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박장대소拍掌大笑

허허실실 최 여사의 마음수행법

好學 2012. 6. 15. 23:51

허허실실 최 여사의 마음수행법

 

남편 탓에 속불이 난다고요?… 자식 탓에 화병이 생겼다고요?
바람처럼 지나가게 두세요… 나무처럼 미련하게 버티세요
웃으면서 詩 한 편 읊으세요… 마음공부, 어렵지 않습니다

 

 

최목자 여사가 일을 썩 잘하는 가사도우미는 아니었다. 울 100% 머플러를 뜨거운 물에 빨아 수세미 사촌으로 오그라뜨리질 않나, 프라이팬에 식용유 대신 물엿을 들어부어 주인집 여자의 간을 뒤집었다. 남도(南道) 여인네라고 선뜻 최 여사를 낙점했던 집주인들은 짜기만 하고 맵기만 한 그녀의 음식 솜씨에 입을 딱 벌렸다. 설거지하는 손아귀 힘만 천하장사여서 주인집 찬장에 성한 그릇이 없었다.

그런 최 여사가 20년 가까이 가사도우미로 장수하고 있는 비결은 사내 못지않은 팔뚝과 철갑을 두른 웃음보 덕이었다. 까탈스러운 주인집 여자들이 시시콜콜 잔소리를 하고 구박을 해도 헤벌쭉 웃어넘기는 게 그녀의 으뜸가는 능력이었다. 립스틱이 없어졌네, 금반지가 사라졌네 누명을 뒤집어써도 "야들이 발이 달렸나, 눈이 달렸나. 이 목자 아짐씨 꽃눈에 피눈물나게 허지 말고 싸게싸게 나와부러라잉" 하며 또 배시시 웃었다.

최 여사의 억척 이력에 위기가 닥친 건 '꼭대기 할머니'를 집주인으로 만났을 때였다. 사소한 일에도 머리 꼭대기까지 열불을 내는 꼭대기 할머니는 청결강박증까지 타고난 70세 노인이었다. 매일 아침 각 방 이불은 물론 매트리스까지 걷어 먼지를 털어야 하고, 양말 한 짝도 애벌빨래 후 겉으로 한번, 뒤집어 또 한번 돌리는 세탁 과정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그래도 걸레질보단 수월했다. 하루 두 번 서른댓 평 아파트를 무릎 꿇은 채 물걸레질하고 마른 걸레질까지 할라치면 온몸이 으스러지는 듯하여 "천하의 목자도 저승길 갈 때가 됐나 보네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그렇다고 일주일도 안 돼 이 집을 뛰쳐나간 수많은 가사도우미들처럼 제 발로 걸어나갈 최 여사는 아니었다. "내 이름이 목자여. 웬만한 비바람에 흔들리지 말라고 우리 아부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디, 여서 포기하면 나가 전국의 나무님덜 욕보이는 꼴이 되고말고, 암만."

그 대책 없는 뚝심에 손을 든 쪽은 꼭대기 할머니였다. '아이구, 내가 저 미련곰퉁이 여편네를 내일 당장 쫓아내고 말지' 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매일 아침 최목자 여사가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면 노인의 양볼에 생기가 돌았다. 감기몸살로 자리 보전할 때 매끼 흰 쌀죽을 끓여서 간병을 한 뒤로는 목자 여사와 겸상을 하기 시작했고, 찬밥에 마늘장아찌를 얹어 먹으면서도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나이 육십 중늙은이가 왜 이러구 살어."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집에서 놀면 뭐한다요." "서방은 뭘 하길래 늙은 마누라를 이리도 혹사시키누." "젊어서 내내 밖으로 나돌다가 병들어 조강지처 찾아온 지 몇날 안 됐어라." "그걸 가만둬?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놓지." "그래도 사내라고 아랫목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든든합디여. 이빨 빠진 호랭이 구박하는 재미가 쌉쌀합디여."

뼈대 있는 집안임을 자랑하는 꼭대기 할머니였지만 최 여사에게만큼은 속엣고민을 털어놨다. 홀어머니 안 모시겠다고 다툴 때는 언제고, 지난해 코딱지만한 땅이 벼락같이 나타나자 서로 모셔가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자식들 탓에 화병이 났다고 했다.

"어느 날은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이 콱 막히는 게 속불이 나서." "그래도 누구 집 자식처럼 육십 넘은 에미 골병들게 하진 않잖어요." "자네는 부처님 도라도 깨쳤는가." "열불내봤자 애꿎은 내 가슴만 홀라당 타지요. 나는 애시당초 나무토막이다, 죽은 사람이다 하고 두 귀를 콱 틀어막지라. 저 웬수가 나를 성불시킨 은인이로고 함시롱." "그런다고 화가 가라앉으면야." "마음에 불길이 오르면 곧장 뿜지 말고 몸 안에 가둬보시요잉. 항문을 조이고 근육에 힘을 빡 주고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에서 항문을 열고 숨을 후우욱~ 하고 내쉬면 이글거리던 불길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안허요." "방귀밖에 더 나오겠는가?" "그래도 안되면 따신 물에 두 발을 담그고 시 한편 멋들어지게 읊어라.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으아~ 죽이지요잉?" "그것이 시여?" "아따, 쪼매 더 들어보소.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워매~ 좋은 거. 심장에 박힌 대못이 확 빠져나가는 것 같지 안허요?"

그날 꼭대기 할머니는 최목자 여사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최 여사가 비행기 값을 모으는 대로 둘이 함께 성산포에 가기로. 또 있다. 무릎걸레질은 이틀에 한 번만, 이불털기도 3일에 한 번만! 마음공부에 대한 수업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