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

好學 2012. 2. 22. 20:40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 


오래 전, 수년, 수십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내 키는 겨우 1미터를 빠듯이 넘겼고,
내 신발은 28호였으며, 나는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무렵 정말로 날 수 있었다.
적어도 거의 그렇게 까지 할 수 있을 것같이 보였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당시 내가 진짜로 그럴 각오를 하고 제대로 실행에만 옮겼다면
실제로 몸을 날릴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하마터면 그대로 날아 버렸을 뻔했던 적이 그 무렵
한번 있었던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맞는 가을이었다.
하교 길에 바람이 엄청나게 많이 불어서
양팔을 옆으로 쭉 뻗지 않고서도 넘어지지도 않고,
스키 선수가 맞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몸을 버티듯이
그렇게 비스듬한 자세로, 점점 더 비스듬하게 내 몸을 구부릴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바람을 뒤로 맞으며 학교 앞 동산의 초원을 가로질러 뛰어 내려 왔을 때
- 우리 학교는 마을에서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
발을 조금만 힘차게 구르고, 팔을 양쪽으로 쭉 뻗기만 했더라면
내 몸은 바람을 타고 훨훨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혀 힘도 들이지 않고 2, 3미터나 되도록 높게,
10 내지 12미터나 되도록 멀리 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멀리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따위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어쨌든 나는 그때 날 수 있었고, 내가 만약 외투의 단추를 풀고
그것의 양끝을 양손으로 잡아 주기만 했더라면,
바람을 타고 둥둥 떠다닐 수 있어서 학교 앞 동산에서
언덕의 아래에 있던 숲 위로 거침없이 훨훨 날아다니다가,
숲을 지나 우리 집에 있던 호숫가로 날아가서,
우리 집 정원 위에서 멋지게 한바퀴 선회하면,
날아다니기에는 이미 몸이 너무 무거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을 테고,
다시 호수의 반대편 제방까지 날아가 점심 식사 시간에 늦지 않게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 마침내 우아한 몸짓으로 착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외투의 단추를 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높이 날아다닐 수는 없었다.
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더 심각하게는 도대체 내가 다시 땅으로
내려올 수 있을 것인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앞뜰은 너무 딱딱했었고, 정원은 너무 작았으며,
호수 물은 착륙하기에는 너무 차가워 보였다.
정말로 몸을 띄우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다시 내려올 것인가?

나무에 기어오르는 것도 그것과 비슷한 경우다.
위로 기어오르는 것은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
눈으로 나뭇가지를 쳐다볼 수 있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으며,
잡고 올라가기 전에 그것이 얼마나 튼튼한지를
시험해 보고 다리를 그 위로 걸터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밑으로 내려 올때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한발을 내려 딛기 전에 거의 장님이나 마찬가지로
밑에 있는 가시덤불 사이를 발로 헤쳐 보아야만 한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그렇게 내려올 때 밑에 있는 가지는 튼튼하지 않고 썩어 있거나
미끄러워서 사람들이 미끄러지거나 가지째 부러지며 떨어지기 일쑤다.
그리고 가지를 두손으로 꽉 잡지 않으면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미 4백여 년 전에 발견하여
오늘날 까지도 인정되고 있는 이른바 낙하 법칙에 의해서
사람들은 마치 돌덩이처럼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제까지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심하게 떨어졌던 경우는
역시 같은 해인 국민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높이가 4.5미터였던 전나무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갈릴레이의 낙하 법칙대로 떨어졌다.
갈릴레이의 낙하 법칙으로 말하지면 낙하의 거리는 가속도 곱하기
시간의 제곱을 한 것의 2분의 1이라는
법칙(S=1/2g.t2)에 따라서 정확히 0.9578262 초가 걸렸다.
대단히 짧은 시간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스물 하나에서 스물 둘을 세려고 할 때 걸리는 시간보다도 짧은 것이었으며,
(스물 하나)를 제대로 발음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도 짧은 것이었다!
그 정도로 너무나 짧은 시간이어서 나는 팔을 옆으로 뻗을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투를 낙하산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단추를 풀 수도 없었으며,
날 수 있으니 떨어질 이유가 없다는 그런 결정적인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내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도 전에,
갈릴레이의 제2법칙에 의해 최종 속도 시속 33킬로미터 이상으로
팔꿈치만큼 굵은 가지를 뒤통수로 부러뜨리면서 땅바닥에 나뒹굴어 떨어질 때까지의
0.9578262초 동안에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런 모든 것을 일어나게 한 힘은 중력이었다.
그 힘은 지구의 깊숙한 곳에서 물체가 서로 뭉쳐 있도록 만들뿐만 아니라,
물체가 크건 작건간에 땅위의 모든 것을 완력으로 잡아 당기는 이상한 성질이 있었다.
다만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거나,
잠수부가 되어 물 속에 있을 때만 우리는 중력의 끈질긴 힘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런 지극히 기본적인 논리에 의해서
내 머리에는 떨어질 때 부딪쳐서 생긴 혹이 하나 있었다.
사실 혹은 불과 몇 주일이 지나자 이내 사라져 버렸지만,
그 후로도 몇년동안 날씨가 바뀔 때라든가 특히 눈이 내릴 때면
혹이 있었던 바로 그 지리가 이상하게 근질근질거린다거나 콕콕 찌르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뒤통수는
믿을 만한 일기예보기 노릇을 톡톡히 해서 나는 내일 비가 올지,
햇빛이 비칠지 아니면 폭풍이 휘몰아칠지에 대해서
기상 통보관보다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겪고 있는 혼란스러움이나 집중력도
따지고 보면 전나무에서 떨어질 때 생긴 후유증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주제에 계속 매달린다거나,
어떠한 분명한 생각을 간단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엉망진창이 되어서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