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 영화의 도시
영화가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98년이었다고 한다. 서울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던 중국인 창고에서 프랑스 ‘빠테’ 사의 단편 영화를 상영했는데, 그것을 효시로 치고 있다. 인천 사람들은 언제 영화를 접했을까?
영화 도입은 담배와 인연이 깊다. 담배는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꾸준히 수입되었는데, 1894년 정부가 국민들에게 장죽 사용을
금지하자, 권련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그 대부분은 미국산이었으나, 값싼 일본제가 서민층에 파고들어 마침내 담배 시장은 양분됐다. 담배 회사들은 당시 신문명의 총아로 각광을 받던 ‘활동 사진’으로써 애연가를 유혹했다. 빈 담배갑 몇 개를 모아 오면, 활동 사진을 관람시켜 주었는데 꽤 인기가 있었다. 1899년 인천에 설립된 ‘영미연초주식회사’와 1901년 희랍인 ‘밴드러스’가 ‘동양연초주식회사’가 이런 식으로해서 매상고를 높였다.
인천에서 본격적인 ‘극영화’가 언제부터 상영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1906년 일본인이 설립한 ‘표관’이 인천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었다. 1895년 한국인 부호 정치국이 지은 벽돌집 극장 ‘협률사’가 1926년 영화 전문관 ‘애관’으로 개수된 후 오늘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인천에서 영화를 처음 만들어 낸 것은 광복 직후였다. 극영화의 제작은 인천 문화 사상 획기적인 사건의 하나였다. 1946년 ‘감나무’, ‘무영의 악마’, 47년 ‘수우’, ‘날개 없는 천사’, 49년 ‘심판자’, 50년 ‘사랑의 교실’, 51년 ‘돌아오는 사람들’ 같은 작품들이다.
인천 영화의 맥이 반세기만에 되살아난 것일까? 최근 인천과 인연을 나눈 영화가 속속 제작되고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북경반점’, ‘엽기적인 그녀’, ‘파이란’, ‘고양이를 부탁해’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들이 단순히 인천을 소재나 배경으로 삼은 것이냐, 아니면 인천의 문화, 예술인들이 역량을 발휘해 만든 것이냐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또한, 최근 영화에 ‘지역주의’가 강조되고 있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국내 흥행에 참패한 판소리 영화 ‘춘향전’에 대해 일부 비평가와 매스컴이 터무니없는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조폭’들의 세계를 어설프게 까발린 ‘친구’를 특정 지역에서 120만 명이나 학생 단체 관람하듯 구경했다는 이 이상 기류를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영화’란 지역과 계층과 이념을 뛰어넘어 우리 가슴속에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인천의 영화적 전통을 되살린 ‘명작’이 불원간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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