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7과 사무엘상(1): 엘리와 사무엘 (1-7장) 10

好學 2012. 2. 12. 22:13

 

제57과 사무엘상(1): 엘리와 사무엘 (1-7장) 9

 

 

  블레셋 방백들은 이러한 조언을 받아들여 젖 나는 소 두 마리로 하여금 새 수레를 이끌게 하고, 그 수레에 여호와의 언약궤와 금 독종과 금 쥐를 담은 상자를 실었다. 이때에 수레를 맨 두 암소는 울면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를 향해 갔다. 이때에 암소가 운 것은 자기 새끼를 떠나야만 하는 슬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소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여호와의 궤를 벧세메스까지 운반해야만 했기에 울면서도 벧세메스로 가아먄 했다. 이때에 블레셋 방백들은 이스라엘의 경계인 벧세메스경계까지 그 암소를 지켜보면서 뒤따라갔다(11-13). 이렇게 해서 언약궤는 블레셋 땅으로 간지 일곱 달만에 다시 벧세메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언약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때에 구 수레는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중에 큰 돌이 있는 곳에 멈추어 섰다. 이를 본 수레들은 수레의 나무를 패고, 소를 번제로 드렸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궤와 금쥐와 금 독종을 담은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었다. 그리고 그 날 벧세메스 사람들은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블레셋의 다섯 방백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에그론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블레셋 방백들은 이를 통해서 그 동안 자기 나라에 내려진 재앙들이 여호와의 연약궤로 인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스스로 블레셋 땅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보다가 (오만) 칠십 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는 일이기 때문에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민 4:5, 6, 15-20).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를 어기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서 내부를 들여다 보고 말았다. 하나님은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취급한 블레셋을 징벌하셨듯이(5:1-2), 그 궤를 세속적 구경거리로 삼은 벧세메스 사람들도 엄히 징벌하셨다(19). 이는 이방인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은 경외할 대상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오만'이라는 숫자가 괄호 안에 기록된 것은 필사자의 실수로 쓰여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인'(70)을 '눈'(50,000)으로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Kennicott). 후일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의 인구가 최고로 번성했을 때에 7만이엇다는 것을 생각하면 '칠십 인'이 죽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Keil, Smith, Fay). 유대의 역사가 요세 푸스 역시 이 때에 죽은 사람이 '칠십 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Antiquities,  vi, 1, 4).  이로 인해 가족을 잃은 백성들은 크게 애곡하였다. 이러한 사건은 각 지역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 되고도 남았다. 그들은 이러한 징계를 통해서 "여호와의 거룩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설 수 있겠느냐?"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이렇게 두려운 "여호와의 궤를 누구에게 보내야 하느냐?"고 부르짖었다(20). 법궤를 경솔히 돌여다 본 범죄의 대가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전과 같은 징계가 또 내려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그 궤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자들을 기럇여아림에 보내어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가라고 기별하였다(21).  '기럇여아림'은 '숲의 성읍'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쿠르엣 엘 에납'으로  추정된다(Robinson). 당시 이 성읍은 벧세메스 북동쪽 약 145km, 예루살렘 북서쪽 약 13km지점에 있었다. 그러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왜 다른 성읍들을 제치고 하필 이면 왜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을까?  그것은 그 당시 기럇여아림의 지정학적 위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기럇여아림이나 벧세메스는 모두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다윗이 르바임 골짜기를 완전히 수복시키기 전까지 이 두 성은 르바임 골짜기를 점령하고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그러므로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벧세메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마찬가지로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있던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을 것이다. 그들이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내려오라'고 말한 것은 벧세메스가 해발 305m, 기럇여아림이 해발 762m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이러한 기별을 받고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살던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그 언약궤를 지키게 하였다. 그 후 여호와의 언약궤는 다윗이 이 궤를 예루살렘에 옮길 때까지 20년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 궤가 이 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간절하게 사모하게 되었다(7:1-2).

 

 * 법궤의 이동 경로:  (참고지도)
 1) 실로(여호수아-엘리 때까지)
 2) 에벤에셀과 아벡의 전쟁터
 3) 아스돗 - 4) 가드 - 5) 에그론(약 7개월)
 6) 벧세메스
 7)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이 곳에서 그 후 20년 동안 머묾).

 

* 마지막 사사 사무엘(7:3-17)  (참고지도)

  여호와께서는 비록 따끔한 손길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그들로부터 분리시키셨지만, 그래도 이스라엘은 그대로 가나안에 두셨다. 특히 엘리와 그 아들들이 죽으면서 사무엘이 사사가 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있는 동안 온 백성들은 여호와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다시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다시 열어 주셨다. 사무엘이 종교 지도자가 된 후에 그는 이스라엘 온 족속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면 "여호와께서 블레셋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주실 것이라"고 선포했다(3).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게 되었다(4).

 

  어느 날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족속을 미스바로 모이도록 지시했다. 사무엘은 그 곳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선포했다(5). 이 지시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스바에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금식하면서 여호와께 자신들이 지은 죄를 회개했다(6). 그러나 이때에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미스바로 올라왔다(7). 블레셋 군사들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하여 사무엘에게 쉬지 말고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여, 그들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다(8). 이에 사무엘은 젖먹은 어린 양을 취해 온전한 번제를 드렸다. 사무엘이 온전한 번제를 드린 후에 이스라엘을 위해 여호와께 기도를 했으며, 여호와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9).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접근해 왔다. 그리고 그 때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블레셋 군사를 치고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이 날에 미스바에서부터 벧갈까지 블레셋 군사들을 공격하였다(10-11). 그리고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운 후에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선포했다. 이로 인해 이 고시 이름은 "에벤에셀"(도움의 돌)이 되었다(12).

 

  이 후로 블레셋 군사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영토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동안에 블레셋의 침입을 막아 주셨다(13).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에그론부터 가드까지의 영토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14). 그리고 이스라엘은 반목했던 아모리 사람들과도 다시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사무엘은 살아 있는 날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그들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는 해마다 벧엘과, 길갈, 그리고 미스바를 순화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리고 그는 이 일을 마친 후에 다시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왔다. 사무엘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으며, 그 곳을 다스렸다. 사무엘은 라마를 본거지로 하여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며 교육을 실시했고,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15-17).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훌륭하게 인도했으며, 그들을 올바르게 교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