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한자교육)署名運動

漢字敎育, 우리 古典과의 疏通

好學 2012. 6. 23. 06:07

漢字敎育, 우리 古典과의 疏通



 

朴錫武
韓國古典飜譯院 院長 / 本聯合會 指導委員



傳統社會의 교육, 특히 어린 아이들의 교육은 人性의 양육에 초점이 있었다. 小學의 과목인 灑掃․應對․進退의 예절과 禮․樂․射․御․書․數의 글은 단순히 어린아이로서 마땅히 익혀야 할 일일 뿐만 아니라 장차 大學의 窮理․正心․修己․治人의 도를 학습할 인성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孔子가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임금을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붕우와 더불어 사귀되 말에 믿음이 있으면 비록 학문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학문하였다고 하겠다.”(『論語』 學而篇)라고 한 것은 이런 취지에서 하신 말씀일 것이다.

이에 반해 요즈음 敎育은 이미 어린아이 때부터 人性이 아닌 장래 競爭社會에서 살아남을 도구로 키우고 있는 듯하다. 한창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야 할 초등학생들이 영어학원이다 수학학원이다 하여 잠시도 쉴 틈이 없음은 다반사요, 심지어 안온한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지도 못하고 외국으로 내보내는 일도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심지어 漢字敎育도 人性이 아닌 大學合格을 위한 方便으로 전락되는 감이 없지 않음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위안이 되는 점은 漢字가 종래 우리 文化를 기록한 주요 文字였고, 漢字敎育이 다음 세대가 우리 文化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발전시켜 나아갈 端初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나라 古典은 99% 이상이 漢字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個人의 思想과 生活뿐만 아니라 國家의 政治․經濟․軍事 등 모든 내용을 漢字로 기록하였다. 혹자는 이에 대해 어엿한 한글이 있음에도 漢字를 사용한 것은 事大主義가 아니었으며, 바로 그런 점에서 漢字로 기록된 文化는 순수한 우리 문화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조상을 부정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자신도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됨을 잊은 행동이다. 조상이 없는데 오늘의 내가 어찌 존재할 수나 있겠는가.

그렇다면 漢字敎育도 단순히 우리 나라 말의 70%가 漢字에서 유래하였으므로 漢字를 알아야만 제대로 국어 생활을 할 수 있다든지, 中國을 위시한 漢字文化圈의 확대에 대비해야 한다든지 등과 같은 實用的 目的 때문에 漢字敎育을 해야 한다는 當爲性을 주장하기보다는 좀 더 高次元的으로 우리 조상의 얼이 깃든 古典이 漢字로 기록된 것이라면 바로 그 얼을 계승하여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야 할 責務로 漢字敎育은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이해하여 볼만도 하다. 아울러 하나 더 고려해야 할 점은 우리 조상의 學問에 대한 태도이다. 學問하는 근본 취지는 안으로 자신을 닦아서 최종적으로 국가사회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따라서 漢字敎育을 우리 조상을 이해하는 端初로 삼게 되면 바로 이러한 精神이 고스란히 오늘날에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韓國古典飜譯院에서는 1965년 창립 이래 『朝鮮王朝實錄』 등 國家紀錄文獻과 우리 나라 漢文學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東文選』, 牧隱 李穡의 『牧隱集』 등 한국의 대표적 文集을 그간 1300여 책을 飜譯, 出刊하였으나 아직 전체 출간 예정인 7300여 책의 18%에 불과한 것으로 아직 6000여 책을 더 飜譯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현재 우리가 조상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며, 좀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반증이다. 우리 固有文化를 이해하는 첩경인 古典飜譯의 현실이 이러할진대 그것을 통한 다양한 文化事業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에서 기회는 아직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빠른 시일 안에 우리 조상이 남긴 각종 文獻을 번역 완료함으로써 固有文化의 전반적 모습을 온전히 되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古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있어야 하며, 이는 漢字敎育이 단순히 글자만을 익히는 것이 아닌 古人의 精神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가능한 것이다. 『周易』 剝卦에 “碩果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한 개의 과실만이 남았지만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어두운 상황이라도 씨알이 남았으면 희망은 있다.

모두가 우리 固有文化를 등지고 있지만 우리 固有文化가 저들이 말하는 世界化의 始發點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漢字敎育이 그 단초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더더욱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使命은 더욱 自明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