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9과 사무엘상(3): 사울과 다윗 (16-31장) 10

好學 2012. 3. 20. 20:11

제59과 사무엘상(3): 사울과 다윗 (16-31장) 10

 

 3-9. 엔게디 요새에서의 다윗(23:29-24:22)


  그 후에 다윗은 그 곳을 떠나 엔게디 요새에 가서 거하게 되었다(23:29). '엔게디'는 '염소의 샘'이란 뜻인데, 이곳은 다윗이 앞서 은신해 있었던 '마온 황무지'에서 동북쪽으로 약 17km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본문에 언급된 '엔게디 요새'는 한 지점이 아니라 약 20여km의 거리에 걸쳐  있는 산맥 전체를 가리킨다(Aharoni). '요새'(메차도트)가 단수가 아닌 복수로 기록된 것을 보면,  당시에 다윗은 어느 한 곳에서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면서 은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새 지대는 동쪽으로 사해로 내려가는 석회석 협곡 및 벼랑과 연결이 되었다. 이러한 협곡과 벼랑은 흙은 석회질이지만 바위는 백악의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많은 자연적인 굴들이 있어, 현재에도 도망자들의 도피처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Robinson). 또 이 협곡의 벼랑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 지역의 명칭을 낳게 한 약 섭씨 30도 정도되는 물이 있는 '샘'이 있다(Conder).  이 엔게디는 유다의 여러 지역 중에서 국방상 가장 취약한 곳이었기 때문에, 암몬. 모압. 에돔 족속들이 유다를 침범하는 통로로 이용했다(대하 20:1 이하).

한편 엔게디 요새지는 사해 수면에서 약 670m 정도 높은 곳에 있었으며, 엔게디의 샘의 높이는 약 200m 높이에 있었다. 이곳에는 그 지명의 의미와 같이 지금도 들 염소들이 살고있다(Thompson). 사울은 블레셋을 치러 출전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1). 사울은 다윗을 체포하기 위해서 군사 3,000명을 이끌고 들 염소 바위로 가고 있었다(2). 들 염소 바위는 가파른 벼랑의 한 지점으로, 그 가파름 때문에 들염소나 산양이 생존하기에 적당한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Robinson). 당시 이 지역에는 충분한 풀과, 샘에서 넘쳐흐르는 신선한 물로 인해 들 염소가 많이 야생할 수 있었다(Danin).

 

오늘날에도 여행자들은 이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많은 산양과 산 염소를  발견하곤 한다(Thompson). 이곳에는 은신하기 좋은 동굴이 많이 있었다(Fay). 사울은 길을 가다가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르러 굴이 있는 것을 보았다. 길가 양의 우리는 양을  사육하는 곳을 말한다. 이 '양의 우리'는 대부분 동굴 앞에 돌로 낮고 둥글게 쌓아서 만들었으며, 그 지붕은 야생 짐승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가시나무로 되어 있었다(Thompson). 당시 이러한 '굴'은 일반적으로 양을 돌보는 동안 목자들의 주거 장소로 이용되었다. 또 이러한 '굴'은 날씨가 추울 때는 동물들의 거처로도 이용되기도 했다. 사울은 "발을 가리우기 위해서" 그 굴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가리운다'(사카크)는 말은 '덮다', '둘러싼다'는 말이다. '발을 가리운다'는 말은 '용변을 보다'란 말의 완곡한 표현이다(Keil, Thenius). 히브리인들이 대변을 보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대변을 보기 위해 쪼그리고 앉을 때에 옷자락에 의해 자신의 발이 덮여지기 때문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을 '잠을 잔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옳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울이 이러한 생리 현상을 급히 해결하기 위해서 그 굴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굴 안에는 사울이 그토록 찾아 다니던 다윗의 일행이 숨어 있었다(3).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은 지금이 바로 사울을 죽일 때라고 생각하고 그를 죽이자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고 단지 그의 겉 옷 자락만 베었다(4). 그러나 다윗은 그의 겉 옷 자락을 벤 것조차 마음에 가책이 되었다. 그는 자기 부하들에게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운 왕을 해치는 일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사울을 해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므로 사울은 일어나서 무사히 다윗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그 후에 다윗이 사울을 쫓아 나가서 급히 사울을 불렀다사울이 다윗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게 되자, 다윗은 그 앞에 절을 했다(5-8).

 

다윗은 자기가 사울을 해치려고 한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울의 겉 옷 자락을 보이면서, 오늘 자신이 사울을 해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윗은 악은 악인에게서 나온다는 속담을 인용했다. 다윗이 악한 마음, 즉 사울을 번역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를 죽이려는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사울 사이를 심판하시되, 자기가 사울을 죽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어찌 죽은 개나 벼룩과 다름 없는 자신을 두려워하여 쫓고 있느냐? 고 물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아울 왕과 자신의 사이를 공정히 판결하고 그 행위대로 갚아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8-15).

 

사울은 이러한 다윗의 말을 듣고 다윗을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울기 시작했다. 사울은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다!"고 대답했다. 사울은 오늘 다윗이 자기를 죽이지 않고 살려 준 일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선으로 갚아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사울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그를통해서 이스라엘이 견고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자기의 이름을 아비의 집에서 멸하지 않을 것에 대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요구했다. 다윗은 사울이 말한 그대로 다 이행하겠다고 맹세했다. 이것은 사울과 다윗이 서로 평화조약을 맺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 조약을 맺은 후에 사울은 자기 집으로, 그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돌아갔다(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