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3.

好學 2012. 2. 23. 21:09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3.


그는 쉽게 식별이 되는 사람이었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다른 사람과 전혀 혼동되지 않았다.
겨울이면 그는 검은색에 폭이 지나치게 넓고 길며 이상하게 뻣뻣해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너무 큰 무슨 껍질처럼 그의 몸을 감싸던 외투를 입고 지냈다.
그리고 신발은 고무 장화를 신었고, 대머리 위로는 빨간색 털모자를 쓰고 다녔다.
여름에는 - 좀머 아저씨의 여름은
3월 초부터 10월 말까지여서 일년 가운데 가장 긴 기간이었는데 -
까만색 천으로 띠를 두른 납작한 밀짚모자를 쓰고 다녔고,
캐러멜색 린네르 셔츠와 캐러맬 색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럴 때면 바지 밑으로 힘줄과 울퉁불퉁한 혈관만이 들어나 보이는
억세고 긴 다리가, 우왁스러운 등산화 속으로 가려진 부위를 제외하고는
우스꽝스럽도록 가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곤 하였다.
3월에 다리는 눈이 부시도록 흰빛이었고, 울퉁불퉁한 혈관들은
사잇길이 많은 푸른색 강줄기의 모습처럼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불과 몇주일만 지나면 다리는 꿀과 같은 색으로 변하였고,
7월에는 셔츠나 바지처럼 캐러멜 밤색으로 변하여 빛을 발하였다.
그리고 가을에는 피부가 햇빛과 바람과 일기의 변화로 인해
짙은 밤색으로 변해서 혈관이나 힘줄이나 근육질이 전혀 구별되지 않았고,
다리는 마치 껍질이 벗겨진 호두나무의 울퉁불퉁한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그것들은 11월이 되면 긴바지와 긴 검은 색 외투로 가려져서
삶들의 시선을 멀리한 채 이듬해 봄까지 원래의 색깔인 치즈빛 흰색으로 탈색되어 가곤 했다.

두 가지 물건만은 좀머 아저씨가 여름이나 겨울이나 상관없이 항상 가지고 다녔다.
그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를 본 사람은 일찍이 아무도 없었다.
그중의 하나는 지팡이였고, 다른 하나는 배낭이었다.
지팡이는 단순히 일반적인 산책용 지팡이가 아니라
길쭉하고 약간 구부러진 호두나무 가지로서 크기가 아저씨의 어깨를 넘겼고,
아저씨에게 제3의 다리 역할을 해내는 것이었다.
그것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낼 수가 없었을 테고,
보통 사람들이 걷는 것보다 몇 배에 달하는 그런 먼 거리를 걸어다닐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발자욱을 세번 옮길 때마다 그는 오른 손으로 짚고 있던 지팡이를 앞쪽으로 밀면서,
그것으로 땅을 찍으며 온 힘을 다해 앞쪽으로 쭉 밀어내곤 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치 원래의 두다리는 단지 몸을 앞으로 밀어내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할 뿐이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은 오른 손으로부터 나와서
지팡이를 통하여 땅에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개의 나룻배들이 배의 몸체를 긴 장대로 밀어서 물위로 밀어내는 것과 같은 논리였다.
배낭은 늘 텅 비어있었다.
사실 그 안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바 대로라면
그가 먹을 버터 빵 한쪽과 밖에서 갑자기 비를 만나면 입을,
모자가 딸린 우비가 접힌 채 있을 뿐이어서 거의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 것인지?
그러한 끝없는 방랑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잰 걸음으로 하루에
열 둘, 열 넷 혹은 열 여섯 시간까지 근방을 헤매고 다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좀머 아저씨가 우리 마을로 이사와서 정착했던 전쟁 직후에는
사람들이 전부 배낭을 메고 다녔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그의 그런 행동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휘발유도 없었고, 자동차도 없었으며, 하루에 딱 한번만 버스가 운행되었고,
땔감도 없었으며, 먹을 것도 없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서 달걀 몇개를 구해 온다거나,
하다 못해 편지지나 면도날을 구하러 가야만 했을 때도 몇 시간이든 걸어서 갔다가,
구한 물건들을 손수레에 싣거나, 배낭에 짊어지고 집으로 운반해 오곤 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난 다음에는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마을 안에서 살 수 있게 되었고,
석탄은 배달이 되었으며, 버스는 하루에 다섯 번씩 운행되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자 정육점 주인이 자가용을 굴렀고,
다음에는 시장이 차를 샀고, 그 다음에는 치과 의사가 샀다.
그리고 페인트 칠장이인 슈탕엘마이어 씨는 큰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다녔으며,
그의 아들도 작은 오토바이를 사서 다녔으며, 버스는 그래도 여전히 하루 세 번은 다녔다.
그래서 무슨 볼일이 있다거나, 여권을 갱신해야만 되는 등의 할 일이 있더라도
네 시간이나 걸어서 군청 소재지까지 갔다 오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좀머 아저씨말고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저씨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걸어서 다녔다.
아침 일찍이면 배낭을 짊어지고 지팡이를 손에 쥔 다음 서둘러 집을 떠나서
들판과 초원을 지나 크고 작은 길을 걸으며 호수 주위에 있던 숲을 지나서
시내로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늦은 저녁까지 사방을 쏘다녔다.

이상한 일은 그에게 아무런 볼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배낭은 버터 빵과 우비를 빼고는 늘 비어 있었다.
우체국에 가는 일도 없고, 군청에 가는 일도 없이,
모든 일은 다 자기 부인이 일임하였다.
누구를 방문한 적도 없고, 어디로 가서 잠시라도 머무는 일이 없었다.
시내로 가면 무엇으로 요기한다거나,
최소한 목이라도 축이려고 어디든 들어가는 일도 없었고,
정말로 그는 벤치에 단 몇 분이라도 앉아서 쉬지도 않은 채
그대로 선 자세로 돌아서서 집이나 어디 다른 곳을 향해 다시 걸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디에서 오는 중인지를 묻는 다거나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면
그는 마치 콧잔등에 파리라도 앉아 있는 것처럼
마지못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하였는데,
그 말은 불과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아주 바빠서 이제 학교 뒷산을 올라갔다가……
호수를 빨리빨리 지나서……오늘 아직 시내에도 꼭 가보아야고……
너무 바빠 지금 당장 바빠 시간이 없어……), 그렇게 말해 놓고는,
사람들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어디를 간다고 했느냐고 반문이라도 할라치면
그는 어느새 지팡이의 직직 끌리는 소리를 앞세우며
그 자리에서 멀리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좀머 아저씨가 분명하고 확실하며
오해의 소지가 없는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는 소리를 나는 딱 한번 들었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고, 아직도 그 말은 내 귓가에 생생하다.
7월 말 날씨가 지독히도 나빴던 어느 일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사실 그날 날씨는 처음에는 무척 좋아서 하늘에 구름 한점도 없이 화창했다.
낮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레몬을 띄운 냉차나 마시면 딱 좋을 날씨였다.
그날은 마치 일요일이라서 나는 일요일이면 종종 그랬듯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경마장에 갔다.
그 무렵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경기장을 찾았다.
하지만 돈을 걸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 그 점을 난 분명히 언급해 두고 싶다. -
다만 열광적인 애호가였기 때문이었다.
당신께서는 평생 한 번도 말을 타 본적이 없었지만
열광적인 말 애호가였으며 말 전문가이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예를 들어서 1969년 이후 더비 경마 대회에서 우승한 말의 이름을
연도의 순서를 거꾸로 하거나 혹은 바로 해서 줄줄이 외울 수 있었고,
영국의 더비 경마 대회에서 우승한 말들도 알고 있었으며,
1910년 이후 프랑스의 (개선문 상) 대회에서 있었던
중요한 시합의 우승자들도 다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