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1. 균등 분배를 하면 모두 잘 살게 될까?

好學 2012. 7. 21. 07:28

1. 균등 분배를 하면 모두 잘 살게 될까?

 

 

좋은 뜻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아야 경제를 움직이 수 있다. 인센티브의 안경을 껴야 경제가 바로 보이지 이념만으로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 2년여 동안 우리나라는 참여정부가 지나치게 형평과 분배 위주의 이념과 정책에 경도(傾度)되어 시장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지는 않는가에 대한 논쟁이 지소되어 왔다. 왜 공평하게 더불어 잘 살겠다는 형평과 분배우선 정책이 경제발전에 부담이 된다는 것인가?
 
역사적으로 형평과 분배를 강조하는 정책은 예외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균등한 소득 및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것을 그 이상(理想)으로 삼아왔으며, 이런 이상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경우가 바로 사회주의(社會主義)의 이상이다.
 
이와 같이 모든 국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모두 같이 더불어 산다는 이상이 왜 시장경제에 부담이 될까? 그 이유는 바로 시장경제는 마라톤 경주와 같기 때문이다.
 
일직선으로 선두와 후미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순위경쟁을 벌이면서 2시간여의 시간 내에 1등에서 꼴찌까지 순위를 가려내는 과정이 바로 마라톤이다. 2시간여의 시간 동안 끝없는 경쟁 속에서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면서 순위경쟁을 벌인다.
 
이런 경쟁의 압력이 더한 역동성을 만들어내면서 1등은 물론 골찌까지도 사력을 다해 경쟁하게 된다. 결국 마라톤은 참가한 마라토너들을 1등에서 꼴찌까지 순위를 매겨 그 성적에 따라 차례로 영광이 주어지도록 하는 차별화 장치'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화 과정이 모든 주자들을 더 열심히 뛰게 하여 천재 마라토너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발전의 이치(理致)가 이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많다. '시장경제'란 마라톤 경기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과 기업, 그렇지 않은 사람과 기업을 차별화하는 장치이다. 시장에서 좋은 물건을 만들고 열심히 싸워 성과(판매수익)를 많이 내는 개인이나 기업은 더 많은 소비자, 더 많은 투자자, 더 많은 은행으로부터 투표(지원)을 받게 되고 더 좋은 근로자를 유인함으로써 승승장구하게 된다. 후발주자들은 선발주자의 전략을 베끼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1등이 누리는 특권을 빼앗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이치 중에 가장 중요한 이치는 어떤 경우에도 시장에서는 1등과 꼴찌(파산하는 개인이나 기업)가 있게 마련이며, 모두 다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 따라 차별(差別)이 생기며 서열(序列)이 생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바로 이런 차별화에 따른 차등적 보상원리가 모든 사람들을 보다 더 열심히 살게 만들고 나아가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가져오는 힘이 되는 것이다.
 
결국 시장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게으른 자를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돕지는 않는다. 마라톤 경주도 항상 열심히 달려서 우승하는 자에게 영광을 주지 꼴찌에게 영광을 주지는 않는다. 옛날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이언 '평등하지 못한' 세상의 이치를 몸에 익히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세상의 이치에 등을 돌리고 마라톤 골인지점에 모두가 손잡고 나란히 들어오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상은 좋으나 세상의 이치와 맞지 않기 때문에 실패를 피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분배 위주의 정책이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여 1등이나 꼴찌 모두 똑같이 대접하는 사회를 지향한다면, 결국 남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역차별(逆差別)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결국 시장경제의 정체(停滯)와 평균소득의 하락을 피할 수 없다. 스스로 돕는 자를 돕도록, 즉 열심히 하여 성과를 내는 사람들에게 살맛나는 세상이 되도록 만드는것만이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를 살찌우게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