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6과 룻기(4): 룻과 다윗(4장) 4

好學 2012. 1. 25. 20:39

제56과 룻기(4): 룻과 다윗(4장) 4

 

2. 축복하며 살라하네!(룻 4:7-12)

세 종류의 사람들

본문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보아스보다 더 우선 순위가 있었던 기업 무를 자 -그의 이름은 '아무개'다-, 보아스, 그리고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로 구성된 증인들이다.  보아스와 아무개의 이중창은 처음부터 화음이 맞을 수가 없었다.  결국 누가 되든 솔로(solo)일 수 밖에 없었고, 둘 중 한 사람으로 결정되게 된다.  성문을 무대로 한 4막 2장은 마침내 모든 백성들의 축복송이 합창으로 이어지면서 룻 드라마는 절정(climax)을 향해 이룩하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 지난 시간에 살펴본 그 기업 무를 자 '아무여'씨는 무대에서 퇴장한다(7-8절).  그것을 위해 까마득한 '옛적 전례' 의식을 기억해낸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7절)

'옛적'(7절)이라는 단어로 보아 이 진통은 아마 룻 시대에는 그야말로 사라진 옛 관습에 불과했는 것같다.  그러니까 그는 살아있는 율법의 특권을 이미 사문화(死文化)된 전통으로 대치시킨 셈이다.  율법은 전통만큼도 되지 못하는 사람으로 무대를 내려온다.  마침내 축복의 기회를 포기한다.  사실 그는 연구 대상이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사람이요, 상식적인 사람이다.  그를 나쁘다고 탓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그는 신앙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나오미, 특별히 룻에게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통찰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쩌면 그의 합리성이 방해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자기 관점에서 평면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였으며, 그래서 룻을 통하여 주어질 축복의 씨너지를 몽땅 보아스에게 넘겨주고 만다.  넝쿨 채 들어온 '룻 호박'을 발로 차 버린다.

  "나는 내 기업에 손해(損害)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權利)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6절)

이 짧은 6절에 '나'라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사람,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에게는 현재의 룻 밖에 보이지 않은 셈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당장 눈 앞의 결과만을 생각한다.  멀리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읽어내지 못한다.  언제나 과거와 오늘에 얽매여 살아간다.  철저히 예측 가능한 일들만을 따라간다.  이러한 판단과 결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신이 서 있기 때문에 더 멀리, 더 깊이, 더 높이, 더 크게, 더 많이, 더 위대하게 보지 못한다.  


보아스
보아스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 해야 할 일을 분별할 줄 알았다.  그는 '아무여'씨의 입을 주목했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도 없다.  더더욱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그였던지라 하나님보다 앞설 수 없는 일이었다. 보아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 긴장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가 입술로 말한 6절에서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8절에서 그가 증인들 앞에서 행동으로 최종적인 결단을 끝내기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8절)

그는 성급하게 열매를 따려고 아직 설익은 과일을 탐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성숙해 있었고, 일이 마쳐지기 전까지는 행동하지 않는 책임있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8절로 제1순위 기업 무를 자는 축복의 반열에서 완전히 퇴장한다.

이때가 행동할 때이다. 보아스는 서서히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룻 프로젝트'(Ruth project)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 날이 오기까지 그는 무수한 시간들을 인내했다. 그렇다. 좋은 것을 얻으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소중한 것 일수록 쉽게 처리해서는 안된다. 경솔하게 행동했다가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보다 앞서다가는 될 일도 그만 꼬이고 만다. 이런 경우는 우리 인생살이에서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보아스가 10명의 증인으로 채택된 장로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베들레헴 선언'을 한다.  이 선언은 크게 둘로 되어 있다(9-10절). 그것은 기업 무를 자가 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룻과의 혼인을 청첩하는 결혼 기자회견으로 되어있다. 엘리멜렉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살 것이다(9절). 모압 여인 룻은 자신의 아내가 되어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