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韓國文學感想]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9.

好學 2012. 3. 1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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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9.

 

    지은이:이주향
    출판사:명진출판

 

  제1부    길들지 않은 사랑은 힘이 세다

 

8  연하의 남자가 배우자로 좋은 이유
아들의 머리는 엄마를 닮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X염색체가 머리를 주관하는데 XY인 아들은 엄마로부터만 X염색체를  물려받으니까

아들의 머리는 전적으로 엄마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그 보도가 나가자 신세대 청년들이

그들의 연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얼굴 예쁜 것은 잠깐이고 자식 공부 못해 속썩이는 건 영원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보도는 대단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남자 원로 교수와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도 그 얘기를 했다.

그에게는 똑똑한 동생이 있는데 부잣집 딸과 연애결혼을 했다.

우리 대부분이 가난했던 70년대 초반이었다.

가난 때문이었는지 식구들은 한결같이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것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교수는 그 결혼을 반대했다.

여자 집안 식구들이 모두 머리가 나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동생에게 진지하게 충고했다.
 “돈 많은 거 그거 별거  아니다. 더구나 너는 미래가 있는 애 아니냐.

그런데 어쩌자고 머리 나쁜 여자랑 결혼을 하려고 하니.

너 지금은 편하게 시작할지 모르지만 20년 후에 후회한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고 유명한 회사 사장이 된 동생은

하나같이 엄마를 닮아 공부를 못하는 자식이 유일한 걱정거리라고 했다.

아들의 머리는 엄마를 닮는다는 최근 보도를 보고 그는 자신의 선견지명을 대견해 했다.
나는 “맞아요”라고 맞장구칠 수 없었다.

머리가 안좋다고 생각하는 많은 여자들에게

그 아들이 공부 못하는 것까지 뒤집어 씌우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수씨가 선생님을 껄끄러워하겠네요.”
 “아니, 이 선생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수씨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머리 나쁘다고 공인된 것도 서러운데

머리 좋은 시아주버님이 무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니 얼마나 시아주버님이 부담스럽겠어요?” 

그는 절대 내색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우연히 만나 식사하게 된 나에게까지 그 사실을 들킨 사람이면

반드시 집안에서 그런 기색을 보였으리라는 것을.

아들의 머리는  전적으로 모계유전이라는 명제에 대해

생물학자가 아닌 내가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논쟁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나는 남자 아이의 머리가 모계유전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간다.

머리는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모계유전이 확실하다면 아빠보다도 엄마의 중요성이 인식되어야 한다.

단순히 아이들은 엄마하고 커야 한다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아이의 사회적이고 법적인 위상이 엄마의 그늘 하에 있어야 한다.
 

조선시대로 가보자.

그때 아이에게 남자의 성을 갖게 하기 위해 통용되었던

유명한 이념이 남자는 씨, 여자는 밭이라는 말이었다.

여자는 개성 있는 식물이 아니라 어떤 씨앗도 다 받아내는 밭이기 때문에

자기 주장을 할 수 없는 무개성의 존재이고

반면 남자는 콩이니 배추니 하는 씨이기 때문에 개성이 존중되는 존재였다.

그런 전통에서 여자는 단지 남자의 정신을 담을 몸을 주는 것이었고

아이의 정신이나 머리는 남자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자아이의 머리는 모계유전이라고 밝혀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남자아이에게 머리를 주는게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까

남자아이의 성은 엄마를 따르게 해야 된다는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한술 더 뜬다.

여자 고를 때 머리 나쁜 거 참으면 안된다고. 

나는 여기서 남자아이게게는 엄마의 성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은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태도 혹은 시선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아라비아인을 사막에서 살해한다.

‘태양이 뜨거워서’가 동기라고 한다.

이건 용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태양이 뜨거워 사람을 죽이다니!

법의 관점에서 보면 사형감이고 뫼르소는 실제로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작가인 카뮈의 시선에서 보면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기보다
존재 이유가 없는 실존의 정황을 드러내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이라는 게 사람의 태도를 바꿔놓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태도가 사실을 규정해 간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진다.남자보다도 여자의 평균수명이 5년 이상 길다고 한다.
그러면 아무래도 남자가 홀아비로 사는 시간보다 여자가 과부로 사는 시간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평균 3~5년 어릴 때 결혼하니까

평균 10년 정도를 여자 혼자서 살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재혼하지 않는 경우다.
그 사실을 두고 2,30년 전만 해도 뭐라 그랬나?

여자는 혼자 사는 데 능숙하고 남자는 혼자 사는 게 힘들어서 여자 수명이 긴 것은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그러니까 연하의 남자와 결혼해도 괜찮다고 한다.

여자 수명이 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지만

예전 같으면 도대체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언제나 사실보다는 그 사실을 담아내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