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한자교육)署名運動

社會운동으로서의 漢字敎育 운동

好學 2012. 6. 23. 06:11

社會운동으로서의 漢字敎育 운동



 

鄭 元 植
前 國務總理 / 서울大 名譽敎授 / 本聯合會 顧問



日帝로부터 光復된 후 다른 여러 분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의 교육계는 그야말로 荒蕪地와도 같은 상태였다.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던 각급 학교의 책임자 자리는 텅 비어 있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런지 그저 漠然한 상태였다.
그러나 새 나라의 교육을 위한 준비가 될 때까지 그대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학생들이 우선 길거리에서 彷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무슨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래서 미군정에서는 일반명령에 따라 1945년 9월 24일을 기하여 모든 公立初等學校의 문을 열 것을 지시하였다.

교육에서 사용되는 말은 韓國語여야 하고 韓國에 이롭지 못한 儀式이나 行事는 불허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 그리하여 초등학교의 개교는 軍政이 시작된 지 2주일만에 실현되었다.
初等學校의 문을 열기는 하였으나 우리말로 되어있는 敎科書도 없었을 뿐 아니라 韓國語로 수업을 담당할 수 있는 敎師도 그리 많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새로 임명된 敎師들의 한국어 소양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있어야 했다. 실로 기막힌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光復된 나라에서 우리말로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가 殆不足하였기 때문에 먼저 우리말 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文敎部가 제일 먼저 발간하여 광범하게 보급한 책이 「한글첫걸음」이었다. 이 책은 원래 光復직후 한글을 보급하기 위하여 「朝鮮語學會」의 會員들이 만든 것으로서 짧은 기간 안에 한글의 기초를 배우기에는 적합한 책이었다.
다음으로 간행된 것이 「초등국어독본Ⅰ」이었는데 이 책은 문교부 編修課에 집결된 유능한 한글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단시일 내에 편찬한 것이다.

光復 후 문교부가 직면했던 이와 같은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한글이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 나라 文字政策에서 한글전용 정책을 채택하게 된 것은 어느 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文字政策에 있어서 論議가 활발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글전용정책과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光復된 땅에서 民族의 자랑인 한글을 존중하고 여러 면에서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한글을 專用해야 한다고 주장한 한글학자나 한글전용론자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과 뜻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의 文字政策에서 한글전용정책을 채택한 것은 분명 잘못된 政策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길게 논의하거나 설명할 필요 없이 우리문화는 漢字文化圈에 속해 있기 때문에 漢字에 대한 이해 없이 그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의 專門用語만이 아니라 日常用語의 약 70%정도는 漢字語라는 점에서 漢字의 이해는 必須的이라고 할 것이다. 漢字語의 의미를 알아야 파생어의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당시의 한글전용론자들은 우리 나라의 대중소설 같은 분야에서는 이미 한글을 전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무런 불편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모든 文書와 記錄에서 漢字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기에 정부 부처의 간판도 한글로 표기한 바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漢字語로 되어있는 語彙까지도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기도 하였다.

그것이 우리사회에서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飛行機를 「날틀」이라고 하거나 細胞를 「쪼개」, 동물을 「옮사리」, 식물을 「물사리」라고 이름 붙이는 일까지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縱書를 橫書로 전환하기 위하여 한글을 풀어써야 한다고 그 시안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한글전용의 文字政策 때문에 당시의 초 중등학생들은 漢字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해서 漢字文盲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漢字의 이해를 어느 때보다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漢字를 모르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불편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사회 일각에서 漢字敎育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漢字敎育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漢字의 사용은 극도로 제한되어있고 漢字敎育의 필요성도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중등학교과정에서 제한된 숫자의 漢字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나 정작 漢字敎育을 시작해야할 初等學校과정에서는 漢字敎育이 제대로 되어있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漢字敎育을 위한 대대적인 운동이 있어야할 필요는 절실하다. 漢字敎育을 學校敎育에 반영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루기에 앞서 漢字敎育운동을 사회의 이슈화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사회운동으로서의 漢字敎育운동을 위하여 유념해야할 몇 가지 방침을 생각해 본다.

첫째, 漢字를 배우는 사람들이 그것을 배우기 어렵다는 認識을 갖지 않도록 우리생활과 밀접하게 관계 있는 常用漢字를 위주로 사용하고 이를 교육에 包含하도록 한다. 적절한 例가 될런지 모르겠으나 현재 全國漢字敎育推進總聯合會에서 月刊으로 발행하는 「한글+漢字문화」만 하더라도 그 내용을 보면 지나치게 난해한 漢文중심의 문장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漢文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친근감을 줄 수가 없다.
둘째, 漢字를 알게 되면 派生語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例컨대 母(어미 모)자를 알면 이로부터 파생되는 母音, 母國, 母法, 母校, 母權, 母體 등의 뜻을 쉽게 알 수 있다.

셋째, 漢字를 알게 되면 문장의 내용을 빠른 시간에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漢字를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 읽는 문장 속에 漢字가 포함되어 있으면 한글만으로 되어있는 문장보다 훨씬 빨리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넷째, 漢字는 漢字文化圈에서 쉽게 통용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漢字를 이해하게 되면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漢字文化圈의 나라를 방문했을 때 편리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섯째, 사람의 이름은 漢字로 표시해야 만이 기억이 용이하고 혼동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혈족속의 行列을 읽을 수 있다. 한글로 된 이름은 음으로만 표시하기 때문에 그 뜻을 쉽게 짐작할 수 없다. 철수라는 이름에서 수라는 글자를 守(지킬 수), 壽(목숨 수), 秀(빼어날 수), 洙(물 이름 수), 穗(이삭 수)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몇 가지 방침은 漢字敎育운동을 사회운동으로 대대적으로 전개할 때 기본적인 방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