 헤브론에서 남동쪽 약 11km, 그리고 에스드모아에서 북동쪽 약 6.5km 떨어진 곳에 있는 '갈멜'(25:2)로 추정된다(Thenius). '여라므엘 사람'은 유다의 손자이자, 베레스의 아들인 헤스론의 장자, '여라므엘'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대상 2:4,5,9).

 

그들은 브엘세바의 남쪽 지역(네게브)에서 살고 있었다(27:10).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들로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안내자들이 되어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그곳에  정착했다(15:6; 민 10:29-32; 삿 1:16). 이들은 유다 남방, 아말렉 사람들의 거주지 북쪽에서 거주했었다(15:6;27:10). 홀마는 브엘세바에서 동쪽으로 약 11km 떨어진 곳에 있었다(수 15:30). 이곳의 원래 지명은 '스밧'이었으나, 유다 사람들이 이곳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을 전멸시킨 후에 그 이름을 '홀마(전멸을 위해 헌신되었다는 뜻)라고 바꾸었다(삿 1:17). 고라 산은 네게브 지방의 변두리에 있던 세펠라 지역의 한 부분인 '아산'으로 알려져 있다(수 15:42). 이곳은 처음에 시므온 지파에게 소속된 성읍이었으나(수 19:7), 후에 제사장의 성읍으로 지정되었다(대상 6:59).

 

아닥은 헤브론에서 북서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곳에 있는 시므온 지파의 '에델'(수 15:42;19:7)로 추정된다.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22km 떨어진 곳에 있는 성읍으로(수 10:3), 일찍이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곳으로(창 13:18;23:1), 그 뜻은 '벗' 또는 '친구'라는 말이다. 후에 다윗은 이곳을 자신의 잠정적인 왕도로 삼았다(삼하 2:1-4, 5:3). 다윗과 그 부하들이 왕래하던 곳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하던 지역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억울한 도피자 다윗에게 먹을 것과 숨을 곳을 은밀히 제공하여 다윗을 도왔을 것이다(Fay).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무엘서 기자는 그들을 다윗의 '친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