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박장대소拍掌大笑

일하는 엄마들이여, 우리 조금만 뻔뻔해지자

好學 2012. 6. 15. 23:48

일하는 엄마들이여, 우리 조금만 뻔뻔해지자

 

 

서른둘에 결혼, 마흔 살에 학부모가 된 커리어 우먼 A씨. 3월 초 외동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뒤 꼭 열흘 만에 응급실에 실려갔다. 몸살에 스트레스성 장염이 병명. 주말 내 불가마 구들장을 지고 누웠어도 좀처럼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프로’인 그녀, 굳이 “나이 탓”이라 변명하지 않았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IT업체에 다니면서도 일과 육아를 성공적으로 병행시켜 ‘철의 여인’이란 칭송을 받아온 A씨를 고꾸라뜨린 주범은 누구일까. 체하면 신물과 함께 그 원인이 된 음식물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더니, 며칠 전 아이 초등학교에서 열린 학부모 회의, 그 까칠쌉싸름했던 풍경이 눈 앞에 선연히 떠오른다.

“아이들 비뚜로 나가는 책임은 모두 가정 교육이 잘못된 데 있다”는 교장선생님 훈계는 ‘모두’란 단어만 빼면 지당하신 말씀! “선생님께 불만 갖지 마세요. 하느님처럼 무조건 믿고 따라야 아이가 훌륭한 사람 됩니다”라고 역설하신 교감선생님 지론에도 토 달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다. 선생님은 신(神)? 적어도 학교에선 그렇지 아니한가.

화근은 담임선생님과의 대화 시간에 발생했다. 어린이집 선생님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온 몸에서 퍼져나오는 ‘포스(force)’라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를 향한 죄책감만 떨쳐버렸어도, 알토란 교육정보 줄줄 꿴다는 젊은 엄마들 무리에 어떻게든 끼어들어야 한다는 열망만 자제했어도, “학급도우미로 1년간 봉사해주실 어머니~” 하는 담임의 간곡한 주문에 손을 번쩍 들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어쩌랴. 엎어진 물, 주워담지 못할 바에야 깨끗이 닦아버리면 그만이다. ‘유리천장’ 턱 밑까지 올라온 비결도 바로 이 ‘무대뽀’ 정신 아니었던가. 종합장 빠뜨린 사실을 깨닫고 출근길 지하철을 박차고 나와 학교로 달려갈 때에도, 야근하고 돌아온 날 밤 아이의 운동화를 비누칠해 빨면서도 “일등 엄마”라는 자부심에 두 눈을 부릅떴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아온 종잇장을 코팅해 보관하겠노라 한밤중 문방구로 달렸던 그녀란 말이다.

한데 입학 7일째 되는 날, 대문 밖을 나서던 아이 입에서 결정적인 한 마디가 튀어나온 것이다. “엄마, 너무 ‘오바’ 하는 거 아냐? 그러잖아도 학교 가기 짜증나는구만.”

절망의 늪에 빠져버린 A씨.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얹고 한시름 앓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아이 셋과 전쟁하며 사는, 둘째 낳고 ‘신도 다니고 싶어했던’ 직장을 그만둔 옆 동 엄마. “처음엔 다 그래. 너무 잘하려니까 아프지. 일하는 ‘초딩’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덕목 몰라? 뻔뻔해지기, 미안해하지 않기. 엄마가 편안해야 아이도 편안한 법이야.” 열흘간 참았던 눈물이 꾸역꾸역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