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9과 사무엘상(3): 사울과 다윗 (16-31장) 11

好學 2012. 3. 23. 20:58

제59과 사무엘상(3): 사울과 다윗 (16-31장) 11

 

 3-10. 사무엘의 죽음(25:1)


  그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해 오던 사무엘이 죽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죽음을  슬퍼하며 라마에 있는 집에서 그를 장사하였다. 사무엘의 사망한 때는 그의 나이 83세인 B. C. 1017년 경으로 추정된다(Leon Wood).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때는 `미스바 전투'(7:5-11, B. C. 1055년)가 있은 지 5년 후, 즉 사무엘이 50세 때인 B. C. 1050년경이었다. 따라서 사무엘의 출생 연도는 대략 B. C. 11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의 최후의 사사이며, 최초의 선지자인 사무엘은 신정 왕국의 건설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에 따라 세상을 하직하고 열조에게 돌아갔다. 사무엘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다윗은 바란 광야로 피신했다. `바란 광야'는 시나이 반도의 북쪽에 있는 아라비아 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광야이다. 최근의 학자들은 1) `바란 광야'는 팔레스타인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윗의 행동 반경으로 보기 힘들며, 2) 또 2절 이하에서 `마온 광야'가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란 광야'를 `마온 광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Keil, Smith, Lange 등은 이러한 견해를 반대한다.  그 이유는 `바란 광야'는 팔레스타인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인 `브엘세바'와 인접한 광야로서, 유다 광야와 경계선 없이 이어지는 광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여건상 다윗이 이곳까지 도피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사실, 당시에 사무엘은 사울 왕을 견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로부터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은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 멀리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11. 마온 광야에서의 다윗(25:2-44)


  그러나 다윗은 얼마 후에 다시 식량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자신이 전에 머물렀던 `마온 광야'로 다시 올라오게 되었다. 마온은 `십'과 `갈멜' 부근에 있는 유다의 구릉지 성읍이었다(수 15:55). 갈멜은 마온에서 북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사울이 아말렉 전투 후에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던 곳이었다

 

(15:12). 그는 크게 부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양 삼천 마리와 염소를 일천 마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이 때에 갈멜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나발'은 많은 가축들을 마온 광야의 고지대에서 방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발'은 `시들다', `바보처럼 행동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나벧'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성경에서 이 단어는 `어리석은', `우매한', `괴악한'등으로 번역되었다(삼하 13:12; 시 14;1; 39:8).  그런데 이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아마도 그의 특성으로부터 붙여진 별명일 가능성이 높다(Keil).

 

`아비가일'은 `기쁘게 하는 자', 또는 `기쁨을 주는 자'란 뜻이다. 이 여인은 후에 자신의 남편 `나발'이 죽자, 다윗의 아내가 되어 다윗의 둘째 아들 길르압을 낳았다(삼하 3:3; 대상 3:1). 아비가일은 지혜가 뛰어나고 총명하며, 내면과 외면적으로 아름다움을 갖춘 여인이었다(16:18; 아 4:10; 7:1,6). 그러나 나발은 완고하며 행사가 악해졌다. `완고하다'(카쉐)는 말은 `거칠은', `굳은',  `난폭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치 않으며, 또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 `목이 곧은' 사람에게 적용되었다(출 33:3,  5;  34:9; 신 9:6; 삿 2:19). 그리고 `악하다'(라 마알랄림)는 말은 능동적으로 악한 행위를 일삼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갈멜 족속이었다.

 여기의 `갈멜 족속'은 마땅히 `갈렙 족속'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나발'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찰을 신실하게 수행했던(민 13;30) `갈렙의 후손'이었을 것이다. 갈렙은 그 신실함으로 인해 모세로부터 헤브론을 중심한 유다 땅의 일부를 약속 받았었고,  그는 그 자신이 약속 받은 그 땅을 정복했었다(민 13, 14장 ; 신 1:22-36;  수  14:6-15; 15:13, 14). 한편 `마온'이라는 지명은 갈렙의 자손인 삼매의 아들 `마온'에게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볼 때에(대상 2:45), 바로 이 `마온'에 살던 `나발'은 `마온'이라는 인물의 후예인 듯하다.

 

  다윗은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부하 중에서 열 명을 그에게 보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양털을 깎을 때  음식을 장만하는 등, 잔치를 벌이며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다(창 38:13, Keil). 즉 유목민에게 있어서 양털을 깎는 날은 농민들의 추수의 날과 같은 기쁜 날이었다. 다윗은 이러한  관례를 따라 자신과 부하들의 먹을 식량을 얻기 위해 나발의 집으로 수하 소년들을 보냈다. 다윗은 전에 자신이 갈멜에서 나발과 그의 재산을 지켜 준 일이 있었다. 다윗은 그 일을 상기시키면서 자신과 부하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나발에게 요청하였다(4-9). 그러나 나발은 이러한 다윗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다윗을 주인으로부터 도망 나온 패역한 무리로 간주했다.

다윗은 빈손으로 돌아온 자기 부하들을 통해 나발의 말을 전해듣게 되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분노하여 군사 200명만 남겨두고, 400명을 무장시켜 나발을 치려고 일어났다. 그러나 이때에 나발이 거느린 사람들 중에 하나가 그의 아내인 아비가일에게 가서 나발이 한 행위에 대해 전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했다(10-17).

아비가일은 그 말을 듣고 급히 떡 200덩이를 준비하고,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붉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200개를 취하여 나귀에 실었다. 그리고 소년에게 시켜서 먼저 그것을 싣고 가게하고, 자신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도중에서 다윗을 만나서 다윗의 손으로 원수를 갚지 않도록 요청하였다. 그녀는 나발의 우매한 행동을 인정하면서 그가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다고 해도 다윗이 직접 그 손을 들어 원수를 갚는 것은 다윗에게 해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다윗은 그 말을 듣고 그녀의 청을 받아들였으며, 자기 손으로 나발의 피를 흘리지 않도록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 후에 다윗은 아비가일이 가져온 음식을 받고, 나발을 치러 가던 길에서 돌이켜서 다시 자기의 처소로 돌아가게 되었다(18-35). 아비가일이 돌아오니 나발은 잔치로 인해 크게 취하여 기쁨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 날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나발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발은 다음 날 아침에 그 말을 듣고 심히 놀라 몸이 돌같이 굳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10일 후에 여호와께께서 치심으로 죽고 말았다(36-38). 다윗은 마온에 사는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 주신 일에 대해 감사드렸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총명한 아비가일을 자기의 아내로 맞기 위해서 자기의 부하들을 그녀에게 보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부하들의 말을 듣고 즉시 자기를 따르는 처녀 다섯을 데리고 다윗에게 가서 그의 아내가 되었다(25:2-44). 그 후에 다윗은 이스르엘의 아히노암을 아내로 취하였다. 그리고 사울은 자기의 딸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다(39-44). 전에도 사울은 골리앗을 죽인 대가로 다윗에게 주기로 했던 맏딸 `메랍'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는 변덕스러운 짓을 했었다(18:19). 사울은 이번에도 역시 그의 막내딸 미갈을 갈림에 사는 발디에게 주었다. `발디'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삼하 3:15)에서는 `발디엘'로 표기되었다.

 

성경을 보면 가나안 정탐을 했던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 발디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민 13:9).  그는 베냐민 지파의 대표로서 가나안 정탐에 참여했던 `라부'의 아들 `발디'였다. 아마도 여기에 나오는 `발디'는 이러한 그의 조상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22:5). "갈림에 산다"는 말은 `갈림 출신'이란 뜻이다. `갈림'은 `무더기'란 뜻으로, (사 10:30)을 따르면 이 곳은 예루살렘과 사울의 기브아 사이의 베냐민 지파의 땅에 있는 성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