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7과 사무엘상(1): 엘리와 사무엘 (1-7장) 9

好學 2012. 2. 12. 22:12

 제57과 사무엘상(1): 엘리와 사무엘 (1-7장) 9


 

 * 돌아온 언약궤(6:1-7:2)

  이렇게 해서 여호와의 궤는 블레셋 지방에서 7달을 지내게 되었다(1). 여기에서 "지방"(사데)이라는 말은 '들', '밭'을 의미한다. 아마도 당시에 블레셋 사람들은 저주를 두려워해서 언약궤를 사람이 살지 않은 빈들에 보관했던 것 같다. 성경에서 숫자 '일곱'이 '완전함'을 상징하는 점을 생각하면 "일곱 달"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시간이 되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더 이상 언약궤를 방치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사장들과 복술 자들을 불러서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방법에 대해서 질문했다(2).

 

여기에서 "제사장들"은 다곤의 의식을 집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복술자'(코세밈)는 작은 나무 가지들을 흔들다가 그것이 나뉘어져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점을 치던 자들이었다(민 23:23; 신 18:10). 블레셋 방백들의 재앙을 받지 않고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돌려보낼 때에 그대로 보내지 말고,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에 대한 일정한 배상을 지불하고 언약궤를 돌려보내야 병도 낫고, 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린 이유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3).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실수로 타인의 소유물이나 사람을 취한 경우에 잘못 취한 물건이나 사람을 돌려보내면서 실수에 따른 보상금을 지불하는 풍습이 있었다(Klein).

그들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님께 무언가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속건제'는 실수로 인해 하나님의 물건이나 사람의 물건을 범했을 때에 드리던 보상제사이다. 여기에 사용된 속건제는 '배상'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블레셋 술사들은 이러한 배상을 통해서 당시에 전염된 독종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블레셋 술사들은 자신들이 여호와께 배상을 드린 후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춰지면,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이러한 재앙이 내려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치 지도바들은 제사장들에게 무엇으로 손건제물을 삼아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제사장들은 블레셋 지도자의 숫자와, 재앙을 내린 상태를 따라서 5개의 금 독종과 금 쥐로 손곤제물을 삼으라고 조언했다(4). 블레셋은 다섯 개의 주요 도시 국가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도시는 자체의 지도자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금 독종'은 여호와의  궤로 인해 블레셋에 임한 독종의 모양을 금으로 만든 것이고, '금 쥐'는 독종을 전염시킨 쥐를 금으로 만든 것이다.  

블레셋 술사들의 이러한 처방은 당시 이방 문화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고대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 어떤 소망을 빌거나, 감사를 드릴 때에 그 내용을 형상화하여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예를 들어 질병의 치료받기 원하는 자는 그 질병이 걸린 모습을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 신에게 드렸고, 난파선에서 구출된 자가 자신의 옷을 신전에 바쳤으며, 해방된 노예는 쇠고랑을  신전에 바쳤고, 승리한 검투사는 자신의  검을  신에게  바치는 경우가 있었다. 블레셋 복술자들은 이전에 애굽의 예를 들어 이 일을 속히 실행할 것을 권고했다. 그들은 이전에 애굽 왕 바로가 끝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다가 10대 재앙으로 완전히 멸망한 일을 지도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5-6).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여호와를 알지 못하던 블레셋 사람들 앛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블레셋 복술자들은 지도자들에게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젖이 나는 소 둘을 데려다가 그 수레를 끌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궤를 그 수레에 싣고 속건제물은 상자에 담아 언약궤 곁에 두라고 했다. 블레셋 복술 자들은 이때에 만일 그 소가 이끄는 수레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로 가면, 재앙을 내린 것이 여호와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그 소들이 그 수레를 벧세메스로 이끌고 가지 않으면 그들에게내린 재앙이 우연히 일어난 것임을 증거할 것이라고 충고했다(7-10). 여기에서 '새 수레'는 한 번도 세속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 적이 없는 수레를 가리킨다.

 

이러한 수레는 새로 만들어야만 구할 수 있었다. 또한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소도 세속적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은 소를 가리킨다(민 19:2). 젖 나는 소 는 새끼가 딸린 암소를 가리킨다. 그러면 블레셋 복술 자들은 왜 법궤를 운반할 짐승으로 이러한 암소를 택하라고 권고했는가? 블레셋 제사장들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자기에게 내려진 재앙이 정말로 여호와로 인해 온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레의 진행 방향을 보고 그 재앙의 근원을 확인하려고 했다. 새끼가 딸린 암소는 그대로 두면 당연히 벧세메스로 가지 않고 자기 새끼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암소가 새끼를 두고 벧세베스로 간다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블레셋 복술자들은 새끼가 있어 젖을 물리는 암소를 법궤 운반용으로 택하도록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