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한자교육)署名運動

漢字의 混用은 科學의 발전에도 절실히 필요하다

好學 2012. 6. 17. 17:30

漢字의 混用은 科學의 발전에도 절실히 필요하다

                                                                                                                                                            

河斗鳳
大韓民國學術院 會員 / 서울大學校 名譽敎授 / 本聯合會 指導委員


地球村은 지금 世界化時代를 맞이하여 나라마다 門戶를 활짝 열고 自由競爭에 沒頭하고 있다. 이 開放化의 滔滔한 물결 속에서 賦存資源이라고는 없는 우리 나라가 國際競爭에 이겨 先進國으로 跳躍하려면 무엇보다 科學技術의 振興이 捷徑이다. 물론 과학기술의 發展만으로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모든 文化가 같이 발전하여야 하고 國民意識도 한층 先進化되어야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당장 시급한 것 그러면서 비교적 短時日 내에 성취하기 쉬운 것이 科學 技術의 振興을 통한 國家競爭力의 향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昨今 우리 나라 科學界의 발전은 참으로 괄목할 만하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8년도 “世界競爭力 年次報告書”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科學競爭力이 작년의 7位에서 2단계 올라 5位를 기록하였다고 한다(「과학과 기술」, 2008년 6월호 pp. 15~). 과학경쟁력의 尺度의 하나가 되는 SCI 論文篇數는 우리 나라가 2007년도에 세계 11위였다. 반면, 국가경쟁력은 31位로서 작년보다 2단계 낮아졌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허리띠 졸라매고 이제 한발만 더 도약하면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커다란 장애물이 하나 나타났다. 다름 아닌 學問後續部隊인 靑少年들의 基礎學問 忌避現象이다. 기초학문 가운데서도 基礎科學의 기피현상이 최근 더욱 顯著하다. 이유는 물론 就業難일 것이다. 또 社會를 風靡하고 있는 金錢至上主義와 享樂主義에도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세계적 추세라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度가 좀 지나치다. 이를 바로 잡아 健全한 사회를 만들려면 상당한 時日이 걸릴 것이다.

基礎科學 忌避의 理由 가운데에는 漢字敎育의 不在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난 약 10년에 걸쳐 「全國漢字敎育推進總聯合會」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基礎漢字 1,000字 정도를 철저히 교육하고, 各級학교의 모든 敎科書에 漢字를 混用할 것”을 주장해왔다. 또 誌齡 100號를 넘는 「한글 + 漢字문화」誌의 수많은 논설문을 통하여 漢字敎育의 필요성을 누누이 지적해왔다. 그러나 漢字의 실질적인 敎育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흔히 漢字는 人文學 쪽에서 특히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필자 생각으로는 自然科學에 있어서도 똑같이 절실히 필요하다. 다른 分野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연과학 분야의 學術用語는 可謂 全部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모두가 漢字語이다. 그런데 지금의 학생들은 이 術語를 한글발음만으로 暗記하고 있다. 왜 그렇게 發音하는지는 모른다. 學術論文은 術語의 連結敍述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많은 술어를 발음만으로 암기해야 하니 공부가 어렵고 재미가 붙을 리 없다.

日前 KBS TV를 보고 있으니 충돌과 추돌의 의미구분을 마치 어려운 時事解說이나 하는 것처럼 남녀 두 아나운서가 나와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2008. 6. 20. 낮 11. 55) 漢字를 알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을 이렇듯 그 뜻을 하나하나 암기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學術用語에서도 漢字를 알면 대략의 槪念은 설명을 듣지 않고도 파악할 수 있다. 과학에서의 술어는 정밀성이 생명이지만 대략의 의미파악에는 글자만 보고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 술어들을 요즘 學生들은 하나하나 뜻을 暗記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苦痛을 하루빨리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또 한글로만 표기한 用語에는 相反된 또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것들이 많다. ‘해독’이 ‘害毒’인지 ‘解毒’인지, ‘유수량’이 ‘流水量’인지 ‘留水量’인지, ‘전자’가 ‘前者’인지 ‘電子’인지 본문을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며칠 전 조선일보(6월 20일자)에 “냉정한 일본인---”하는 커다란 제목의 글이 있었다. 冷靜이란 뜻인지 冷情이란 뜻인지 분명치 않았으나 본문을 읽어 본 후에야 冷靜인 것으로 짐작하였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이런 지레짐작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술어의 難解性, 暗記의 부담 등이 基礎科學 忌避現象의 큰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 것이다. 어렵게 공부하여 졸업해 보아야 일자리 구하기 힘들고, 구해도 돈벌이도 시원찮은 기초과학을 기피한다고 그 靑少年들만 탓할 수 있을까? 최근 知識과 技術의 新陳代謝가 빨라지면서 동시에 知識의 양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술어의 양이 급속히 增大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제 앞으로 漢字를 전혀 모르는 우리의 後續世代가 이 새 술어를 어떻게 우리말로 나타낼 것인가?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科學의 세계에서도 그래서 漢字敎育이 시급한 것이다.

물론 敎育當局에서도 漢字敎育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中高校 과정에서 각각 900자의 漢字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교육은 사실상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漢字 또는 漢文과목을 따로 두어 必修도 아닌 選擇과목으로 하고, 여타 과목의 敎科書에서는 “필요한 경우에 限하여” 漢字를 괄호 속에 넣어두고(倂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괄호 속에 넣어 둔 漢字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진실로 漢字敎育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면 漢字를 우리글이 아니라고 더 이상 강변하지 말고 모든 敎科書 속에 倂記가 아니라 露出 混用해서 써야 한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은 漢字와 漢字語를 文章 속에서 자연스레 익히게 되고, 또 쓸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漢字科目이라는 것을 따로 둘 필요도 없어진다. 고작 2,000字 가량의 基本 漢字를 이렇게 하여 생활 속에 융합시켜 가르침으로써 科學도 어렵지 않게 느껴지면 知的 充足의 喜悅이 覇氣있는 청소년들을 기초과학에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現今의 청소년의 基礎科學 忌避風潮, 이를 克服하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國際競爭力은 더 이상 강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漢字敎育은커녕, 지금 우리 나라는 英語의 早期敎育 熱風에 휘말려 있다. 영어의 조기교육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漢字敎育의 不在로 말미암아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漢字語도 제대로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英語만 가르쳐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