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4.

好學 2012. 2. 23. 21:12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4. 


또 아버지는 어떤 말이 질퍽한 땅을 좋아하고,
어떤 말이 마른땅을 좋아하는지도 알았고,
늙은 말들이 왜 장애물을 넘는 지와 어린 말들이 1.6킬로미터 이상은
절대로 달리지 못한다는 것 외에 경마의 기수 몸무게가 얼마라는 것도 알았고,
말 주인의 부인이 왜 빨강 - 초록 - 황금색으로 된 매듭을 모자에 둘렀는지도 알았다.
말에 관련된 책들은 소장한 숫자가 5백 권을 넘었고,
말년에는 말 - 정확히 따지자면 한필이라고 치기에는 좀 엉성한 - 을 샀는데,
그 값을 6천 마르크나 치러서 어머니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 말을 산 이유는 단지 경마 때 그 말을
그것의 고유한 특성대로 달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것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하게 밝히도록 하겠다.

아무튼 우리는 경마장에 갔었다.
늦은 오후에 집으로 돌아올 때만 해도 날씨는 여전히 뜨거웠고,
어쩌면 한 낮 보다도 더 뜨겁고 푹푹 찌는 듯했다.
하지만 하늘에는 이미 얇은 막 같은 것이 쳐진 상태였다.
서쪽에는 짙은 회색 구름이 진노랑색 띠를 두른 채 덮여 있는 것도 보였다.
출발한지 15분이 지나자 갑자기 엄습해 온 구름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가려지고,
음산한 그림자가 땅을 뒤덮었기 때문에 자동차의 라이트를 켜야만 했다.
곧바로 산자락에서 돌풍이 휘몰아쳐 내려오더니
주변의 넓은 옥수수 밭을 감고 지나갔다.

그것은 마치 들판을 빗질하는 모습처럼 보였고,
잔풀더미들을 뒤흔들며 위협하는 모습 같기도 하였다.
그때 거의 동시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니, 빗방울이라기 보다는 처음부터 포도송이만큼 큰 방울이
아스팔트의 이곳 저곳과 자동차의 보닛과 앞 유리창에 사정없이 내리꽂히며 부서져 내렸다.
그렇게 엄청난 일기 변화는 시작 되었다.
나중에 신문에는 그렇게 지독한 나쁜 날씨는
우리 마을 근방에서 22년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의 진위는 그 당시 내가 겨우 일곱 살이었기 때문에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나쁜 날씨는 내 평생 다시없을 것이라는 것만은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자동차 안에서 그런 상황을 겪을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았다.
빗줄기는 더이상 방울방울 떨어지지 않았고 하늘에서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금방 도로에는 물이 철철 흘러 넘쳤다.
자동차는 마치 고랑을 치듯이 물 속을 가로질렀고,
양쪽으로는 물이 분수처럼 높이 솟아올라서 마치 물로 벽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고,
와이퍼가 부지런히 왔다갔다하기는 했지만
앞 유리창을 통해 본 밖의 풍경은 투명한 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날씨는 그래도 여전히 더 사나워지기만 했다.
빗줄기는 차츰 우박으로 변했고, 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귀에 들려 오는 소리가 후둑 후둑 떨어지는 더 요란한 소리로 변해서
그것을 느낌으로 먼저 알 수 있는 정도였다.
바깥 공기가 무척 쌀쌀하였고,
찬 공기가 차안으로까지 몰아쳐서 안에서도 한기가 느껴졌다.
우박은 처음에는 바늘귀만해 보이다가 금방 콩알만하게 커졌고
다음에는 돌멩이만해지다가 마침내는 맨질맨질한 흰 공처럼 변해서
내려오다가 보닛 위에서 위쪽으로 다시 튀어 오르곤 하였다.
그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 뒤죽박죽이고 요란스러워서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였다.
단 1미터만이라도 앞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
사실 길이란 길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길가는 더욱이 알 수가 없었으며 들판이나 혹은
나무 한 그루도 볼 수가 없었으니 길가라는 표현이 합당한 것은 아니었다.
겨우 2미터 앞까지만 내다볼 수 있었고,
그 2미터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허공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동차 몸체 위에서 부서져 내리던
당구공같이 생긴 수백만 개의 얼음 덩어리뿐이었다.
자동차 안에서도 소음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마치 어떤 거인이 마구 두들려 대는 큰 팀파니 통 속에 앉아있는 느낌이었고,
그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 추위에 떨면서 침묵을 지킨 채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는 안식처가 부서지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얼마 후 날씨가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우박이 그쳤고, 바람도 잠잠해졌다.
단지 조용한 이슬비만이 부슬부슬 내렸다.
돌풍이 휘젓고 간 길옆의 옥수수 밭에는 옥수수들이 바람에 짓밟힌 채 쓰러져 있었다.
그 뒤로 보이던 밀밭에는 밀이 줄기만을 앙상한 모습으로 드러내 놓고 있었다.
떨어지며 부서진 우박, 마구 찢겨진 채 떨어진 나뭇잎, 나뭇가지,
이삭들이 도로에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시야가 닿는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슬비의 엷은 막 사이로
길 끄트머리쯤에서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의 형체를 보았다.
내가 그것을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우리는 우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그 시람을 함께 쳐다보았다.
사방의 모든 것들이 짓이겨지고 흩어진 채 뒹구는
그런 우박 난리를 치른 다음인데도 그런대로 반듯이 걷는다는 것과
그런데서 혼자 걷는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마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우리는 우박으로 쌓인 것들을 헤치며 자동차를 몰았다.
그 사람의 곁으로 다가갔을 때,
난 짧은 바지와 비에 맞아 번들거리는 울퉁불퉁한 긴 다리와
배낭처럼 보이는 것이 착 달라붙어 있는 검은 색 우비와
좀머 아저씨의 잰 걸음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를 앞질러 갔고, 나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창문을 내렸다.
밖의 공기는 몹시 차가웠다.
"좀머 씨!"
아버지가 큰 소리로 불렀다.
"차에 타세요!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자리를 양보해 드리려고 얼른 뒷자리로 옮겨앉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깐 멈춰 서지도 않았다.
옆 눈길로 우리를 슬쩍 훔쳐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호두나무 지팡이로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잰걸음으로 우박이 떨어진 길을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아버지는 그의 뒤를 따랐다.
"좀머 씨!"
열린 창문을 통해 아버지가 다시 외쳤다.
"어서 타시라니까요!
날씨도 이런데! 집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아저씨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칠 줄 모르고 앞으로 걷기만 할 뿐,
내가 얼핏 보기에는 입을 씰룩거리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무슨 대답인가를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의 입술이 추위 때문에 잠시 떨렸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계속 좀머 아저씨 곁으로 바짝 붙어서 차를 몰면서,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여 차의 앞문을 열고 다시 소리쳤다.
"어서 타시라니까요, 글쎄!
몸이 흠뻑 젖으셨잖아요! 그러다가 죽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