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 점액질 치유 》4

好學 2012. 3. 31. 20:52

《 점액질 치유 》4

< 요한복음 20장24절부터 28절까지 >

(요 20:24)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불평꾼 점액질의 치유 》

  오늘은 기질 네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불평꾼 점액질의 치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서양의학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히포크라테스라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이 사람이 무식하게도 사람의 기질은 혈액에 따라 달라진다는 오해를 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니지요. 혈액하고는 관계도 없는데 이렇게 착각을 했습니다. 접근하는 것은 착각이었지만 분류해 놓은 것은 그럴 듯 합니다. 정말 그런 특징이 있습니다. 혈액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질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히포크라테스가 나누어 놓은 기질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네 가지 기질을 이야기했습니다. 다혈질이 있고 담즙질이 있고 우울질이 있고 점액질이 있다, 이렇게 기질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우월한 기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 기질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기질을 분석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자기의 기질상의 장점은 잘 활용하고 기질상의 약점을 보완하면, 성령의 은혜 가운데 변화가 되면 최상의 BEST를 가지고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을 정리해 보면 다혈질의 대표적인 베드로 같은 사람은 특징이 무엇이었습니까? 생기가 있고 낙천적이고 생동감있고 즐겁습니다. 표정에 모든 것이 훤히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단점은 엄벙덤벙해서 비실제적이고 조직적이지 못합니다. 돈키호테 같은 모습입니다. 화를 잘 냅니다. 그리고서 뒤끝이 없다고 합니다. 폭탄 집어던지고 난 다음 뒤끝이 없다고 합니다.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보완해야 합니다. 끝까지 주님을 잘 따라가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담즙질 같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담즙질의 전형인 바울이나 야고보 같은 사람은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입니다. 그리고 집요합니다. 스토커 가운데 담즙질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면 이루어내고야 맙니다. 얼마나 좋은 성격입니까? 성공지향적인 사람입니다. 실제적입니다. 대성공을 이루었던 지도자 가운데 생각보다 담즙질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약점이 있습니다. 잔인합니다. 반드시 뒤끝이 있습니다. 끝을 봅니다. 보복하려고 마음먹으면 하고야 맙니다. 그래서 파렴치범이나 마피아 가운데 담즙질이 많습니다. 알 카포네, 지존파 이런 사람들 가운데 많습니다. 이것 성령 안에서 부드럽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녹아버려야 합니다.
  야고보 같은 사람은 엄청난 담즙질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됩니까?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그 의지를 가지고 주를 위해서 죽는 모습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우울질은 어땠습니까? 모세 같은 사람이 우울질이라고 했지요. 감성이 풍부합니다. 철학자나 예술가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이상주의자입니다. 완벽주의자입니다. 분석적입니다. 우울질적인 사람이 옆에 있으면 참 유리합니다. 모든 것을 다 분석해 줍니다. 남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잘 생각해냅니다. 과학자들 중에 많습니다. 우리는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주워 먹기 바쁜데 뉴턴 같은 사람은 만유인력을 발견합니다. 인생에서 이런 사람만큼 우리에게 기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약점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너무 심사숙고하다 보니까 우유부단합니다. 귀가 얇습니다. 누가 가슴 아픈 이야기 몇 마디 하면 며칠동안 잠을 못잡니다. 비관적입니다. 잎사귀도 마지막 잎새만 쳐다봅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된다, 망한다는 말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울질적인 사람의 강점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해서 주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모세가 어땠습니까? 성경은 모세를 일컬어 여호와를 대면하여 아는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우울증에 빠질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울질적인 사람은 주님만 바라보면 다 크게 쓰임받습니다. 선지자들이 다 우울질입니다. 우울질은 치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다혈질인 베드로가 선지자라고 해 봅시다. 주님께 받은 말씀이 백 마디라면 자기가 추려서 요점만 간단히 열 마디만 전해 버립니다. 선지자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울질은 백 마디를 들으면 백 마디 하나도 빠지지 않고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치밀하게 받아 적습니다. 치밀하게 증거합니다.
  제가 일본을 가보니까 일본이 근본적으로 우울질적인 민족인 것 같습니다. 치밀합니다. 신발 똑바로 안 놓으면 막 신경질 내고 화장실 갔던 신발 계속 신었다고 쫓아다니면서 핍박하고……아주 지독한 우울질 아닙니까? 아무거나 신으면 어떻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다혈질적인 성격이 가미되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갔던 교회가 변재창 선교사님과 사역을 연계한 교회입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한국민족과 일본민족을 합쳐 놓으면 기가 막힌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혈질적인 민족이기 때문에 시작을 잘합니다, 일을 잘 벌입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일을 막 벌여놓습니다. 일본 열도 전체!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다 모여!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못합니다. 감히 못합니다. 한 세기에 그런 말을 할 사람 한 사람 두 사람 나올까말까 합니다. 우리는 일을 막 벌여놓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의 특징이 뭐냐면 수습이 안 됩니다. 그래서 결국 일본사람이 와 가지고 다 수습을 한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콤비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 교회의 소목자훈련하고 연계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도 일 벌이는 것은 둘째가라면 서럽지 않습니까? 변 선교사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일을 막 벌이는 것입니다. 열도가 아니라 세계에 다 벌여 놓으면 일본사람이 와서 다 수습하고…… 제가 볼 때 한국민족과 일본민족이 만나면 기가 막힌 콤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결혼도 다혈질적인 남자, 우울질적인 여자가 만나면 참 잘살 것 같습니다. 제 상상입니다.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잘살 것 같습니다. 

4. 기질④ - 점액질

  마지막 살필 것이 점액질인데 점액질의 대표적인 사람이 도마입니다.

4-1 기질④ - 점액질의 특징

  이 사람은 냉정하고 소심하지만 실제적입니다. 실제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담즙질하고 비슷하지요. 우울질하고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점액질은 섞인 성격입니다. 아주 끈적끈적합니다. 묘한 성실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점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판단력은 있는데 뒷말이 많습니다. 불평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 하자고 하면 혼자만 튀어나와서 찬물을 싹 끼얹습니다. 우울질을 비관적이라고 얘기한다면 점액질은 비판적입니다. 밤낮 비판만 하는 사람들 있지요. 약점만 파악합니다. 어떤 사람이 장점을 바라보면 상심합니다. 약점을 바라보면서 생기가 돕니다. 점액질의 약점입니다. 
 

「기도」라는 책을 썼던 오 할레스비(O. Hallesby)라는 분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다혈질이 열정적일 때 점액질은 얼음처럼 차갑습니다. 다혈질이 막 흥분할 때 점액질은 차디찬 냉정성을 유지합니다. 우울질이 비관적일 때 오히려 점액질은 낙천적이 됩니다. 담즙질이 사업과 계획으로 마음이 부풀어있을 때 찬물을 끼얹는 일을 많이 합니다.’ 점액질은 잘만 쓰면 상당히 보완적인 성격입니다. 점액질적인 사람은 참모로 쓰면 좋아요. 장관은 잘하는데 대통령하기 힘든 사람, 그것이 점액질의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특징은 허구헌날 빈정댑니다. 주머니에 손 넣고 어깨 이렇게 하고서 ‘잘해 봐~’ 그러는 애들 있잖아요. 그러면서 빈정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뭘 예리하게 잡아내기는 합니다. 삼일교회에 와 가지고 맨 뒤에 앉아서 빈정대면서 ‘이거 막 가는 교회군. 문제가 있군. 전도 열심히 한다고 하더니만 앞에 있는 사람도 전도 못하는군.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긴! 쓰레기만 버리는군. 화장실이 이 꼴이 뭐야!’ 죽지도 않아요. 다니면서 빈정빈정합니다. ‘화장실이 이 꼴이 뭐야, 휴지가 이게 뭐야!’ 또 밖에 나가서 흥분하는 사람 있지요. ‘주차를 이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지하주차장에 넣으라는데 왜 안 넣는 거야!’ 자기도 거기에 대 놓으면서…… 왜 그러냐고 물으면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그러잖아!’ 이런 사람들 있습니다. 점액질입니다. 밤낮 궁시렁궁시렁대면서 불만, 남의 약점 잡아내고 흐뭇해하고 삶의 희열을 느끼는, 쉽게 말해서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도마가 그렇지요. 요한복음 20장에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나오는데 디두모가 무슨 뜻이냐 하면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디두모는 헬라어입니다. 헬라어로 쌍둥이라는 뜻이고 도마라는 것은 아람어인데 이것도 역시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도마는 쌍둥이입니다. 헬라어 몰라도 쌍둥이가 뭔지 알 수 있지요? 디두모가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도마는 칼․도마가 아니라 그것도 뜻이 쌍둥이에요. 둘 다 쌍둥이이니까 진짜 쌍둥이겠지요. 사람들이 추측컨대 하나는 죽었다, 하나는 여자 쌍둥이다 별 상상을 다하는데 천국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아무려면 어때요, 관심 없지요? 아무튼 디두모는 쌍둥이입니다.
  공관복음서 마태․마가․누가복음에는 도마의 이름만 나오지 스토리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도마의 스토리가 나오는 곳이 세 군데 있는데 요한복음에는 다 나옵니다. 아마도 요한하고 되게 친했던 것 같습니다. 세 번 나오는데 요한복음 11장 나사로 죽는 사건에 한번 나오고 14장, 다락방 감화라고 하지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십자가 지시기 전에 했던 이야기,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부활 이후에 도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나옵니다. 도마의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세 번 나옵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점액질적인 성격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보완될 수 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2 기질④ - 점액질의 치유

4-2-1 기질④ - 점액질의 치유 - 긍정적인 일에 앞장서라!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사건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식을 보내지요. ‘빨리 와 주세요!’ 요한복음 11장6절을 찾아봅시다. 6절부터 16절까지 교독할까요?
6절 :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절 :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절 :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절 :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11절 :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절 :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절 :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14절 :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절 :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6절 :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이랬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조금 전에 유대로 가서 돌멩이로 맞아 죽을 뻔 하지 않았습니까?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거기 왜 갑니까?’
예수님:‘나사로가 아직 잠들어 있어.’
제자들:‘잠들어 있는데 뭐 하러 갑니까?’
예수님이 하두 답답하니까 ‘죽었어, 임마!’ 그러면서 ‘나사로가 죽었다 내가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한다, 왜냐하면 이것을 통해서 너희에게 크나큰 믿음이 생길 것이야.’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밝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디두모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빈정거림입니다.
도마: (주머니에 손 넣고서)‘우리도 함께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죽을 테면 어디 죽어보자, 같이 죽어. 어디 한번 죽어 보자.’ 이런 빈정거림입니다. 그러니까 12명의 제자의 대변인이지요. 그런데 점액질의 특징이 뭐냐 하면 긍정적인 일의 대변인이 되어서 탁탁 마음을 터뜨려 주는 것이 아니라 불평이 있을 때 불평의 대변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들, 어떤 모임에서 모두 다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을 때 누군가 대표로 불평을 터뜨려주는 사람이 있지요. 점액질입니다. 속으로는 좋아하지요. ‘내가 할 얘기 쟤가 해 주는구나.’ 그러나 그러면서 ‘저 놈은 믿을 놈 아니야.’ 이런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불평을 선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점액질의 특징은 이런 일을 하면서도 죄의식이 없어요. 그러면서 자기를 어떻게 합리화하느냐 하면 자기는 야당(野黨)기질이라고 합니다. ‘나는 야당기질이야!’ 그리고 반대를 사명으로 여깁니다. 항상 반대를 하니까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좋은 성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십자가가 많아.’ 하면서 기꺼이 그것을 짊어지고 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라고 착각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자기가 잘못해서 밤낮 욕먹으면서 그것이 십자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 하면 자기의 잘못된 부분들이 약점이라는 것을 알면서 보완해야 되는데 그것을 못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불평할 때 희열을 느끼고 약점을 바라볼 때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느냐면, 점액질의 특징은 선도하는 데에 좋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불평하는 데에 선도하는 입장에 서지 말고 희망을 주는 데에 선도적인 입장이 되라는 것입니다.
  저는 점액질적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복음으로 변화되니까 똑같은 기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면 사람들이 다 좌절해 있을 때 왜 우리가 희망을 가져야되는지를 선언해 줍니다. 기가 막힌 것 아닙니까?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모든 사람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내 손바닥의 못 자국을 봐라, 그리고 믿는 자가 되라!’ 그럴 때 나머지 제자들은 말은 하고 싶지만 그냥 멍청하게 가만히 있었잖아요. 그럴 때 도마가 자기의 예리한 지성을 가지고 성경에서 표현하는 최고의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고백과 가이사랴 빌립보의 고백, 또 하나의 중요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바로 도마가 얘기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장28절)입니다. 신학적으로 도마의 고백만큼 중요한 고백이 있는지 아십니까? “My Lord and my God”(NIV)
  어떤 고백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절망할 때 희망을 주고 주님 앞에 신앙고백을 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잖아요. 점액질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면 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희망을 주는 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 말씀을 증거하는 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할 때 그 예리한 지성을 가지고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 거기에서 묘한 재미를 느낄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부르심을 입었구나!’
  점액질은 고쳐져야 합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데에 앞장서지 마십시오. 남 죽이는 데에 앞장서지 말고 희망을 주고 칭찬하는 데에 앞장서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사람이 되면 정말 크게 쓰임받는 거룩한 종이 될 줄로 확신합니다.

1-2-2 기질④ - 점액질의 치유 - 영적 세계에 빠져들라!
                      기뻐할 때에 뛰며 기뻐하고 슬퍼할 때에 펑펑 울라!

  두 번째 사건이 나오는 것이 요한복음 14장입니다.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마지막 설교를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신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이 다 두려워합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또 한번 찾아봅시다. 
  요한복음 16장 1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을 한번 볼까요?
  교독하겠습니다.
1절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2절 :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3절 :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절 :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5절 :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6절 :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절 :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무슨 얘기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제 천국에 간다,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 다, 너희의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 내가 다시 오겠다, 내가 가는 곳 그 길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천국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죽음 이후에 올 천국 이야기를 쭉 하고 있습니다. 지금 천국 이야기를 하는데 도마는 이 땅 이야기를 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어디로 가시려고요? 저는 그길 처음 들어보는데요? 우리가 어찌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천국을 얘기하는 것인데 도마는 ‘예수님 무슨 소리하는 것입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도마가 이런 멍청한 질문을 안 했으면 예수님이 그 유명한 14장6절을 대답 안 했겠지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도마도 필요해요. 이런 멍청한 사람도 하나 필요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는 천국 길 구원 길을 얘기하고 있는데 도마는 현실의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예루살렘으로 갈까요, 유대로 갈까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점액질적인 사람의 특징은 예수님이 영적인 것을 말할 때 자기는 세속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천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이 사람은 실제 세계에 대해서 떠나지 못합니다. 영적인 것을 이해 못 합니다. 교회에도 이런 점액질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하면 냉소적으로 나옵니다. 영적 이야기를 하면 자꾸 육적 이야기를 합니다. 보통 사람에게 간증을 시키면, 이번 일본선교에서 풍성한 은혜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의 성령이 우리 속에서 뜨겁게 역사했고 예배 가운데 임재했습니다 이러는데 점액질적인 사람이 나와서 간증할 때에는 그런 것이 안보입니다. 잠자리가 어땠고 역시 오뎅국은 먹으면 안 되고 이런 얘기를 합니다. 어느 집에 갔더니 음식 잘 해주더라, 샤브샤브가 역시 입맛에 맞고 간장은 역시 일제간장…… 그런 얘기만 합니다. 남들은 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혼자만 밥 먹는 이야기를 합니다. 점액질은 12명의 제자 이름 외우라고 하면 다 외웁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또 다른 버전을 외워볼까? 세 가지 버전으로 죽 외웁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의 영적인 의미가 뭔지, 그런 것은 모릅니다. 하나도 모릅니다. 영적인 의미를 모릅니다.
  점액질적인 사람은 교회에 와서도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밤낮 구제, 행함, 겉의 제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 교회는 장로가 몇 명이에요? 집사가 몇 명이에요? 몇 명 모여요? 예산이 얼마예요?’ 이런 것만 관심이 있습니다. ‘몇 팀까지 있어요? 남녀비율이 어때요? 청년과 장년 비율이 어때요?’ 그런 것만 조사하는 사람들, 점액질입니다. 영적인 부분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점액질적인 사람이 정말 힘든 사람인데 이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끌리지 않더라도 의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에 깊이 들어갈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그래서 점액질적인 사람은 생각보다 오순절 계통의 교회는 잘 안 갑니다. 차디찬 이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정의를 외치는 곳에 많이 모여 있습니다. 비판적이고 차디찬 영성을 가지고 있고 구제나 행함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한번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확 불어가지고 의심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바람으로 체험적인 신앙이 되면…… 변화됩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사람이 있지요. 선교갈 때에 선교는 왜 가느냐고 하고 교회는 역시 성경공부와 교제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 청개구리 띠들…… 그런 사람들은 어렵더라도 참여해서 성령의 은혜를 맛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하나님께 헌신하는 그 모습을 보여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흥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흥분할 때에 같이 흥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기뻐할 때에 같이 기뻐해야 합니다. 은혜스러운 간증을 할 때 모든 사람들이 다 눈물 흘릴 때 일어나서 좌우 돌아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사람들 점액질이에요. 왜 우나, 누가 우나 그런 것 확인하는 사람들 꼭 있지요. 만날 둘러보는 사람…… 그러면서 꼭 확인하는 사람이 있어요. 남들 은혜받고 있을 때에 카메라 들고 찍는 사람 있지요. 이 장면을 남겨야 된다고…… 자기는 흥분 안 합니다. 신문기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하면서 자기는 말똥말똥합니다.
  점액질적인 사람은 그런 것 하지 마십시오. 같이 흥분해야 합니다. 같이 기뻐해야 합니다. 같이 눈물 흘려야 합니다. 점액질적인 사람들은 역사의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제가 누누이 그런 얘기를 하지요. ‘하나님, 내가 없을 때에 부흥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 내가 없을 때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도록 꼭 내가 그 자리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점액질적인 사람은 아무 데도 빠지지 마세요. 도마도 빠졌다가 나중에 바보같이 되잖아요.
  점액질적인 사람들은 머리 잘 굴리기 때문에 예측을 딱합니다. 코리언타임을 딱 생각해서 ‘설교는 50분쯤에 시작할 거야.’ 딱 맞추어 오는 사람들 있잖아요. 저기 저 뒷자리에 점액질들 많이 있을 거예요. 머리가 좋기 때문에 머리만 씁니다. 자기 필요한 것, 설교 딱 듣고 집에 가 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미리 와서 앉아 있는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보라서 일찍 나와 앉아있는 줄 아십니까? 점액질은 자기의 쓴 뿌리를 꺾어버려야 합니다. 일찍 나와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찍 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일 늦게 나가세요. 누가 정리하나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희생해야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흥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같이 기뻐하고 같이 흥분해야 합니다. 점액질은 누가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해도 하나도 기쁘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것을 깨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오버하세요. 안 기뻐도 기뻐하는 척! 예를 들어서 성가대에게 박수 쳐 주라고 하면 ‘뭐 하는 짓이야.’ 이러지 말고 공산당 같이 기립박수 막 치세요. 너 왜 그러냐고 하면 ‘나 점액질이이라서 그래! 이래야 고치잖아.’ 그러면 그 사람은 그냥 놔두자고요. 어떻게 합니까? 그거 병인데…… 그러면 치유가 됩니다. 점액질은 막 오버를 해야 됩니다. 막 박수치고 광신도 같이 해야 합니다. 만일 다혈질이 광신도 같이 하면 내가 말리겠지만 점액질은 치유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놓아두겠습니다. 오버하세요. 율동할 때도 오버해서 율동을 하세요. 그러면 최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2-3 기질④ - 점액질의 치유 - 믿고 따르는 법을 배우라!

  마지막 세 번째,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여러 사람이 얘기했지요, 마리아도 얘기하고 베드로도 얘기하고 다른 10명 다 보았다고 얘기하는데 도마만 지각해서 못 보았습니다. 그리고서 뭐라고 합니까? ‘나는 손대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점액질의 약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가 없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다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인해 버려는 것입니다. 내가 없을 때 일어난 일은 못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점액질적인 사람은 자기 없을 때 결정된 것에 대해 나중에 와서 다 반대합니다. 다시 하자고 합니다. 자기주관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이 배워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타인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 봐야 믿습니까? 보지 않고 믿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트루먼 쇼」라는 영화 있었지요. 그 영화 주인공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각본에 의해서 짜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고 믿는 것이 더 많습니까, 안 보고 믿는 것이 더 많습니까? 내가 얼마 전에 일본에 갔었는데 한반도의 동쪽에 일본 열도가 있는 것 믿습니까? 가 봤어요? 가보고 믿어?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를 속이는 거예요. 원래는 일본이 어디 있느냐 하면 서쪽에 있어요. 서쪽에 있는데 나는 비행기를 탈 때 서쪽으로 가는지 동쪽으로 가는지 감각이 없거든요. 지도 하나 가짜로 그려 놓고 동쪽에 있다고 자꾸 속이는 거야. 제가 이번에 갔다 온 곳도 일본이 아니에요. 중국 어느 마을, 일본사람 모여 사는 데에 데려다 놓고 일본이라고 속일 수도 있지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자꾸만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요? 저 목사가 돌았나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듣는 순간에 막 불안해지기 시작하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 하고 믿잖아요. 가 보지도 않고 믿잖아요. 확인도 안하고 믿잖아요. 왜요? 다른 많은 사람들이 봤다고 하니까 믿어야지 어떻게 만날 의심합니까? 
 

이단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 우리 교회에도 이단들이 한두 명 와 가지고 이상한 것 퍼트리고 홈페이지에다가도 질문을 가장하여 자기 이론들을 펴는 사람들이 있지요? 특별히 안식교사람들 가운데 많은 것 같아요. 안식교 꼴통들이 와서 밤낮 토요일이 진짜 안식일이냐 주일이 안식일이냐 따니고…… 우리 교회에 몇 명 그런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보따리 싸서 다른 데 가든지 회심을 하든지 하세요! 왜 남의 교회에 와서 왜 장난입니까?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이단의 접근이 있을 때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순수하게 본질적으로 믿는 많은 정통적인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하면 믿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단연구를 꼭 다 해야지 압니까?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이단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어떻게 이단을 다 연구해서 이단이라고 해야 합니까? 믿음으로 믿는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하면 믿어야지요. 옛날에 내가 어떤 글을 읽었습니다. 어떤 장군님에게 딸 앞으로 소포 하나가 왔다고 합니다. 딸이 이것을 열어보려고 하는데 장군님이 보기에 뭔가 이상하더라고 합니다. 이 장군이 딸한테 ‘너 아빠를 믿지? 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것 믿지? 갖다버려.’ 그랬다고 합니다. ‘손대지 말고 갖다버려.’ 그래서 딸이 갖다버렸더니 뻥하고 터지는 폭탄이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선물을 뜯어보고 싶잖아요. 그럴 때 그것을 뜯으면 안 되는 것을 꼭 확인해 주어야 압니까? ‘얘 보아라, 뜯었더니 터지잖니? 아빠는 먼저 저 세상으로 간다.’ 그러면 되겠어요? 그때 필요한 것은 이거는 논리적인 설명도 아닙니다. 무슨 접근입니까? ‘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것 믿지?’ ‘예, 믿어요.’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믿으면 갖다버려.’ 믿기 때문에 그 행동을 따르는 것 아닙니까? 이유는 나중에 깨닫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저는 목사이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100% 납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제가 납득 못하는 것도 있어요.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납득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오른쪽 뺨을 때릴 때에 왼쪽 뺨도 갖다 대라? 요즘에는 그것이 납득이 됩니다. 그것이 승리라는 것을요. 문제가 있을 때 문제와 대응하지 않고 주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면 해결된다? 내가 그런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 적이 너무 많아서 그것이 진리라고 납득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과거에도 납득되었는지 아십니까? 과거에는 납득이 안 됐어요. 그러나 믿었습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잘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진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래요. 이해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나놓고 보니까 맞더라고요. 역시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점액질적인 도마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밤낮 자기가 봐야 합니다.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실증주의자입니다. 실증주의자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합니까?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맹목적인 믿음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 보고 믿으려면 네 평생에 믿음이 생길 줄 아니? 기본적으로 나와의 신뢰관계를 맺고 내 말이라면 따르는 자가 되라, 그 뜻입니다.
  나중에 도마가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안되었습니까? 되었습니다. 도마는 페르시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그리고 인도에 노예로 잡혀 갑니다. 도마는 참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도마는 껍질이 벗겨져서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고통스러울까요, 껍질 벗겨져 죽는 것이 고통스러울까요? 인도 사람들은 도마를 죽일 때에 표피를 벗겨 죽였다고 합니다. 그는 인도에 노예로 갔습니다. 원래 점액질적인 성격이 불평의 왕 아닙니까? 그러나 도마는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도에 노예로 끌려가면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내가 노예가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람이 완전히 변화되었지요. ‘천지의 구세주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종의 몸을 입었는데 그 종의 몸을 입는 영광을 내가 만분의 일이라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도마의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점액질적인 사람이 해야 될 일은 불평이 아니라 감사의 선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도 영지에 도마가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도마의 뿌리 때문에 지금도 인도에 몇몇 교회들이 남아 있습니다. 영주가 증거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랬더니 도마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중단한다고 할지라도 복음중단만은 안됩니다.’ 순교를 어떻게 했느냐 하면 ‘저놈 껍질 벗겨!’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는 아니고 들려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죽으면서도 이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그러면서 죽었을 것입니다. 

  점액질적인 사람에게 가장 약한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 바라보는 믿음으로만 보완한다고 하면 이 사람은 최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도마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밤낮 부정적인 것만 바라봅니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비리, 약점만 보이나요? 불구의 눈입니다. 의심의 눈, 의처증 의부증도 병인 줄 알지요? 사람의 장점은 안보고 밤낮 의심하는 것,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느냐면 영광의 눈, 기적을 바라보는 눈, 현실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바라보는 눈, 천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말씀중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기질이든 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각자의 기질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가장 쓰임받기 좋은 종으로 변화되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시간은 기질설교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네 가지 기질을 간단히 살폈는데 특별히 점액질적인 사람들 불평에 앞장서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붙들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현실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열어 달라고,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고 흥분하는 종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의심하고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가지고 주님 앞에 순교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 달라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