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8과 사무엘상(2): 사무엘과 사울 (8-15장) 7

好學 2012. 2. 24. 20:25

제58과 사무엘상(2): 사무엘과 사울 (8-15장) 7

 

 

3. 사울의 실패-후기 사울 왕국(13-15장)   참고 지도: (사울의 생애)

 

3-1. 불길한 징조(13장)

  그러면 왕이 된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안타깝게도 사울은 신정 체제의 왕으로서의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는 13-15장을 통해서 사울이 몰락하고 그의 왕권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그의 나이가 40세였다(1). 사울은 왕이 된 지 2년에 자신의 왕의 직임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3천 명을 선택했다. 이들은 그가 왕의 직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친위병이었을 것이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역사의 초창기의 이스라엘에게 끊임없는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제철업을 독점하였으며(13:19-22), 우수한 전차 부대를 소유하고 있었다.(15)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상비군이 없었으며,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소집된 지원병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므로 사울은 왕이 된 후에 상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상비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울은 그 중에 2천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하고, 1천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했다(2). '믹마스'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5km, 기브아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해발 약 660m 정도의 고지에 있는 곳이었다. 이곳의 남쪽은 '와디수웨이닛'이라는 협곡과 연결되어 있었고, 남동쪽으로는 가파른 언덕들이 있어서 군사적 요충지가 될 수 있었다. '벧엘 산' 믹마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7km 정도 떨어져 있었으며, 해발 약 960m의 고지에 있는 곳이었다.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베냐민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로서 사울의 통치 거점이었다(10:26).

 

  어느 날 요나단은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공격했다. '게바'는 '기브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곳으로, 기브아 북동쪽 약 5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수비대'는 '기지' 혹은 '요새'란 뜻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거점에 설치한 불레셋의' 군사 초소나 진지'였을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영토 깊숙한 곳에 블레셋의 수비대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에 이스라엘이 불레셋에 의해 많은 압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의 진지를 친 소식은 곧 블레셋 사람들에게 들어가게 되었다. 사울은 이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온 땅에 사자를 보내고 나팔을 불어서 길갈로 소집하도록 기별했다(4). 요나단이 블레셋의 유격대를 치게 되자 블레셋은 즉각 반격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병거 3만과 마병 6천, 그리고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벧아웬 동편에 있는 믹마스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보고 두려워해서 굴과 수풀과 바위 틈, 그리고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다(6). 그리고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갔다. 그러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좆는 모든 백성들을 두려워서 떨고 있었다(7).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은 전에 암몬인들의 위협 앞에서 보인 태도와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사울은 군사를 준비하고 사무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사무엘은 사울에게 미리 7일 후에 그 곳에 가서 제사를 집례할 것을 기별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7일이 다 되어가도 오지 않았다. 아마도 사무엘은 약속한 마지막 날이 거의 다 지나가기 직전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약속한 7일을 온전히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백성들이 사울로부터 흩어지는 것을 보고, 제 7일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는 백성의 흩어짐을 막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조치를 취하려 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가 제사를 드리기를 마쳤을 때에 도착했다. 아마도 이 시간은 사무엘이 약속한 제 7일이 거의 끝나 가는 때였을 것이다. 사울은 사무엘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나가서 그를 맞았다(8-10). 사무엘은 사울이 자기 대신 번제를 드린 것을 보고 그를 책망했다. 사울은 자기의 행동을 변명하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번제를 드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11-12). 1) 이스라엘 군사들의 흩어짐. 2) 사무엘의 도착이 지연됨. 3) 블레셋 군대의 공격 가능성. 그러나 그러한 사울의 행동은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과 하나님과 사무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전쟁에 임하기 전에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려야 했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울은 그러한  순종과 시험에 실패함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부적격자임을 입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말은 들은 사무엘은 사울이 망령된 행동을 했다고 책망하면서, 사울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책망했다. 사무엘은 만일 사울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했었다면 여호와께서 그의 나라를 길게 하셨을 것이지만, 그 명령을 거역한 이제는 그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무엘은 그리고 나서 여호와께서 자기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를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다고 선언했다(14). 사무엘은 이 말을 한 후에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갔다.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니 모두 도망을 치고 600명만 남아 있었다(15). 사울은 요나단과 함께 그 군대를 거느리고 베냐민 게바에 진을 쳤으며, 블레셋은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었다(16). 블레셋 군대는 본 부대를 믹마스에 두고, 나머지 군사들을 세 부대로 나누어 이스라엘을 노략질하게 하였다.

 

첫째 부대는 오브라 길을 통해서 수알 땅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노략했다(17). 오브라'는 벧엘의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이곳은 원추모양의 산지로 형성되어 있었다. '수알'은 '여우'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수알 땅은 오브라 근처에 있었던 넒은 지역이었을 것이다. 블레셋의 제 1부대는 믹마스에서 북쪽으로 진격을 했었다.

 

둘째 부대는 벧호론 길로 이동하면서 이스라엘을 노략했다(17). '벧호론'은 '동굴의 집'이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믹마스 에서 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있는 곳으로 해발 약 600m의 고지였다(수 10:11). 블레셋의 제 2부대는 서쪽으로 이동했다. 셋째 부대는 스보임 골짜기가 보이는 길로 이동하면서 이스라엘을 노략했다(18). 블레셋의 제3부대는 믹마스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언급된 '광야'는 예루살렘 동쪽에 있던 유대 광야의 북부였을 것이다.

블레셋은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철을 다루는 철공을 남겨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기구를 수리할 때에 블레셋으로 가야만 했다. 이러한 블레셋의 정책을 인해 이스라엘 군대에게는 무기가 없었다. 이스라엘 군대 중에 무기를 가진 사람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 뿐이었다(19-22). 블레셋은 3부대로 나누어 이스라엘을 노략하게 했으며, 그 본 부대는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었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