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6과 룻기(4): 룻과 다윗(4장) 5

好學 2012. 1. 25. 20:40

제56과 룻기(4): 룻과 다윗(4장) 5

 


증인들
사사시대에도 "여호와께서"(11,12절)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대일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남겨 놓으셨다. 그래서 말인데 "믿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 방학했다.", 더 나아가 "교회 졸업했다."고 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핑계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 가서 섰는데 그게 통할 리가 없다. 아무리 영적 암흑기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일지라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하고 깨닫도록 하신다. 한 사람 건강한 보아스를 통해 베들레헴 사람들은 하나님 신앙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한 사람이 바르게 서면 한 시대를 축복할 수 있다.

이어지는 증인들의 '축복송'은 참 아름답다.  보아스의 솔로(solo)를 이어 받아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의 코러스(chorus)로 화답하는 본문의 축제마당을 상상해 보라.  인생은 이처럼 아름답다.  아니, 이렇게 인생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은 참 아릅답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살아가던 시대에, 바로 앞에서 보았듯이 우선권이 있었던 그 기업 무를 자 역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어두운 시대에 찬란하게 빛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것이 축복이다.   

(1) "우리가 증인입니다!"(9,10,11절)

줄을 잘 서십시오!  남을 못살게 하고, 상대방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만들고, 한 사람을 패가망신(敗家亡身)하게 만드는 쪽에 손을 드는 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이 아니다.  짧은 세상을 살아가는 나그네 인생이 아닌가!  인생을 마이너스로 살지 말고 플러스로 살자!  남은 우리 인생 행로를 이처럼 넉넉하게 살아가기 바란다.  축복하는 반열에 서라.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박수 쳐주며 살자.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지켜보는 그런 사람이 되자.  "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더니 복 받았습니다"라고 간증하며 살자.

(2) 축복송(11-12절)

베들레헴 사람들은 라헬과 레아, 그리고 다말을 다시 기억할 정도로 영적으로 회복되었다. 한 사람이 바르게 살면 그 시대가 바르게 살게 된다는 것은 진리이다.  마음껏 축복한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축복하며 살자.
  룻이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한 가문을 세우기를!
  보아스 당신도 유력하고 유명하게 되기를!
  룻이 다말처럼 쓰임 받기를!

(3) 사람은 입술의 열매대로 된다.

이것을 가리켜서 '신기한 법칙'이라 말하고 싶다.  놀랍다.  그래서 주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입으로 나오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하셨다(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비운의 가수들은 한결같이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노래를 불렸다.  "간다, 간다" 부르던 김정호는 그렇게 갔구요, -내가 영생 얻기 이전이라면 한번 불러볼텐데(?)-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던 가수 역시 어느 날 그렇게 갔다.  "인생은 나그네 길", 여기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고 노래했던 그 역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밝고, 긍정적이고, 박수 치면서 흥겹게 부르는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은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다.

링컨(A. Lincoln)은 "자기 나이 40이 되면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심성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대략 알 수 있다.

수 십 년 고행 끝에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라는 유명한 법어(法語)를 남겼으며, 8년동안 드러눕지 않고 장자불와(長坐不臥)의 초인적 극기수행을 함으로써 성불(成佛)의 경지에 이르렀다던 성철(性撤, 1912-1993)이라는 분 여러분 다 아시죠?  그런데 그 양반이 {여원}(1987.  월호)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는 그가 조계종 종정으로 있을 때인 1987년 '석탄일' 법어인데 제목 하여 "사탄이여 오소서!"이다.  으시시 하죠?  읽어 보겠다.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 부처님입니다

그가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열반송(涅槃頌)은 불교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볼 때 그토록 처절하게 몸부림쳤을지라도 구원의 진리를 한 획이라도 깨닫지 못했다.  그의 열반송을 들어보자.

  열반송(涅槃頌)
  生平欺 (생평기광) 男女群(남녀군) - 한평생 남녀 무리를 속여 미치게 하였으니
  彌天罪業(미천죄업) 過修彌(과수미) -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산보다 더 크다
  活焰阿鼻(활염아비) 恨萬端(한만단) - 산채로 불의 아비지옥으로 떨어지니 한이 만갈래나 된다
  一輪吐紅(일륜토홍) 掛碧山(괘벽산) - 한 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부스러기 묵상
축복하며 살라하네!
한 사람이 바르게 서면 한 민족을 축복할 수 있다.  이것이 룻기가 보여주는 우리네 인생을 향한 영적 교훈이다.  우리는 자칫 룻기를 효성 지극한 효녀 룻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효도했더니 복 받았더라는 식으로 정리하고 끝내 버릴 가능성이 많다.  물론 룻이 축복의 반열에 선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극진히 섬기고 효도했던 것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룻이 룻된 것은 꼭 효도 때문만은 아니다.  이렇게 성경을 풀면 성경이 매우 가난해진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을 한 지붕 안에 묶어 주심으로써 영적으로 곤고한 사사시대를 살아가는 인생들로 하여금 서로 믿음으로 격려하고, 축복하며, 소망 가운데 내일을 바라보도록 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시대가 아무리 어둡고 혼돈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당신의 눈을 돌리신다.  그리고 그들을 주목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 어떻게 당신의 신실하신 역사를 계속 이어가시는가를 목도하도록 하신다.  

마침내 참담했던 1막의 분위기는 2-3막을 지나면서 반전(反轉)을 시도하더니 마지막 4막에 와서 완전히 바뀌고 만다.  어둡고 칙칙한, 실패와 좌절의 사람 이야기로 막을 열더니 감사와 축복으로 역전되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반전되었다.  하나님이 부재중이시던 1장은 그랬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시도록 그분께 겸손히 왕좌를 내어드린 4장은 희망과 새생명으로 뻗어나가는 새순의 싹을 보게된다.  

이제 우리는 보아스가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한 약속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다.  과연 하나님은 보아스와 룻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가?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