秩序있는 人間社會에 必要한 生活綱領
劉貞得
基督敎硏究院 院長 / 本聯合會 顧問
最近 우리의 社會가 약간 소란한 듯하다. 비록 동일한 사회 안에 살고 있는 미미한 隱退의 老師이지만 우리 사회에 대한 老姿心에서 우리 先代들이 生活해온 先見之明과 現代 先進國의 사람들이 選取하고 있는 聖言을 引用해서 우리를 다스리는 정치적 지도자들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一考의 견해를 밝혀 들리고 싶다.
原來 우리 나라는 큰 나라는 아니었지만 五千年이 가깝도록 文明의 나라로 秩序있게 잘 살아온 東方禮義之國으로 지칭되어 온 나라로 自負하고 있다. 그래서 선대들은 무엇보다도 三綱五倫을 基本的 綱領으로 해서 이웃나라 사람들에게 龜鑑이 되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가르침은 비록 지나간 첫 先人들의 가르침이라고 하드라도 그것은 眞理에 가까운 名哲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우리의 腦裏에 그 뿌리의 痕迹이 남아있는 것으로 認識하고 있다. 즉 그 당시는 君臣이 百姓을 다스리는 王國時代이었지만 그 기본적인 사회생활의 綱領으로서는 매우 훌륭했던 것으로 그 骨格은 우리 후손들의 마음에 潛在力이 되어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래서 그 三綱(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과 五倫(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의 基本原理를 現代感覺의 流行에 맞게 디자인하면 참으로 좋은 韓國 傳統의 문화적 유산이 될 것으로 看做된다.
그 다음으로 현대 선진국의 국민들이 지향하고 있는 生活哲學을 그 출처인 聖書의 聖言에서 引用하여 考慮해보기로 한다. 그 내용이 聖書 안에 律法과 先知의 綱領이라고 명기된 곳이 있다. 그 綱領은 東西古今이나, 國家와 民族을 초월해서 適用되는 綱領으로서 현대의 先進國과 그 國展들은 그 綱領을 生活化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內容이므로 그 것을 여기에 소개하면서 우리의 社會가 混亂이 없는 自由民主國家의 主人公들로서 秩序整然한 福祉社會의 先導者들이 되기를 所願한다.
이에 그 聖書의 가르침을 보면 모든 律法의 先知의 綱領이 되고, 모든 倫理와 道德의 哲學이 되는 그 綱領은 國民 各自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 것이 社會法과 社會倫理의 根本綱領이며, 그것이 仁愛의 誡命으로서 모든 倫理와 律法의 基本綱領이 된다고 한다. 그러한 生活綱領을 實踐的 方向에서 다시 언급한 것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즉 “이웃에 있는 相對로부터 待接을 받고자 하면 그 만큼 그 상대에게 먼저 待接하라”고 하는 先行으로 奉事하는 實踐綱領을 제시하고 있다.
그 內容은 간단한 것 같지만 事實은 매우 중요하므로 그것을 더 상세하게 吟味해보기로 한다. 그것은 對人關係에 있어서 가장 슬기로운 姿勢와 態度로서 社會生活의 基本이 된다고 한다. 가령 비유를 든다면 어떤 父母와 子女間에 있어서 그 부모는 그 자녀에게 바라는 만큼 먼저 子女에게 잘해주고, 그 자녀는 그 부모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먼저 그 孝行의 待接을 먼저 해드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상대가 上下에 관계없이 서로 相對가 所願하는 것을 먼저 알아서 그것을 먼저 善處해 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가 약간 愚鈍해서 깨닫는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그 報應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相互間에 葛藤이나, 어떤 어려운 問題가 발생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한 實踐의 原理는 夫婦 間이나, 親友 間이나, 姻戚 間얘도 相通하여 適用이 된다는 것이고, 또 政治社會에 있어서 左右立場이나, 다스리는 者와 國民 間에도 해당이 되며, 産業社會에 있어서 雇傭者와 勞務者 間에도 最善의 자유로운 解決의 原理가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더 說明을 한다면 人間社會에서 모든 對人關係의 事理를 내 中心으로 利己的인 過慾의 主張을 하지 말고, 相對方의 立場에 서서 肯定的으로 그 事理를 생각하고, 주장하면 그 모든 事理가 순조롭게 해결되고, 잘 풀려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相對方의 人格을 존중하고, 仁愛의 禮節도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앞선 紳士道와 淑女다운 禮節이 된다는 것이다. 거기서 相對方의 立場이라는 것은 自己를 겸손하게 낮춘다는 입장을 의미하며, 그렇게 하므로 상대를 잘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理解를 英語로는 understanding이라는 單語를 사용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자기를 먼저 아래로 낮출 때에 相對方이 원하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고, 또 거기에 적합한 待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相對를 정확하게 알며, 그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을 바로 알 때에 그 待接이 효과 있는 바른 대접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原理는 동양적인 三綱五倫의 어느 項目에도 적용될 수 있으므로 그 것은 東西洋을 막론하고 律法과 先知의 綱領이 되는 것이다.
요즘 우리 社會에 있어서 過敏한 事態들을 朝夕으로 달갑지 않게 보게 된다. 政府와 市民 간에 必要 以上의 事態를 惹起하고 있으며, 産業社會에 있어서 勞使問題들도 그러한 原理의 綱領이 缺如되어었기 때문에 서로간의 葛藤과 騷亂이 야기되는 것으로 看做된다.
같은 處地에서 같은 운명 하에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잘하고, 누가 잘 못하겠는가 말이다. 비평하는 자기가 그 자리에 서게 되면 그보다도 더 못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웃과 남을 탓하기 이전에 自己가 그 자리에서 일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면 그 상대를 충분히 긍정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상대들이 經驗이 부족하거나, 미처 모르는 좋은 방안이 자기에게 있다면 그것을 그들에게 공손히 알리어 주는 것이 신사다운 道理이고, 그 상대를 위하는 美德이 될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슬기로운 사람이나, 슬기로운 백성이라면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明哲을 見聞하게 되면 그것을 속히 깨닫고, 그것을 수용하는 敏捷한 態度도 필요할 것으로 안다.
우리 韓人들은 도두 상당히 슬기로운 本性이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韓民族은 古來로 理解가 빠르고, 禮節 바른 백성으로 自負하여 왔었다. 그 후손들인 우리가 水準 높은 自由民主主義의 福祉國家를 소원한다면 먼저 국민의 본질적 民度가 먼저 先進되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할 수는 없다. 이제 우리도 紳士道를 지키며, 숙녀다운 禮節을 간직해야 할 때이다. 문명인의 백성은 遵法으로 社會秩序를 率先하는 백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있다. 그것을 알면서 실천 못하는 백성이라면 참다운 결단력이 부족한 백성으로 烙印이 찍히게 될 것이다.
다시 우리는 反省해본다. 古來로 우리 백성들은 예절바른 백성이었고, 危機를 당면해서는 그 민첩성을 발휘한 슬기로운 백성이었다. 그 長點을 이어받은 우리 후손들은 그 長點들을 백분 발휘해서 好期가 올수록 상호가 이해하고, 선대해서 더 理想的인 現代的 福祉國家로 成長시켜 가야할 使命과 義務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이에 우리는 先代들이 준수해온 三綱五倫을 오늘의 것으로 脚色해서 선용하고, 現代의 律法과 先見의 綱領을 실천해서 列邦百姓들의 龜鑑이 되도록 하는 슬기가 있는 것으로 自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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