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韓國文學感想]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13.

好學 2012. 3. 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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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13.

 

    지은이:이주향
    출판사:명진출판

 

  제1부    길들지 않은 사랑은 힘이 세다

 

12    눈빛만으로 알 수 없는 이유
눈빛만 봐도 알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친숙한 관계를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이상하게 오래 산 부부보다 짧은 시간 밀도 있게 만난 연인들이 그런 말을 더 많이 한다.
그러나 눈빛의 진실성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에서조차 눈빛만으로는 살지 못한다.

눈빛에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눈빛의 힘은

생생한 삶의 원동력일 때에만 살아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눈빛에 대한 믿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밋밋한 관계에 대한 정당화일 뿐이거나 눈빛만으로 살겠다는 야무진 결단이다.

물론 이때 야무진 것은 이기적인 것과도 통한다.
 

교사인 은영이는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능력 있고 매력 있는 샐러리맨과 결혼했다.

결혼할 때부터 그들은 예단 같은 것은 생략하고 검소하게 결혼식을 올렸고

둘의 돈을 합쳐 30평짜리 아파트를 얻어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맞벌이를 할 경우 보통은 한 사람 월급은 쓰고 한 사람 월급은 저축한다고 하지만

은영이 부부는 그러지 않았다.

월급에서 얼마씩 떼어 생활비로 내고 각자 돈을 관리하는 방식을 취했다.

여자의 돈은 생활비로 쓰고 남자의 돈은 저축해서

결국 모든 것이 남자의 것이 되는 게 싫었던 은영이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결혼 초기에는 30만 원씩 내면 공동의 생활비로 쓸 수 있었다.

매달 들어오는 60만 원의 생활비는 은영이가 관리하였다.

아무래도 집안일은 여자가 많이 하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나자 전세금 5백만 원이 올랐다.

은영이가 남편에게 “2백50만 원 내야 겠네”라고 말하자

남편은 감미롭게 대꾸했다. “어쩌지, 적금 들어가 있어서 해약해야 되는데.”

물론 은영이도 적금을 해약해야 했지만 한 사람의 적금만 해약하면 됐지싶어 은영이가 냈다.
 

그후로 전세금 올려줄 때마다 남편은 돈내는 일을 감미로움으로 때웠고

모든 돈을 은영이가 책임졌다.

2년이 지나자 아이가 생겼다.

처음에는 친정어머니가 도와 주셨지만

친정어머니를 언제까지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파출부도 두어야 했고 아기용품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눈빛이 은근한’남편은 얼마 이상의 생활비를 내놓는 법이 없었다.

그는 항상 돈이 묶여 있다고 했고 그것은 거짓이 아닐 터였다.
사실 은영이는 남편이 월급을 얼마나 타고 보너스를 얼마나 타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 날은 화가 났다.
  “생활비 좀 올려 내야겠어. 당신이 낸 돈 가지고는 파출부도 쓸 수 없어.”
  그때 남편은 아주 그윽한 눈매로 슬픈 듯이 말했다.
  “당신, 이해는 되지만 내가 돈 안 내면 쫓겨나야 하는 하숙생이란 느낌이 드네.”

은영은 오히려 자기가 잘못한 것 같아 쩔쩔맸다.

감성적인 그 남자를 심하게 다룬 것 같아 용서를 구하기까지 했다.
 “미안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러자 그는 다정하게 은영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돈을 벌지 않으면 지금 묶여 있는 돈이라도 나는 내놓을 거야.

내 돈이 당신 돈이고 당신 돈이 내 돈인데 너무 돈돈 하지마.

당신이 생활의 때가 묻는 것 같아 내가 가슴이 아파서 그래.

여보, 내 눈을 봐, 사랑해!”
 

마음 약한 은영이는 번번히 넘어가는 행복(?)을 택하고 점점 더 생활의 때가 묻어 갔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물론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눈빛일 것이다.

그러나 눈빛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
돈을 아끼기 위해 혹은 돈을 내지 않기 위한 설교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하고 가난해서 해주고 싶어도 못해 주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은 파트너에게 전달된다.

왜 있지 않나?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쌀 한 되 살 돈밖에 벌지 못한 가난한 남편이 찬거리를 마련할 수 없어

밥과 간장종지를 올려놓은 후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고 적어놓았을 때

그 애틋한 남편의 눈빛은 아내를 배부르게 할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부담을 면하려고 엉뚱하게 눈빛을 운운하면 역겹다.

마음이 가는 곳에 물질이 가는데 물질을 아끼려고 마음을 들먹이면

마음은 서럽고 때로는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생활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눈빛만 봐도 안다는 명제를 믿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그런 믿음은 생활을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랑에서 유래한다기보다
생활비를 절약하려는 얄팍한 계산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경우도 가끔은 있지만 돈을 쓰는 우선 순위는

돈을 쓰는 사람의 마음의 순위라는 말이 대체적으로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남편의 섹시한 눈빛에 그만....
서경이는 1년 전 그 눈빛이 지겨워 이혼을 했다.

결혼한 지 5년째, 눈빛의 기만을 참을 수 없는 생활의 반란이었다.

5년 동안 그 남자는 아내 서경이 덕택에 박사 공부를 했다.

지방 소도시의 교사인 서경이는 남편을 위해 돈을 벌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와서

금요일 저녁까지 머물면서 박사 공부를 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서 사랑한다는 말을 빼먹지 않는 아주 성실한 남자였다.
 

맏며느리인 서경은 시댁에 제사라도 있을라치면 남편의 조상을 위해 강원도에서

시댁이 있는 부산까지 내려가 다시 학교를 결근하지 않기 위해 새벽에 올라와야 했다.

그런 날에도 서울에서 위대한(?) 박사 공부를 하는 남편은

자기의 조상 섬기는 일을 아내에게 미루고

훗날 조상의 덕을 빛낼 수 있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서경이 남편의 밑반찬을 위해 어쩌다가 서울에 올라오면 

서경이 올라오는 줄 알고 있으면서도 남편은 늘 서경이를 기다리게 하고

12시 근처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으응, 연구하느라고.”
  “그러면 전화라도 해주지. 내가 올라오는 줄 알고 있었으면서...”
  “도서관에서 어떻게 전화하나?”
 

화가 난 서경이 울적해 있으면 남편은 항상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당신, 나 못 믿어? 내 마음은 당신뿐인 거 몰라?”

그 말에 서경이는 번번히 녹아내렸다.
착해 빠진 서경은 지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도대체 내가 남편에게 받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결혼식 때 받는 18K 금반지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마음이 있었다. 언제나 울타리가 되어 주는 남편의 섹시한 눈빛이.
그런 생각이 들면 괜히 배실 배실 웃음이 나와

서경이는 남편을 원망했던 마음의 자락을 거두었다.

미안했다. 줄 게 없는 남편에게 바라는 게 미안했고

남편을 저울대에 올려놓고 계산해 본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면서

다시 남편을 위해 돈을 버는 생활인으로 돌아갔다.

전적으로 마음뿐인 남편의 사랑을 믿으려하면서.

 

  “당신은 가만히 있으면 돼잖아”
그러나 마음 운운은 남편의 아내 사랑 방식어었을 뿐

남편은 아내에게는 철저히 남편의 그늘에 몸이 묶인 생활인이 되도록 요구했다.

남편이 강원도에 있을 때 서경은 학교에서 회식이 있어도 피해야 했고

심지어는 당직도 바꿔야 했다.

남편은 교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주말에 못 내려오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서경이 친정집에 무슨 일이 생겨 서울로 올라오는 주말에도

남편은 서경의 일정에 맞추어 주지 않았다.

남편은 장모생신 때나 얼굴을 내밀까 처제와 처남 일에는 무심했다.

그래도 착한 서경은 남편의 말대로 했다.

서울과 강원도를 왔다 갔다 하는 남편이 안됐어서 불평을 하지 않았고

그저 남편이 울타리인 것이 고마웠다.
 

그런데 아주 작은 사건을 계기로 그 울타리가 감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서경의 어머니가 풍에 걸린 것이었다.

누군가가 어머니 곁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서경의 남동생을 유학중이었고 여동생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남편에게 착한 서경은 당연히 친정일에 대해서도 착했다.

서경은 자기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때문에 두 달 남짓 남은 동생의 결혼식을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남편과 상의해야 했다.
  “어머니를 우리가 모셨으면 하는데...”
  “어머니? 어머니가 전화했어?”
  남편은 부산에 사는 어머니를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우리 어머니. 병원에도 오래 계시지 못한대.”
  “뭐, 장모님을...아니, 왜 우리가!”
  “모실 사람이 없잖아!”
  “처남은 뭐하고?”
  “헌경이 공부하고 나올 때까지만 우리가 모시고 살아요.”
  “처남 박사 끝나려면 5년은 걸릴 텐데, 당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공부하고 있는 헌경이더러 나오라고 해요?”
  “아니, 그럴 게 뭐 있어. 당신은 가만히 있으면 돼잖아.

   그러면 설마 장모님이 결혼한 당신더러 나 모시고 살라고 하겠어?“
  “당신 그걸 말이라고 해요?”
  “아니, 흥분하지마!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구.

이제 우리도 아이도 낳고 가정 같은 가정 꾸미고 살아야 할 텐데

환자가 집에 있으면 가정 분위기가 얼마나 망치는 줄 알아!

더구나 풍이라는 게 쉽게 낫는 병도, 쉽게 돌아가시는 병도 아닌데.”
 

서경은 캄캄했다.

내가 이런 사람과 살겠다고 근검 절약해가며 공부시키고
사람들과 약속 한번 제대로 못해 보고 지냈다니, 한심하게 살아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남편이 서경에게 감겨왔다.

 “여보, 당신은 내 사람이야. 나한테 당신밖에 없어.”
서경은 더 이상 그 감미로움에 취하지 않았다.

아니, 서경이 바보가 아닌 이상 감미로운 눈빛의 진실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건 이기심이었다.
 

그후 1년이 걸려 서경은 어렵게 이혼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서경은 나를 만나면  강조한다.

그 남자는 장모 때문에 이혼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절대 어머니 때문에 이혼한 것이 아니라고.

어머니 사건으로 그 사람과 자기 관계의 진면목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말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여태껏 아내로서 자기 해왔던 모든 일이 억울한 희생으로 느껴졌다.

이혼은 어려운 거였지만 그 남자와 함께 사는 것보다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눈빛의 힘은 생생한 삶의 원동력일 때만 살아 있는 힘이다.

사랑 없이, 삶을 함께 하는 자에 대한 책임감 없이 연출된 눈빛은

무거운 현실을 만나면 곧 실체로 드러낸다.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눈빛, 연출된 눈빛은 거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