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韓國文學感想]

황석영 - 삼포가는 길 7.[終]

好學 2012. 2. 22. 20:44

  황석영 - 삼포가는 길 7.[終] 

마침 장이 섰었는지 파장된 뒤인데도 읍내 중앙은 흥청대고 있었다.
전 부치는 냄새, 고기 굽는 냄새, 곰국 냄새가 풍겨왔다.
영달이는 이제 백화를 옆에서 부축 하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여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정씨가 백화에게 물었다.
"어느 방향이오?"
"전라선이예요."
"나는 호남선 쪽인데."
"여비는 있소?"
"군용차를 사정해서 타구 가면 돼요."
그들은 장터 모퉁이에서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팥시루떡을 사 먹었다.
백화가 자기 몫에서 절반을 떼어 영달에게 내밀었다.
"더 드세요. 날 업구 왔으니 기운이 배나 들었을 텐데."

역으로 가면서 백화가 말했다.
"어차피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우리 고향에 함께 가요.
내 일자리를 주선해 드릴께."
"내야 삼포루 가는 길이지만, 그렇게 하지?"
정씨도 영달이에게 권유했다.
영달이는 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신발 끝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이 없었 다.
대합실에서 정씨가 영달이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속삭였다.
"여비 있소?"
"빠듯이 됩니다. 비상금이 한 천 원쯤 있으니까."
"어디루 가려우?"
"일자리 있는 데면 어디든지."
스피커에서 안내하는 소리가 웅얼대고 있었다.
정씨는 대합실 나무 의자에 피곤하게 기대어 앉은 백화 쪽을 힐끗 보고 나서 말했다.
"같이 가시지.
내 보기엔 좋은 여자 같군."
"그런 거 같아요."
"또 알우? 인연이 닿아서 말뚝 박구 살게 될지.
이런 때 아주 뜨내기 신셀 청산해야지."

영달이는 시무룩해져서 역사 밖을 멍하니 내다보았다.
백화는 뭔가 쑤군대고 있는 두 사내를 불안한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영달이가 말했다.
"어디 능력이 있어야죠."
"삼포엘 같이 가실라우?"
"어쨌든."
영달이가 뒷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오백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저 여잘 보냅시다."
영달이는 표를 사고 삼립빵 두 개와 찐 달걀을 샀다.
백화에게 그는 말했다.
"우린 뒷 차를 탈 텐데. 잘 가슈."

영달이가 내민 것들을 받아 쥔 백화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 여자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무도. 안 가나요."
"우린 삼포루 갑니다. 거긴 내 고향이오."
영달이 대신 정씨가 말했다.
사람들이 개찰구로 나가고 있었다.
백화가 보퉁이를 들고 일어섰다.
"정말, 잊어버리지 않을께요."
백화는 개찰구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백화는 눈이 젖은 채 웃고 있었다.
"내 이름 백화가 아니예요.
본명은요. 이점례예요."

여자는 개찰구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에 기차가 떠났다.
그들은 나무 의자에 기대어 한 시간쯤 잤다.
깨어 보니 대합실 바깥에 다시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기차는 연착이었다.
밤차를 타려는 시골 사람들이 의자마다 가득 차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담배를 나눠 피웠다.

먼 길을 걷고 나서 잠깐 눈을 붙였더니 더욱 피로해졌던 것이다.
영달이가 혼잣말로
"쳇, 며칠이나 견디나."
"뭐라구?"
"아뇨, 백화란 여자 말요.
저런 애들 한 사날두 시골 생활 못 배겨나요."
"사람 나름이지만 하긴 그럴 거요."
"요즘 세상에 일이 년 안으루 인정이 휙 변해 가는 판인데."

정씨 옆에 앉았던 노인이 두 사람의 행색과
무릎 위의 배낭을 눈 여겨 살피더니 말을 걸어 왔다.
"어디 일들 가슈?"
"아뇨, 고향에 갑니다."
"고향이 어딘데."
"삼포라구 아십니까?"
""어 알지, 우리 아들놈이 거기서 도자를 끄는데."
"삼포에서요? 거 어디 공사 벌릴 데나 됩니까.
고작해야 고기잡이나 하구 감자나 매는데요."
"어허! 몇 년 만에 가는 거요? "
"십 년."
노인은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두 말우 거긴 지금 육지야.
바다에 방둑을 쌓아 놓구, 추럭이 수십 대씩 돌을 실어 나른다구."
"뭣땜에요?"
"낸들 아나, 뭐 관광 호텔을 여러 채 짓는담서 복잡하기가 말할 수 없데."
"동네는 그대루 있을까요?"
"그대루가 뭐요. 맨 천지에 공사판 사람들에다 장까지 들어섰는 걸."
"그럼 나룻배두 없어졌겠네요."
"바다 위로 신작로가 났는데, 나룻배는 뭐에 쓰오.
허허 사람이 많아지니 변고지,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 을 잊는 법이거든."

작정하고 벼르다가 찾아가는 고향이었으나,
정씨에게는 풍문마저 낯설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영달이가 말했다.
"잘 됐군.
우리 거기서 공사판 일이나 잡읍시다."
그때에 기차가 도착했다.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는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던 때문이었다.
어느 결에 정씨는 영달이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 버렸다.
기차는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