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바나바(6) “영적 뿌리가 깊은 사람 바나바”

好學 2012. 2. 4. 07:09

본문말씀  : 사도행전 11:19~26
설교제목 : 바나바(6) “영적 뿌리가 깊은 사람 바나바”

바나바는 성경 인물 중 최고의 인격자임. 용납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으며 용서하는 사람, 넉넉한 사람, 밝은 면을 보는 사람이었음.

오늘 본문의 배경을 잠깐 보기로 함. 예루살렘 교회는 두번째 교회인 안디옥 교회의 부흥의 소식이 들려오자 바나바를 조사위원으로 보냈음. 그런데 그가 안디옥 교회에 가서 본 것은 사도행전 11장 23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은혜였음. 평신도가 세운 교회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부흥이 일어났음.

바나바는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음.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칭의 즉 의롭다 취급받는 것임. 그러나 이는 완전한 의인이라는 뜻은 아님. 성화라는 과정을 통해 의롭게 됨.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며 은혜임.

바나바는 이같은 은혜를 명확히 파악하였음. 약점만 붙들면 아무도 바로 설 수 없음. 그런데 바나바는 모두다 초신자들인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약점을 보지 않았음. 대신 은혜를 보았음. 이것이 변화를 가져옴. 병든 사람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봄. 내가 문제임.

바나바가 약점을 보지 않고 은혜를 바라보는 인격의 사람이 된 이유는 영적인 깊은 뿌리가 있었기 때문임. 사도행전 11장 23절에서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라고 말하며 주께 뿌리내리라고 권면하고 있음.

그리고 24절 들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음. 이러한 사람이 영성이 있는 사람임. 예수님 말씀, 생명에 뿌리 내린 사람임. 속사람이 변한 사람, 강한 사람임.

요트는 바다에서 쉽게 넘어지지 않고 넘어져도 오뚜기처럼 금방 바로 일어섬. 그 이유는 요트의 물속 부분이 물 위의 부분보다 훨씬 더 크며 무게를 가지고 있음. 요트 바닦에 "바닦짐", 영어로 Ballast가 있어 이러한 기능을 함.  우리도 겉모습 치중하고 "바닦짐(Ballast)" 신경 안쓰다가는 평소에는 문제 없지만 시험 만나면 금방 넘어지고 맘. 그런데 바나바는 인격의 Ballast가 있는 사람이었음.

맥도날드라는 분은 “영성”을 “영적 체험”과 구분하였음. “영성”은 생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인 반면, “영적인 체험”은 감정에 의존하는 것임. 베드로를 예를 들어 말하면 부활 이전의 베드로의 모습이 영적인 체험의 모습인 반면 부활 이후의 베드로의 모습은 영성의 모습임.

마태복음 26장 33절에서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4버리지 않겠나이다"고 장담하였음. 이어 35절에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거듭 큰소리 쳤음. 이 때의 베드로의 마음은 거짓 큰소리가 아니라 진저으로 그럴 마음이 있었음. 그러나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피땀을 흘리고 기도할 때 곁에서 잠만 잤음. 계집종에게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는 망신을 당하였음. 영적 체험의 단계에 머물렀기 때문임.

영적 체험의 단계는 이같이 의자와  결심이지만 영성은 지속성이 있음. 그래서 에베소서 3장 16절에서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속사람의 변화를 권면하고 있음.
 
영적 체험의 특징은 다음과 같음.
 
①감정에 기반을 둠. 그러나 영적 체험을 통해 영성의 단계로 갈 수 있음.
②훈련이 불필요함. 예수님은 민중의 환호에 반응하지 않으셨음. 요한복음 2장 25절에서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음.
③잠깐 뿐임. 뿌리가 없으니 오래갈 수 없음.
④공허하고 피곤해짐. 그래서 공허하고 피곤해진 칼 막스는 결국 기독교는 아편이다고 말하였음. 반기독교인들도 알고보면 한때는 열심히 예수믿던 사람들이 공허하고 피곤해진 결과 반기독교의 편에 서게 됨.
 
그러나 영성의 특징은 생명의 공급이 있음.

진정한 내 속사람의  변화가 있음. 요한복음 1장 4절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음. 생명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생명의 공급이 있음. 하나님은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영이심.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불타야 함. 하나님의 불이 전달되지 않으면 교통이 없음. 교통은 가슴이 통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랑임. 그리고 예배를 통해 교통이 이루어짐.

불타는 사명 가진 사람이 하나님 만나면 가슴에 불이 붙음. 능력은 간절함이 있을 때 주어짐. 간절함이 변화시키는 원동력임.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가슴이 활활 불타오름. 간절함이 있으며 능력이 부어짐.

노래 부를 때도 간절함이 있을 때 감동이 전달됨. 금번 미국 방문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미국국가를 부르는 것을 들었음. 그가 노래 부르면서 눈물을 흘려가며 간절함으로 부를 때 자신이 감동하게 되고 백뮤직 하는 사람도 감동되고 듣는 모든 사람의 감동이 있었음.

우리나라 조용필도 "창밖의 여자"라는 노래에서 이와 같은 간절함으로 노래불렀음. 한석봉 같은 훌륭한 옛 서예가가 쓴 붓글씨에서도 간절함을 느낄 수 있고,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음. 안광이 지면을 철한다는 말이 있음. 간절함으로 책을 볼 때 눈빛이 지면을 뚫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임.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킴. 마귀가 역사하면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행동하게 됨. 뜨거워져야 할 때 냉정해 지자고 말하며 차분해 져야 할 때 왜 이렇게 차가운가 말함. 마태복음 11장 16절에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라고 꾸짖었음.

또한 로마서 12장 15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라고 말씀하고 있음. 죄를 느끼지 않으면 정죄하는 사람이 됨. 정죄하는 것은 마귀의 영임. 바바나는 함께 하나님께 나아갔음. 마가를 손잡고 나아갔으며 바울의 손잡고 나아갔음.

누구든지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함. 영성은 내가 사람을 변화시키겠다,사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님.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다고 믿는 것임. 바나바는 하나님 앞에서 불타오르는 가슴 가졌음.

그럼 하나님 불타는 가슴 가지면 어떻게 되는지 보기로 함.

영광을 추구하게 됨. 영광은 worthy, 가치, 무게와  같은 개념임. 가치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는 것임. 예를 들어 용서받지 못할 자를 용서할 때 가치가 생김. 친절 베풀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친절을 베풀고, 높은 자리,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버리고 섬기는 자리, 종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임.

이러한 가치 추구하는 것이 영광스러운 삶임. 그러므로 영광은 가치와 동의어임. "영광스러운 인생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구하는 것은 "가치있는 인생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구하는 것과 같은 말임. 바나바는 이러한 가치 추구하였으며 영광 추구하였음. 바나바 같은 사람이 되면 교회가 영광스럽게 됨.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음.

숲속에 두개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덜 간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하였습니다.

이같이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였더니 인생이 달라졌다고 노래하고 있음. 영광스럽고 가치있는 인생,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감으로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바나바의 길을 걷는 성도가 되기를 바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