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8. 예기치 않은 친구 3
"우리 아들, 앞으로 무엇이 될 테냐 ,,, 공학박사, 법률가, 초상화가 ...
이 앞마당에서 명예훼손죄가 일어나고 있다니 ....
우리, 이 친구, 변장을 좀 시켜야겠는걸."
아버지는 툭 튀어나온 배를 조금 깎아내고 스토브 장작 대신
빗자루로 바꾸고 앞치마를 입히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오빠는 그렇게 하면 흙이 드러나버려 완전히 망쳐버릴 거라고 말했다.
"네가 무슨 일을 하건 난 간섭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이웃의 모든 것을 풍자해 작품으로 만들고 다니진 않을 테니까, 그렇겠지? "
"풍자가 아니에요. 단지 그 아저씨처럼 보일 뿐이에요. "
"에이베리 씨는 그렇게 생각지 않을 거다."
"아하! "
오빠가 곧장 달려가서 머디 아줌마네 뒷마당으로 사라졌다가 잠시 후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가져온 밀짚모자를 씌우고 팔 안에 원예용 가위를 끼워놓았다.
아버지도 훌륭하다고 말해주었다.
머디 아줌마가 현관으로 나와 우리를 길건너에서 쳐다보았다.
갑자기 커다랗게 웃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젬 핀치 이 악마, 내 모자를 어서 가져오지 못할까! "
오빠가 아버지를 올려다보자 아버진 고개를 저었다.
"머디 아줌만 괜히 그러는 거야. 네 작품에 정말 감동했을 거다."
아버지가 머디 아줌마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더니
서로 손짓을 하며 무슨 얘긴지를 나누었다. 겨우 몇 마디가 들려왔다.
"저런 허깨비를 마당에 세워놓다니! 애티커스! 저걸 계속 세워놓을 참인가요? "
오후가 되어 눈은 그쳤지만 기온은 더 떨어져서
해가 진 후엔 에이베리 아저씨의 예언이 사실로 드러났다.
칼퍼니아 아줌마가 집 안 모든 벽난로에 불을 지폈지만 추위는 여전했다.
아버지는 칼퍼니아 아줌마에게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아줌마는 높은 천장과 긴 창문을 흘끗 올려다보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차로 아줌마를 데려다주었다.
잠들기 전에 아버지는 내 방 난로에 석탄을 넣으며
온도계가 화씨 십육 도를 나타낸다며 아버지의 기억으로는 가장 추운 날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우리의 눈사람은 밖에서 꽁꽁 얼어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아니, 몇 분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가 싶더니, 아버지의 코트가 내 위에 둘러쳐졌다.
"벌써 아침인가요? "
"스카웃, 일어나야겠다."
아버지는 내 잠옷가운과 코트를 들고 있었다.
"옷부터 입어라. "
오빠는 아버지 옆에서 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서 있었다.
한 손은 코트깃을 쥐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쿡 찔러넣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뚱뚱해보였다.
"어서 스카웃. 여기 양말과 신발이 있다."
비몽사몽 간에 신발을 대충 신었다.
"아침인가요? "
"아니, 좀더 있어야 아침이다. 자, 어서. "
마침내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다.
"무슨 일 났나요?"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마치 새들이 가야 할 곳과 언제 비가 올지를 알고 있듯
우리 이웃에서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황금빛 음성과 급한 발걸음, 웅성거림이 나를 어찌할 수 없는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누구네 집인데요?"
"머디 아줌마네다. "
아버지가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앞문에 서서 머디 아줌마네 집 식당창문에서 분출되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때서야 기다렸다는 듯 사이렌 소리가 웨앵웨앵웨앵 계속 울부짖었다.
"전부 타버리겠어요. "
오빠가 신음하듯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자, 이제 너희들은 아래로 내려가서 래들리 집 앞에 있거라.
여기서 멀리 떨어져서. 알겠지? 어느 쪽에서 바람이 부는지 가늠할 수 있겠니?"
"네, 우리 가구는 안 꺼내도 될까요?"
"아직은 괜찮다. 젬, 내가 말한 대로 뛰어가라.
스카웃을 돌봐줘야 한다. 알겠지? 꼭 데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