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 담즙질 치유 》3

好學 2012. 3. 31. 20:47

《 담즙질 치유 》3

 

 

<마태복음 20장20절부터 28절까지>

(마 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 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 20: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 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18:4 
(마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잔인한 담즙질의 치유 》

3 기질③ 담즙질

  오늘 본문에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이 어머니는 자녀교육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많았던 여인 같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의 치맛바람의 효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세베대였고 갈릴리 지방의 어부였습니다. 아마도 상당히 큰 규모의 어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선교 갔던 목포도 그렇고 통영도 그렇고 다 항구 아닙니까? 그 항구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 보니까 거기에 큰 양식장을 갖고 있다든지 큰 어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거부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아마 이런 집안의 안주인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집안에 하인도 있었고 또 자녀들도 잘 양육시키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부잣집 마나님이었습니다. 자녀들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모든 대가를 다 치를 수 있는 아주 억척스러운 분이었습니다.
  성격은 강하고 담대했던 것 같지만 별로 그렇게 좋은 성격, 여성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녀들을 보면 대부분 엄마의 성격을 닮는 것 아십니까? 엄마가 왈패면 다 같이 왈패, 엄마가 점잖으면 다 점잖고…… 애들이 아빠보다도 엄마의 성격을 많이 닮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을 보니까 야고보도 엄마 같은 성격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야고보의 성격은 담즙질의 전형입니다.
  몹시 급하고 폭발적이고 보복심이 강하고 한번 마음먹으면 끝장을 보고 와신상담, 이런 단어를 전가의 보도 같이 두는…… 성경은 그의 별명을 보아너게라고 했습니다.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벼락 치는 성격이라는 뜻입니다. 성격이 벼락 같다. 누가복음 9장53절을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주님! 벼락을 떨어뜨려서 불바다 만들까요 ? 극단적인 표현을 씁니다. 죽여 버립시다! 없애버립시다! 씨를 말려 버립시다! 껍질을 벗겨 버립시다! 이런 식의 표현입니다. 너무 심했나요? 저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생기가 도는 것을 보면 담즙질적인 성격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사람들은 노력도 있고 헌신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 성질 그대로 두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담즙질은 잔인합니다. 조직폭력배 두목 가운데 많이 있고, 지존파가 담즙질입니다. 거기에다가 재벌 회장 가운데 많습니다. 한번 뜻을 이루면 끝장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이런 사람입니다.
  화를 잘 내는 성격입니다. 네 가지 기질이 있다고 하는데 특별히 화를 잘 내는 성격이 다혈질하고 담즙질입니다. 급하게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 다혈질, 담즙질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화를 잘 내도 특징이 있습니다. 다혈질은 화를 내고 꼭 후회해요. 화를 언제 냈느냐 싶게 금방 후회를 합니다. 결혼해서 사시는 분들, 남편이 소리 버럭 지르고 난 다음에 5분도 안되어서 히히 웃으면 그거 다혈질입니다.
  담즙질은 아닙니다. 화를 내놓고 난 다음에 끝장을 봅니다. 쓸데없는 말을 해 놓고 그 쓸데없는 말에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없애버린다고 말해놓고 진짜 없애버리려고 마음먹습니다. 무서운 성격입니다. 성격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기에 힘듭니다.
  저도 담즙질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이 확실한 것이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중학교 1학년짜리 여학생한테 약간의 호감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니었어요. 진짜 아니었어요. 단지 호감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멍청한 애가 내의 호감을 애정으로 착각해 가지고 노골적으로 공개적으로 싫다는 표현을 했어요. 내가 거기에 분노했습니다. 쟤 인생 망쳐놓겠다는 마음까지 품었습니다. 제가 그 친구와 몇 년 동안 말을 안 했느냐 하면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말을 안 했습니다. 무서운 성격 아닙니까? 성령이 고쳐놓은 성격이지요. 그대로 있었으면 큰일 날 성격입니다.



3-1 기질③ 담즙질의 치유

  담즙질이 그렇습니다. 한번 끝장을 본다고 하면 끝장을 보고 한다면 한다라는 소리 좋아합니다. 나중에 담즙질적인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되었습니까, 안되었습니까? 야고보는 첫 번째 순교자,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요한 1․2․3서를 쓰고 요한복음, 요한게시록을 쓴 사랑의 사도가 됩니다.

3-1-1 기질③ 담즙질의 치유 - 하나님께 치유를 구하라.

  하나님 앞에서 이런 담즙질적인 성격, 좋은 의미로서는 지도적인 능력도 있고 또 한번 한다고 하면 직선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지만 너무 거칩니다. 너무 거칠고 너무 자기중심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기적이고 사랑이 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함께 하고 그 성격을 주를 위해서 쓰니까 순교자가 되고 주를 위해서 변화되니까 담즙질적인 성격의 사람이 사랑의 사도라는 신뢰를 듣지 않았습니까?
  우리 가운데 변화 받지 못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의 은혜 가운데 변화 받는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 가운데 담즙질적인 성격이 있는 사람들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이냐 하면 성령께 성질 고쳐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내 성질, 성령도 못 고쳐!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주님 내 성질 고쳐 주십시오. 이것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능히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고칠 수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시지 못할 리가 없잖아요. 다윗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다윗이 시편 51절7절을 보니까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개선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 달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내 안에 새로운 성격을 창조해 주십시오. 저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옛날에는 없었던 성격이 뭐 하나가 생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해준 마음인 것 같습니다. 내 안에 그런 것이 없었거든요. 청소년 시절에도 없었고 청년 시절에도 없었던 것이 생겼어요. 무슨 덩어리 하나가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성령께서 창조하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22절에 보면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나오지 않습니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러분, 내 힘으로 이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겠다고 마음먹으면 맺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랑할 줄 압니까, 희락할 줄 압니까, 오래 참을 줄 압니까, 충성할 줄 압니까? 우리에게 없는 성격입니다. 내 열매라고 하면 불가능한데 성령의 열매입니다. 내 안에 계신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열매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것입니다. 너희가 성령 안에서 너희 열매를 맺으라고 하면 불가능한데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열매를 맺는다고 하니까 가능합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성령께 붙어있는 것,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5절을 보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붙어있는 자들이라고 했지요. 붙어있는 싸움들을 벌여야 됩니다.
  Dwight L. Moody가 얘기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성질을 못 고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성질 나쁜 것은 죄라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화를 막 낼 때 이것이 내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기질이지 회개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화를 내는 것이 죄인 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화내는 것이 죄입니까, 아닙니까? 죄입니다. 밤을 지새울 정도로 노를 품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화내는 것을 놓고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쳐져요. 내가 화낸 것에 대해서 회개하면 고쳐집니다. 내가 화낸 것에 대해서 이것은 내 기질일 뿐이야 하면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합니다. 평생 그것 때문에 쓰임 받지 못합니다.
  내 성질이 죄라고 생각하고 내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고치지 못합니까? 고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로마서에도 나와 있지만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십자가가 시작하지 않습니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부인해 버리면 십자가가 왜 필요해요? 내가 죄인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렇게 나가야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성질이 죄입니다. 화내는 것이 죄입니다. 그렇게 나아가야지요. ‘치유해 주십시오.’ 그래야 치유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이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우울질이나 점액질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겁먹고 두려워하고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담대함을 주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담대하지 못한 것도 문제 아닙니까? 그것을 놓고 기도하라고요. 담대함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것도 죄 아닙니까?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 그것도 죄라고 생각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치유되는 것입니다. ‘나는 성질이 나서지 않는 성질이야.’ 하면서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을 안 하는 것도 죄 아닙니까? 선교를 나가야 하지만 우울질이나 점액질적인 사람들은 남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안 간다고요. 죄 아닙니까? 시간도 있고 할 수 있는 기회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마음도 주셨는데 다만 내 기질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치유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모습들이 다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혈질이나 담즙질이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화내는 문제를 놓고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내어놓고 외쳐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성질도 고쳐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다 약점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자꾸만 너무 강화시키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성질 나빠서 화가 나면 말을 1주일 동안 안 하는 사람, 한 달 동안 안 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것 잘난 것 아닙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같은 데에 보면 기도할 것 외에는 분방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여기 신혼부부 보면 싸우고 난 다음에 분방하고 문 걸어 잠그고 안 열어준다고 하는데 그때 남편이 뭐라고 해야 합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문을 열라!’  열어야 합니다. 안 열면 저에게 찾아오세요. 그 사람 배교자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그런 것입니다. 문 잠글 수 있는 권리가 없어요. 문 열라고 하면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성질에 못 이겨서 그런 식으로 자꾸 그것을 강화시키고 또 강화시키면 본인이 불행해집니다. 그런 고집들, 화 잘 내는 것, 소극적인 것…… 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약점이 있습니다.’ 그 약점을 주님의 성령 앞에 내어놓고 회개하고 치유시켜달라고 기도하세요. 변화됩니다.
  어떤 성격이든 간에 하나님의 성령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신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능력의 역사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임해서 우리 삼일교회 모든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서 감싸진 인격들, 성령에 의해서 변화된 기질들 갖는 축복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1-2 기질③ 담즙질의 치유 - 작은 일에 희생하라!

  두 번째 담즙질적인 사람은 희생하면 됩니다.
  이 사람의 특징이 뭡니까?
  잔인함이 있다고 했지요 20절과 21절을 보시면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쉽게 말해서 출세하게 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이익을 보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 절대로 손해 보면 안돼! 남을 섬기는 안돼, 군림해야 돼! 그래서 담즙질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애들이 어디 가서 맞고 오면 막 화를 냅니다. ‘왜 맞고 오냐, 패고 와야지!’  ‘나는 정직하게 컨닝 안하고 꼴찌 했어요.’ 하면 ‘왜 볼 수 있는 기회, 좋은 눈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안 돌리니?’ 그러면서 애들을 혼란하게 만듭니다.  어떻게든 쟁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 앞에 군림해야 되고 절대로 2등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가 막혀서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랬더니 이 아줌마는 담즙질이기 때문에 공짜라면 양잿물까지 마신다고 ‘주세요! 공짜인데요!’그럽니다. 그런데 그 마시려는 잔이 무엇이었어요? 십자가인데 십자가인지도 모르고 출세에만 눈이 어두워서 얼마든지 마시겠다고 합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격으로 나가면 담즙질의 최악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담즙질이 해야 될 일은 희생입니다. 손해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특별히 담즙질은 교회에서도 일을 할 때 머리가 좋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사람들 눈에 띄는지 알아요. 그래서 헌금을 할 때도 남들 눈에 띌 때만 헌금합니다. 예를 들어서 1000만 원 할 것이면 100만 원씩 10번에 나누어 내는 사람이 담즙질입니다. 밤낮 남을 의식합니다.
  ‘내가 이것을 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 생각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봉사를 해도 누구 눈 앞에 띄는 봉사를 하지 숨어서 일하는 것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지난번에 이동원 목사님도 우리 교회에 오셔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회가 자꾸 세계선교 세계선교 하다 보니까 설거지 할 사람이 없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세계선교는 설거지부터’ 라고 써 붙였다고 합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외국에 선교 나가 가지고 같은 티셔츠입고 일본말로 하면서 노래 부르면 멋있지요. 마치 자기들이 선교 다하는 양! 그런데 그것만이 선교입니까? 사실은 숨어서 이름도 없이 빚도 없이 설거지할 수 있고, 오늘도 이 의자 다 놓은 것, 아침 8시 전에 나와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많은 형제들이 있었어요. 1년 2년 지속이 되어도 눈에 보이지 않게 일하는 집사님들 계십니다. 제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압니다. 그분들이 진짜 충성스러운 종들 아니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충성하는 분들…… 담즙질이 그런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사람 눈에 희한한 것 아니라 할지라도 충성할 줄 아는 것,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충성할 줄 아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담즙질적인 성격이 있어서 제가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 많이 모여가지고 주목받는 데에 가서 설교하는 것은 안 힘들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 숫자도 조금 모이는 연약한 교회에 가서 많이 설교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가서 할 때 어떤 때는 멍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거 시간 낭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자신이 비참해 보이고 이러지 말고 그냥 한꺼번에 모아서 한판에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이 마귀의 시험이고 아직도 성격을 다 못 고쳤구나. 문제구나! 그 다음부터 제가 바뀌게 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도가 10명이 모였든 20명이 모였든 어느 곳을 가든지 최선을 다해서 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말씀을 증거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그런 소수의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씀을 증거했을 때 오히려 기쁨이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인간적인 교류가 있고 오히려 제 영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담즙질은 그런 식으로 자기의 약점을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담즙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아무도 안 알아준다 할지라도 열심히 할 줄을 알고 내 눈에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보지 않는 곳에서 충성하는 다시 말해서 희생하고 죽을 줄 아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치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3-1-3 기질③ 담즙질의 치유 - 위임하는 법을 배우라! 기도를 배우라!

  마지막 세 번째 담즙질이 치유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아봅시다.
  담즙질은 특징은 모든 것의 주도권을 잡아야 하거든요. 자기 없을 때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용납을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 있지요. 자기 없을 때 회의 해 가지고 결정되는 것들 다 뒤집어엎는 사람! ‘나 없을 때 누가 결정했어.’ 이러는 사람 있잖아요.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ego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자기가 없을 때에도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기가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일하게 하는 법……
  저도 담즙질적인 기질이 많기 때문에…… 이것은 어떻게 보면 좋은 식으로 얘기하면 책임감일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자기가 빠지면 불안한 거예요. 아십니까? 예배가 만약에 5부까지 있다고 하면 1부 예배도 담임목사 설교, 2부, 3부, 4부 저녁예배, 새벽기도 다……좋게 이야기하면 상당히 책임감이 있는 목사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뒤집어서 얘기하면 저 사람이 심리학적으로 왜 저럴까?  자기가 안 서면 불안한 것입니다.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충분히 있어요.
  담즙질이 그 단계를 넘지 못하면 절대 커지지 못합니다. 위임을 잘 못합니다. 자기가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위임하는 법을 배우면서부터 사역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을 믿어주고 맡겨주면서 사역이 커집니다. 사실은 이번에 사역이 커지게 되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포 통영 갈라졌잖아요. 나뉘어져서 따로따로 뛰어도 맡기어 버리니까 하잖아요. 그 이전에 대만선교 같은 데도 한 군데 모여 있다가 여러 지방으로 흩어도 다 이루잖아요. 담즙질은 강점은 계획을 잘 세우고 추진력이 있다는 것인데 반면 약점 중의 하나는 자기 손아귀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담즙질의 사역이 몇 배 이상 확장되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은 첫 번째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도바울도 담즙질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 아닙니까? 자기가 다 했잖아요.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 다 자기 손으로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리고도 성이 안차니까 다메섹까지 갑니다. 다른 사람 보내도 되는데 직접 잡으러 가다가 부활의 주님 만나는 것 아닙니까? 이 성격을 하나님이 잘 사용하셨습니다. 전도여행을 떠나잖아요. 1차 전도여행, 갈라디아 지방 쭉 돕니다. 2차 전도여행을 어디로 갑니까? 1차 전도여행 때 갔던 지역을 돌고 난 다음에 유럽으로 갑니다. 자기가 돌아보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것입니다. 3차 전도여행은 무엇입니까? 1차 때 갔던 곳, 2차 때 갔던 곳에 갔다가 에베소에 머물렀다고 온 것이 3차 전도여행 아니에요? 그러니까 담즙질적인 성격은 잘만 사용하면 아주 책임감 있는 성격입니다. 당장 순교하더라도 자기 할 일은 다합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약점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 다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도구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자기 손으로 다 하려고 합니다. 기도도 안 합니다. 내 주먹을 믿으라고 하면서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어, 나폴레옹 같이 그런 소리나 떠들고 있고…… 불가능이 없지요. 불어사전에 불가능이 어디 있습니까? 

3-1-3-1 기질③ 담즙질의 치유 - 위임하는 법을 배우라, 기도를 배우라! 
                           

방법 1 : 중보기도

  그래서 담즙질은 기도해야 합니다. 담즙질이 해야 될 일은 중보기도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 중보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싸우기는 여호수아가 싸웠지만 그들의 기도가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기도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번에 일본선교 팀이 떠납니다. 떠나 보내놓고 불안해하지 말고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들이 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목포나 통영에 복음의 씨앗들을 뿌린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잘 자라는지, 담즙질적인 성격은 찾아가야 속이 시원하거든요. 그러나 찾아가지 말고 기도로써 할 수 있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담즙질은 기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님과 동역하는 법을 배웁니다. 아주 넓어질 수 있어요. 책임감도 유지하면서 하나님 의뢰하는 것도 배우는 아주 기가 막히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3-1-3-2 기질③ 담즙질의 치유 - 위임하는 법을 배우라, 기도를 배우라! 
                           

방법 2 : 제자 양성

  또 하나 두 번째 자기 없이도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제자를 키우는 것입니다. 제자 양육해야지요. 사도바울이 사역이 왕성했던 이유가 디모데 키우고 디도 키우고 제자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제자를 키워야합니다. 나 혼자 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담즙질적인 사람의 대표자를 들라고 하면 엘리야 아닙니까? 엘리야가 뭐라고 합니까? 엘리야는 항상 ‘나밖에 안 남았습니다. 나 혼자네요!’ 그러면서 일할 때도 혼자 다 일하지요. 갈멜산에 올라가서도 850대 1인데 동역자도 안 구하고 혼자 뜁니다. 누가 옆에 있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다 없어져버려! 혼자서 끝장을 보는 것입니다. 850대 1…… 승리하고 눈물 주르르 흘리고 감격합니다.
  눈에 띄지요. 영웅입니다. 항상 혼자 뛰니까 영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뛰는데 당연히 영웅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가 ‘나 혼자밖에 안 남았군요.’ 하면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왜 너밖에 없니? 7000명 더 있어.’  그다음에 19장, 20장, 2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다른 선지자들을 사용해서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열왕기하 공부할 때에 배웠지요. 한동안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하 이후에 넘어가면 비로소 엘리야가 등장하는데 엘리야가 승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길갈에 가니까 길갈에도 선지학교가 있었고 요단에도 선지학교가 있었고 여리고에도 선지학교가 있었고 베델에도 선지학교가 있었다…… 무슨 얘기입니까? 이 담즙질적인 엘리야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서 ‘혼자 뛰는 것이 아니구나! 제자양성을 해야 되는구나’ 그러면서 가는 곳마다 신학교를 세워 놓고 후진을 양성한 것입니다. ‘나 혼자 뛰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를 같이 키워야 되는구나!’ 그렇게 엘리야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 다음 엘리야를 능가할 만한 제자 엘리사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할 때 그런 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충성을 이루는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1-3-3 기질③ 담즙질의 치유 - 위임하는 법을 배우라, 기도를 배우라! 
                           

방법 3 : 순교

  한가지 더…… 자기 없을 때 일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순교하면 됩니다.
  여기에서 야고보가 어떻게 죽었다고 합니까? 순교해서 죽었습니다. 첫 번째 순교자였습니다.
  저는 이 첫 번째 순교한 야고보 때문에 초대교회의 성격이 규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순교자의 의미가 있습니다.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라고 얘기하는데 그 첫 번째 순교자는 야고보였습니다. 야고보의 그 죽음이 초대교회의 성격을 완전히 규정해 버렸습니다. 죽음으로써 나의 믿음을 보증하노라! 그것이 초대교회의 믿음이었습니다. 담즙질적인 야고보의 순교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야고보가 죽었지만 12명의 제자 결원을 보충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보충하지 않았어요. 가룟 유다가 죽으니까 맛디아를 보충했잖아요. 그런데 야고보가 죽었다고 야고보의 자리를 다른 사도로 채워놓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는 빈자리가 아닌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인생을 아십니까? 죽어도 죽지 않는 인생! 죽어서도 일하는 인생! 무덤에서도 세상을 움직이는 인생…… 그런 인생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보다도 죽은 사람이 일을 더 많이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틴 루이드 존스 같은 분입니다. 그분은 80년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까 지금 돌아가신 지 20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지금 웬만한 목사 몇 명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남긴 설교 테이프, 그가 남긴 책들을 통해서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루이드 존스가 일 안합니까? 여기저기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칼빈이나 루터가 죽기는 죽었지만, 무덤에 있지만 그가 일 안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칼빈은 설교하고 있고 루터는 그의 글들을 통해서 우리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죽어서도 일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 죽었습니다. 순교했습니다. 일 안합니까?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굳이 꼭 직접 가야만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죽는 것을 통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이 땅에 살아있는 존재의 목적이 사명 감당하자는 것 아닙니까, 일하자는 것 아닙니까? 내가 직접 뛰어다니면서 일할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죽는 것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인터넷에 띄우는 것이 일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글을 쓰는 것이 일이 될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눈에 확인되지 않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일하게 만드는, 나를 비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나를 죽이는 작업들, 그리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작업들…… 그런 모습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담즙질적인 성격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줄로 확신합니다.

  잘 보십시오. 야고보의 성질이 변하니까 세상이 변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자꾸 노력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변화됩니까? 내 말을 듣고 변화들을 것 같습니까? 내가 하나님입니까? ‘세상아, 변화되라!’ 하면 변화됩니까?
  문제는 이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세상이 변화됩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아, 변화되라 변화되라!’ 백날 얘기해도 변화가 안 되는데 내가 변화되니까 내가 기도 좀 더하니까 성도들도 기도 좀 더하고 내가 말조심하니까 성도들도 말조심하는 것 같고 내가 좀 희생하려고 하니까 성도들도 희생하려는 모습이 나오는 것 같고 내가 정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선교하는 데에 헌신하니까 성도들도 모두 성도들도 전부 다 선교하는 데에 집중하는 인생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세상이 변화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자기 가신의 기질의 변화가 우주의 변화의 초석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변화의 역사를 체험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다같이 하나님 앞에 간구합시다!
  담즙질에 대해서만 다루었지만 모든 기질에 대해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께 구하십시오.
  내 기질, 내가 화내는 것, 소심한 것, 우유부단한 것 다 죄입니다.
  치유해 주십시오.
  성령께 내놓고 치유하는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희생해야 합니다.
  눈에 띄는 것, 남이 알아주는 것만 하려고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죽을 줄 아는 종이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내 손에서만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제자를 키워야 합니다. 나말고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일할 수 있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죽어서도 일하는 종, 죽어서도 일할 수 있는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