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3. 투기근절, 마땅하다?

好學 2012. 7. 21. 07:32

3. 투기근절, 마땅하다?

 

투기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법적 사기행위와 명백히 구별되어야 한다. 투기는 근절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균형가격을 찾아주고 시장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고마운 존재이다. 

부동산, 원유, 원자재 등의 가격이 급등했을 때 가격변동의 언인 중 하나로 매번 거론되는 것이 바로 '투기(投機)'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투기억제를 통한 가격안정이 어김없이 제시된다. 얼마 전 대통령도 국정연설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해서라도 부동산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투기를 사회의 골칫거리로, 발본색원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투기란 용어에 불법적 색채를 너무 덧칠해 놓은 것이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최근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퇴진하는 사태에서도 이같은 덧칠 작업은 어김없이 이루어졌다. 언론에 '의혹'으로 보도된 이들의 행위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법적 사기행위인데도 죄목(?)은 생뚱맞게도 투기였다. 투자와 투기가 쉽게 구별되지는 않지만, 어쨋든 던질 투(投)자가 쓰이는 것을 보면 투자든, 투기든 모두 위험이 수반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부정보를 이용한 행위에는 이런 위험이 없으므로 투자도, 투기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같은 적절치 못한 용어의 사용은 우리 사회에 투기를 '사기행위'와 동일시하는 잘못된 개념으로 고착시켜 놓았다. 급기야 몇 년 전 모 대학 여교수가 아파트를 40여채나 소유하고 있다는 기사가 일간지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정당한 소득을 통한 부의 축적이 아닐 것이라는 추정으로 사회적 공분만 불러일으킨 채 말이다.
 
투기를 근절해야 한다고 하는 또다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투기가 설사 합법적인 경제행위라 할지라도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경제교과서에도 '투기적 거래가 성행하여 가격이 상승하면, 그 재화를 꼭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는 무거운 부담을 져야 할 뿐 아니라…"(고등학교 경제, 오영수 저, 2003)라고 기술되어 있다. 실제로 투기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부동산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이 좌절된다고 말하고 있다.
 
투기가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매카니즘은 가격상승을 통해서이다. 따라서 '투기가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혐의를 벗으려면, 우선 투기가 가격상승의 원인이 아님을 보여야 한다. 경제학에서 '투기는 가격의 상승 혹은 하락을 예상하여 기대수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시장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투기는 가격 상승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지 그 자체가 가격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경제학적 정의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부돈산 투기는 부분적 현상(서울 강남, 행정도시, 개발지구 등)이거나 주기적 또는 일시적 현상(국민소득 증가시기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투기가 규제완화, 정책변경 등으로 개발가능성, 국민소득의 증가 등에 따른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의 결과이지 가격상승의 원인이 아님을 방증해 준다. 만약 부동산 투기가 가격상승의 원인이었다면 부동산가격 상승은 부동산시장의 일반적, 정기적 현상으로 나타났아야 한다. 투기꾼들이 지역, 시기에 관계없이 부동산 가격을 좌지우지했을 테니까 말이다.
 
혹자는 투기가 가격상승의 1차적인 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가격을 추가적으로 확대시키는 2차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반문할 수 있다. 과거 1, 2차 오일쇼크, 매점매석 등과 같이 지정학적 혹은 자연적 환경 등에 의해 공급독점이 가능한 비경쟁적인 시장상황에서는 투기가 가격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문제이지 투기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시장만 경쟁적으로 작동된다면 투기는 균형가격에 빠르게 도달하게 해줌으로써 급격한 가격변동을 사전에 분산시켜 실수요자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 일례로 중동의 정정(政情)불안 등에 따른 원유수급 불안정으로 3개월 후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전마이 나왔다고 하자. 투기가 전혀 없는 경우 실수자들은 3개월 후의 유가상승을 고스란히 부담하여함은 물론,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도 필요한 원유를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수요자가 미리 원유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제유가가 전망보다 작게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경우 실수요자에게 예기치 못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투기자가 존재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투기적 거래로 인해 유가상승의 일부가 현 시점으로 앞당겨지면서 정작 3개월 후에는 유가가 그다지 많아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투기자가 존재함으로써 실수요자는 원유확보의 부담과 함께 예상과는 다른 가격변동에 대한 위험을 모두 회피할 수 있게 된다.
 
투기는 또한 시장형성의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수행한다. 1년 후 수입대금 1억 달러를 지급해야 하는 수입업체가 있다. 그리고 이 업체는 미래 환율수준에 관계없이 1년 후 정해진 금액으로 1억 달러를 확보하여 환위험을 제거하고자 한다. 이 업체가 바로 달러의 실수요자인 것이다.
 
만약 선물시장에 투기자가 없다가 이 수입업체는 1년 후에 1억 달러를 수출대금으로 받는 수출업체를 찾아나서야 한다. 하지만 수입업체의 환위험을 떠맡음으로써 단기적인 이득을 챙기려는 투기ㅏ꾼들의 '탐욕' 덕분에 실수요자들의 수고는 한층 덜 수 있다. 이처럼 투기적 수요는 가격위험을 회파하기 위한 해지수요(예 : 수입업체의 달러 수요)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며 시장형성의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수행한다.
 
투기는 근절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대부분의 자산시장에서 자산이 제대로 군형가격을 찾도록 도와주고 시장의 위험을 소화하는 매우 유익한 역할을 수행하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주어진 사실을 정확하게 보아야 문제가 해결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사실적'으로 보지 못하면 잘못된 해결책이 나온다.
 
이제는 투기꾼들이 챙기는 소득만 보지 말고 올바른 투기가 수요 공급을 원할히 하는 기능이 있음을 '사실적'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