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韓國文學感想]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2

好學 2012. 2. 22. 20:48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2.

 

    지은이:이주향
    출판사:명진출판

 

  1부    길들지 않은 사랑은 힘이 세다


  1더 이상 결혼이 감미롭지 않은 이유


그래도 사랑은 사적인 자리가 있지만 결혼에는 사적인 공간보다 공적인 공간이 많다.

결혼은 명백하게 공적인 것이다.

물론 `결혼이 공적인 것이다`라고 말할 때 이 말은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야.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지”라고

 우리 어른들이 곧잘 말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결혼이 공적이라는 것은 결혼은 사랑과는 달리 (사랑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이 사회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결혼의 형식 속에 사회의 중요한 형식이 녹아 있다는 의미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사랑을 하던 시절

갑돌이와 갑순이가 사랑을 하던 시절 결혼은 감미로운 것이었다.

갑돌이를 보기만 해도 가슴 떨려 하던 갑순이는 그 가슴 떨리는 것을 감추다가

결국 갑돌이 아닌 남자에게 시집을 가고 갑순이에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 보지 못한

순진한 갑돌이는 갑순이가 시집가던 날 달 보고 울다가 화가 나서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앞두고 들떠 있을 때 그 남자와 여자의 선배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살아 봐라, 살아 봐! 살아 봐도 그렇게 가슴 떨리고 달 보고 눈물 흘릴 일 있나!”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세상을 떠나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를 보고 멋있어 하는 신세대 여성과 데미 무어가 사랑하는 연인이 떠난 자리를

사기꾼으로 채울까봐 안타까워하는 신세대 남성이 결혼을 꿈꿀 때 결혼은 더 이상 감미롭지 않다.

사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감미로움을 기대하며 결혼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는 드물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감미롭게 들렸던 `결혼`이 갑자기 그 감미로운 화음을 잃어버렸는가?
 

결혼이 감미롭게 들렸던 시절, 결혼에는 성이 숨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사회가 결혼 이외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성을 금기시해 놓을 때 성의 세례를 받는 결혼은 감미로워진다.

금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비밀이 있다.

또한 어떤 방식으로 금기가 행사되는냐 하는 것은

특정한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사회적 뼈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혼의 핵심은 성이다
결혼의 핵심은 역시 성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결혼의 핵심을 성이라고 말할 때 특정한 사람의 고백을 떠올리면 안 된다.

금실 좋은 부부나 궁합이 안 맞아 이혼을 결심하는 부부가 “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문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신경정신과 의사가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해서는 성생활이 만족스러워야 한다”고 말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성기능 장애가 있는 남자와 결혼하려는 여자가

“우리가 섹스 때문에 결혼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극단의 말 모두를 `결혼의 핵심은 성`이라는 주장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주장은 특정한 개인의 실존적 고백일 뿐이다.
 

나의 주장은 결혼을 중심으로 성이 어떻게 통제되고

반대로 결혼과 관련하여 성에 관한 어떤 담론이 생성되는가를 살펴보면

사회가 존립해 있는 중요한 형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의 핵심은 성이라고 할 때는 바로 그런 의미다.
서양이나 우리나 봉건 사회에서의 결혼은 크게는 남자의 집안에 여자를 들이는 것이었고

작게는 남자가 크고 작은 일을 도와 줄 여자를 들이는 제도였다.

여기서 핵심은 결혼의 주체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여자는 일부종사라는 전제하에 순결과 지조를 생명으로 여겼다.
그것은 물론 한 남자에게 성적으로 속하게 함으로써

모든 생활에서 여성을 구속하려는 보이지 않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여자를 개 패듯 패는 남자를 지나가는 행인이 말리려고 할 때

 “내 마누라요”라는 한마디로 남자는 그 행인의 간섭을 벗어버릴 수 있었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는 채로도여자는 남자의 화가 풀릴 때까지 맞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남자가 원할 경우에는 다시 남자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 했다.

여자는 인격이 아니라 남자의 소유물이었다.

 

조강지처, 그 안정적인 이름
답답하기 그지없는 인현왕후가 미화되고 자기 목소리를 가지려 했던 장희빈이
요부로 천시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지만

(결국 힘의 싸움에서 남인을 이긴 서인의 승리 때문이 아닌가!)

요부를 요부로 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더욱 정치적이다.
왜 장녹수, 장희빈, 개똥이 김상궁을 천하의 요부로 욕할 수 있었나?

이들은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노예처럼 남자의 말을 듣는 것 이외에 사회적 자리가 허락되지 않은 여자에게
어쩌면 '성'은 출세의 유일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자들이 남자의 노리개나 일꾼이어야 할 천한 여자의 발 아래

무릎 꿇는 치욕의 시간이 두려워 성으로 출세한 여자를 미움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같은 여자들은 조강지처의 자리에 흠집이 날까봐 그 여자들을 미움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다는 힘 센 말의 도움을 받는 봉건사회에서
‘조강지처’란 신선하고 살맛나는 이름은 아니어도 얼마나 안정적인 이름이었던가!

조강지처를 거쳐서 시어머니가 된 여자가 집안에서 누릴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생각해 보라.

아들이 있는 조강지처는 정말로 안정된 자리였다.
 

전통 사회에서 여자는 한 남자의 성에 속해서 그 남자의 성을 가진 아이를 낳는 존재다.

그러므로 결혼은 특히 여자의 성을 통제하는 중요한 방식이었다.
결혼제도 속에 통제되지 않는 여자는 자유로운 여자가 아니라 거리의 여자였다.
거리의 여자란 한 남자에 속해 있지 않는 여자였고 그래서 안정적일 수 없는 여자였다.
 

숙종의 여자였던 장희빈보다 연산군의 여자였던 장녹수가 더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장녹수를 들먹일 때마다 하는 얘기가 “거리에서 몸 팔던 여자래”가 아닌가!

죽어도 무덤을 만들어 줄 수 없는 천한 여자가 왕의 권력을 나눠 쓰려 했으니

용서되지 않는 일이었던 것이다.
 

사회가 봉건제도의 틀을 벗고 자본주의 제도로 들어섰을 때도 결혼의 꿈은 여전히 감미로웠다.

일부일처제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예전의 봉건사회와는 달랐다.

그러나 사회는 자본의 축적이라는 대명제를 성취하기 위해 남자의 노동력에만 임금을 지불하고

공식적으로는 성을 결혼 내로 한정시켰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여전히 감미롭게 기대되었다.
그리고 남자에게 만능 비서 붙이듯 여자를 하나씩 붙여줌으로써

여자에게는 결혼의 안정감을 보장한 후에 여성의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하며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효과적으로 진행시켜 나갔던 것이다.
 

성을 금기의 항아리 안에 가둬 놓고(특히 여성에게) 철들지 않게 한 후
가부장제라는 권력을 휘둘러 나갈 때에만 결혼은 감미롭다.

그 감미로움에 취했던 자가 철든 후에는 이미 아이를 셋 가진 선녀 아닌가?

이미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 선녀는 하늘 나라의 꿈을 포기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나무꾼 신랑과 함께 사는 길 이외에 이 구차한 현실을 견딜 방법이 없다.

 

섹스를 최고의 대화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결혼이 더 이상 감미롭지 않은 것은 결혼과 성의 필연적 연결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섹스가 최고의 대화’라는 데 많은 선남선녀들이 동의하는 시대다.

성의 금기가 풀리면서 결혼이 그 감미로운 환상을 벗고
현실로 다가오자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버릇처럼 되뇌이는 말이 ‘옛날엔 안 그랬는데’다.

몇 번 만나 호감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다니는 신세대는

결혼 혹은 약혼 전까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럴 수 없었던

어른들의 눈에 불안하게 보일런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조촐하게 언약식만 하고도 꽤 진한(?) 사이가 될 수 있는 신세대는

어른들 눈엔 당연히 겁없는 아이들로 비칠 것이다.

또 잠시 한눈을 팔았다는 이유로 그 진한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는 가벼운(?) 신세대를 보고

어른들은 ‘영원히 사랑할 거야’라는 말 한마디 없이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지지고 볶고 살았던 그들의 삶이 더욱 무게 있는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확실히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도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신세대 커플 네 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을 한다고 한다.

옛날 눈으로 보면 신세대는 상대적으로

너무 빨리 결혼하고 너무 빨리 헤어지는 세대라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그러나 그 사실이 신세대가 결혼을 겁없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가벼운 세대라는 가설을 검증해 주는가?

나는 그 사실이 보여주는 것은 시대가 달라졌음을 보여 주는 것일 뿐

그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가부장적 농경사회에서 살았고

그 사회에서 결혼이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인정된 성인 남녀의 선택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관계 맺음이었다.

가부장적 사회는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가족 내에서 누군가 잘못 되면 사돈을 포함하여 3대가 멸족되기도 했다.

상황이 그렇다면 결혼은 결코 두 사람의 선택일 수 없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인정된 성인 남녀 두 사람의 선택이다.

아직도 결혼은 양가 집안의 만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결혼을 통해 기득권에 스크럼을 짜서 오랫동안 기득권을 보호해 보려는 얄팍한 계산일 뿐

실제로 결혼이 집안간의 제도적 얽힘이기 때문은 아니다.
결혼이 스스로 성을 결정하고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성인 남녀의 선택이 아니었던 시절에는

이별이나 이혼도 선택 사항일 수 없었지만

결혼이나 만남이 선택이 된 상황에선 이혼이나 이별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제 여자들은 더 이상 가사나 육아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남자나

부인 따로 애인 따로 두면서도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웃기는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남자들도 사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입 속의 혀처럼 구는 현모양처를 이상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세대는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걸어줄 수 있는 동지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함께 할 동반자를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신세대가 가벼워서 만남이나 사랑에 무게를 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결혼이나 사랑의 내용이 달라진 것이다.

산골짜기에서 캐낸 돌과 강가에서 캐낸 돌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쨌든 사랑은 진실하고 진지하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누구나 같이 잠들고 같이 아침을 맞고 싶어하며, 같이 늙어가고 싶어한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랑은 여전히 맹목적이다.

사랑하는 님을 따라 혹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으로 인해

고무신 두짝을 나란히 벗어놓고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옛날식 맹목성이라면

이미 떠나간 사랑을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잊지 못하는 사랑의 이면을 보여 주는 것이 오늘의 맹목성일 것이다.
우리의 신세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단지 그들은 그들 부모와는 다른 조건에 놓여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