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칼 바르트 [Barth, Karl]의 신학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4

好學 2012. 3. 22. 20:28

     칼 바르트 [Barth, Karl]신학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4

 

 

4. 1932년(교회교의학) 이후의 바르트

 

로마서 주석 제2판은 신학과 철학, 하나님과 인간을 종합하려는 자유주의 신학을 철저히 청산하려는 몸짓이었다. 인간이 생산해 내는 온갖 우상을 파괴하고 성전을 더럽히는 온갖 혼합주의를 축출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이 책은 잠자는 그리스도인들을 깨우는 닭소리, 종소리가 되었고, 인간으로 하여금 무상한 것을 절대화하려는 시도로부터 결별하여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은혜로운 하나님 앞에서 전율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 신학은 잠시 동안만 주효했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대가로 하나님의 위대성을 상실시킨 스승들의 신학을 반박하기 위한 바르트의 의도는 정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나중에 반성한 대로, 로마서 주석 제2판의 신학은 하나님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을 지나치게 희생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제1판과는 달리 하나님의 나라의 위기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역사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폐허, 진공 밖에 없는 것 같았고,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차용한 시간-영원의 변증법도 역사의 희망에 대해서는 너무 인색할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철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도 그를 괴롭혔다.

 

그에게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이 책이 출간된 바로 같은 해에, 그러나 로마서 제2판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제1판의 공로 때문에 바르트는 괴팅엔(Göttingen) 대학의 종교개혁 신학을 담당하는 석좌교수로 부름받게 되었다. 여기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강의하던 그에게 그들의 유산이 그의 신학 체계 안으로 서서히 흡수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그들의 신학을 이전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이전의 체계를 조금씩 심화, 수정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신학을 사람들은 적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라고 불렀다. 그 이전의 신학도 철저히 로마서 주석을 빌린 말씀의 신학이었지만, 특히 존재론적 신증명을 시도한 안셀름(Anselm)에 대한 바르트의 독창적인 해석서 'Fides quaerens intellektum'(인식을 추구하는 신앙: 1931년)이 출간된 직후부터 바르트는 자신의 사고에서 철학적, 인간학적 기초와 해명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신학은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바르트는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변증법(辨證法: Dialektik)적 체계는 유비론(類比論: Analogia)적 체계로 바뀌어 나갔고, 시간-영원의 종말론, 변증법적-수직적 종말론은 계시적 종말론, 성서적-수평적 종말론의 체계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철두철미하게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과 인격, 사역을 통해서만 해명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그리스도론적 집중', '그리스도론적 일원론', '그리스도론적 보편주의' 혹은 '그리스도론적 왜소화'하는 말로 제각기 다르게 평가하였다.

 

이전의 체계에서도 그러했지만, 특히 교회교의학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하고도 의식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구상되고 설명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 지배, 그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인격 안에서 온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바르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화해(和解)를 하나님의 혁명이라고 불렀는데, 이 혁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의 돌입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돌입, 하나님의 혁명은 인간과 세계의 급진적, 전체적, 보편적 변혁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참 혁명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 나라의 혁명은 사회집단과 관습에 맞선 충돌 안에서 일어나서 모든 인간들의 상황변혁을 목표로 삼는다.

 

그렇지만 이 혁명은 율법적 강요의 전체주의 속에서가 아니라 '은총의 전체주의' 속에서 일어난다. 이 혁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인간도 변혁의 주체가 되도록, 하나님의 투쟁에 참여하도록 부름받는다. 이 투쟁은 특히 인간의 소외, 물화, 관료주의화, 억압에 맞선 행동 속에서 구체화되며, 이 행동은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화해된 사회를 위한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선행적 형태, 비유, 반영, 복사로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지시하고 이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혁명인 화해의 인식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에, 사회의 부정적 요소들에 대한 비판적 역할과 더 나은 사회질서의 수립을 위한 건설적인 역할을 통하여 사회변혁을 위한 적합성을 실증할 수 있다. 교회는 이론적-실천적으로 더 나은 화해된 질서를 향해 진군하는 전위대, 선구자로서 자신을 입증할 수 있고 또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만 바르트에 따르면, 교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적합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비록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세속적인 휴매니티, 우주의 빛들과 진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하며,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적, 정치적 세속성의 진정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의 반사로 입증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는 기독교의 신앙고백의 정치적 차원과 내용적인 공통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혁명에의 인간참여는 특히 사회민주주의 안에서의 영속적 체제변혁, 영속적 개혁정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교회교의학의 시대에 와서 계시는 다시 역사적 특징을 분명히 회복하게 되었다. 역사는 여전히 계시가 아니다(역사≠계시). 하지만 계시는 역사로서, 특히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의 역사로 나타난다(계시=역사). 역사의 선은 계약에 의해 둘러싸인 시간적, 역사적 진보를 보여준다. 바르트에 따르면, 이 계약의 근거와 요약,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계약사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바르트는 세속사와 구원사를 단순히 분리하지 않는다. '구원사'는 '계약사'로서 '보편사' 안에서 드러나고 완성된다.

 

나가는 말: 바르트 신학의 상수(常數)

바르트의 신학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그의 신학적 개방성에 있다. 그의 신학은 늘 도상(途上)의 신학이었다. 바르트는 생전에 "나의 신학을 절대화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으며, "나는 바르티안(Barthianer)이 아니다"고 말하였다. 기독교 신학사에서 바르트의 신학만큼 그렇게 자주 바뀌었던 신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힘겹게 얻은 새로운 통찰과 그를 통해 얻은 인기를 용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 대중이 따르는 것을 경계하고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과단성은 신학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바르트 신학의 또 다른 특징이다. 그러므로 바르트 생애의 어느 시점을 못박아 "이것이 바르트 신학이다"라고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 신학의 불변하는 요소, 상수(常數)를 묻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트(H. Ott)는 개혁교회의 '하나님의 주권신앙'을 바르트 신학의 지배적인 동기로 보았다. 바로 이로부터 바르트는 자신이 발견한 신학적 토대를 항상 더 철저히 검증하고 심화하였다는 것이다. 마르크바르트(F-W. Marquardt)는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바르트의 생애와 신학에 일관되게 흐르는 근본 특징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들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나로서는 바르트의 신학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후기로 갈수록 바르트의 신학은 더욱 더 삼위일체론적 구조 혹은 삼중 구조(Trias)를 갖는다. 또 어떤 사람은 후기로 갈수록 두드러지는 성령론적 특징을 부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증언'(출발-전향-고백: 1968년)은 자신의 신학이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려는 운동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일평생 동안 바르트의 서재에 걸려 있었던 그뤼네발트(Grünewald)의 그림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와 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세례 요한을 그리고 있는데,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도 늘 세례 요한의 손가락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것이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자신을 낮추고 비웠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바르트는 늘 겸손하게 자신을 비우고 낮추었다.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사로잡히기 위해서 늘 새로이 출발하고 전향하고 고백하려고 애썼다. 바르트의 현란한 신학체계와 방대한 가르침보다 바로 이것을 우리는 가장 분명하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참고도서

김재진, 바르트 신학해부(한들출판사, 1999)

이신건, 칼 바르트의 교회론(성광문화사, 1989)

이신건, 하나님 나라의 지평 위에 있는 신학과 교회(한국신학연구소, 1998)

U. Dannemann, 이신건 역, 칼 바르트의 政治神學(한국신학연구소,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