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박장대소拍掌大笑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好學 2012. 6. 15. 23:57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스톡홀름에 사는 비르깃 야콥센씨에겐 아들이 둘 있습니다. 둘 다 소중하지만 둘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각별합니다.

크리스티안! 올해로 17세인 이 청년은 엄마를 닮지 않았습니다. 검은 머리에 가느다란 눈, 그리고 황금색 피부. 아이는 두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 한국에서 왔습니다. 불화와 폭력이 잦았던 젊은 부부로부터 버려져 외할머니에게 갔다가 다시 위탁모에게 넘겨졌던 아이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에겐 뼛속 깊이 이별의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매일 밤 열 번 이상 잠에서 깨어 우는 아이. 야콥센씨 부부는 아기 침대를 자신들 방으로 옮겨 울 때마다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배고픔'을 느끼는 감각을 되찾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굶주림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배고픔을 무의식 속으로 넣어버린 탓입니다. 아이는 어른들이 실망할까 봐 과자 부스러기 하나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야콥센씨는 물감을 사와 온통 지저분하게 노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네 살 때 글을 깨쳤고, 동물과 자연에 관심이 많아 100여 종의 버섯 이름과 라틴어 학명까지 외웠습니다. 다쳤거나 주인 잃은 동물은 어찌나 잘 돌보는지, 덕분에 그들의 집에는 거미와 뱀이 함께 삽니다.

평온했던 야콥센씨 가족에 위기가 온 것은 크리스티안이 15세 되었을 무렵입니다. 친구들과 다른 외모에 부쩍 신경쓰기 시작한 아이는, 가족이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의심합니다. '내가 없어져도 아무 상관없지 않으냐'고 대들며 밤에 집을 나가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야콥센씨는 의연하게 버티며 기다렸습니다. 매 순간 크리스티안에게 사랑을 확인시켜주었고, 외출하면 시간마다 전화를 걸어 엄마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길에 아이가 다시 집을 나갔다는 연락이 옵니다. 휴대전화는 불통이고,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아이가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그녀는 폭발했습니다. 전화의 음성사서함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울었습니다. 5분 후. 전화가 걸려옵니다. "엄마, 나 살아 있어. 그리고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게."

이 얘기는 '아름다운 인연'(사람과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야콥센씨 말고도 17명의 스웨덴 엄마들이 한국 아이를 입양해 기르면서 느낀 사랑과 고통이 생생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내가 낳은 아이든 아니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부모란 하느님이 보낸 이 아이들을 맡아 잠시 길러주는 청지기일 뿐"이라고. "그래서 힘들었지만 행복했노라"고….

스웨덴 말로 아줌마가 '탄트(tant)'라고 합니다. 그들의 공력을 배우고, 대한민국 아줌마의 패기를 나누러 1년간 연수를 떠납니다. 그간 줌마병법을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