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6과 룻기(4): 룻과 다윗(4장) 7

好學 2012. 1. 28. 23:00

제56과 룻기(4): 룻과 다윗(4장) 7



전혀 새로운 스타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 끝난 인생이 아니라 시작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그렇게 사라져버린 잡초들이 아니다.  1년생, 혹은 하루살이 인생이 아니라 오고오는 세대에 영롱하게 빛나는 한 알의 밀알들이다.  그들은 여느 사람들처럼 다 죽었으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고, 오늘보다 더 확실한 미래를 개척해 내는 한줄기 빛이었다.  이들의 족보는 이처럼 살아 있다.  생명이 있다.  죽었으나, 그러나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하여 다윗으로, 또한 그리스도에게로까지 이어지는 축복의 연결 고리들로 쓰임 받았다.  오늘 본문에 이처럼 쓰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다말, 라합, 룻이다.  

(1) 다말 :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고 …"(18a, 마1:3a)

야곱의 손자이며 유다의 맏아들인 엘의 아내 다말은 계대결혼법의 우여골절을 따라 시아버지 유다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형제인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된다(창38:1- ).  그녀는 가나안 여인으로 추정되지만 메시야의 족보에 오르는 것 이외에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  

(2) 라합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21a, 마1:5a)

여호수아 2장에 나오는 여리고 정탐 때 그곳에서 기생으로 살아가던 여인이다(수2:1- ).  그녀 역시 '믿음'으로(히11:31)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을 받았으며, 유다 자손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고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게 된다.  그녀는 자신 뿐만 아니라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수2:13)와 함께 약속의 계보에 참여하게 되는 축복을 받는다.

(3) 룻 :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21b, 마1:5b)

모압 여인이었지만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은총을 받고 메시야의 계보에 당당히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룻기를 산책하면서 깨닫게 된 묵상의 부스러기들이다.

(4) 이들은 다 한결같이 이방인들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다들 초신자들이다.  또한 제1대 신앙의 사람들이다.  먼저 믿은 우리로서는 나중 된 자로 먼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긴장으로 수납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역시 그럴 수 있다.  자칫 정신 차리지 못하면 그럴 수 있다.  주님은 언제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날마다 영적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결국 영적으로도 도태(淘汰)될 수 있다.  잠히 위에서 살펴 보았던 사람들처럼, 아니 룻기에 등장하는 '그 기업 무를 자, 아무요'씨처럼 말이다.


부스러기 묵상
당신의 족보는 건강한가?
당신으로 끝나 버리는 족보인가?  즉, 당신이 최고의 정점(정상)에 선 족보인가?  그리하여 당신 이후에는 서서히 내리막 길에 들어서는 몰락해 가는 족보인가?  아니면, 마치 다말과 라합과 룻처럼 새롭게 시작되는 축복의 밀알인가?

  유다와 살몬과 보아스처럼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복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세속적인 입장에서,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런 계산되는 방식으로 살아서는 이러한 역사를 이룰 수 없다.  이것이 룻기가 주는 거대한 영적 교훈이다. 이 사람들처럼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들처럼 영적 안목과 깊이가 있어야 한다.
나보다 자식들의 대(代)에 더 소망이 있는 족보여야 한다.  다음 대에서 더욱 빛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축복된 족보를 만들어 갑시다.  이것이 룻기 앞에 서 있는 우리가 깨닫는 하나님의 복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떤 믿음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  내가 축복의 정상이 아니라, 그것의 시작이 되는 대가를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나를 한 알의 밀알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죽어짐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이를 위해 아낌 없이 희생하고, 기도하고, 인내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개인과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게 된다.

당신은, 여러분의 자녀들은 지금이 더 좋은 영적 족보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래보다는 당장 지금이 좋은 편을 택하고 만다.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배짱이처럼 말이다.  부모보다 자녀의 신앙이 더 좋은 가정(家庭)이 소망이 있다.  "부모는 그럴듯한데 자녀는 영 아니다"라면 그것은 아주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크게 회개해야 한다.  정신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대에서 아주 끝나 버리는 족보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족보를 물려 줄 가정들은 정신차려야 한다.

  교회도 지금이 5년 후보다 더 좋은 것은 진정한 의미의 축복일 수 없다.  

물론 지금도 좋고, 미래도 좋아야 한다.  우리 교회 역시 과거나 지금'만' 좋으면 안된다.  그러면 아무 소망이 없다.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더 좋은 시절이 될 때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신앙은 오늘만 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 미래보다 더 좋은 교회는 소망이 없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다.  일개 가정도 자녀들을 위해서는 가장 좋은 책상, 의자, 책들, 에어컨 등등을 기본적으로 갖춘다.  그러므로 교회도 역시 교육관 시설은 아주 기본이고, 교사들의 영성 훈련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자녀들을 위해서는 최고의 시설과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또한 않았으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다면 그는 회개해야 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이 부분이다.  심방을 해 보면 자녀 공부방은 으리으리하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교회 교육관에 가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 -저는 신앙의 가책이라고 하지 않았다- 도 느끼지 않는 것같다.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이 사실을 믿으라.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존재로서 살아가야 한다.  분명 베레스의 가문은 갈수록 더 좋은 가문이다.  베레스에서 보아스로, 보아스에서 다윗으로, 다윗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는 메시야의 가문을 우리는 주목한다.  분명히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복된 가문이 아닌가.  

당신의 가계에 흐르는 영적 기상도를 분별하라.  혹시 여러분이 가문의 제1대 믿음의 계보인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조상들의 죄와 완전히 단절하고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영원한 생명의 밀알이 되라.  룻처럼, 나오미처럼, 보아스처럼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 한 사랑의 사람이 되라.  

우리 남서울교회가 20세기에 세워진 가장 복된 교회임을 믿는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시작된 새시대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복된 교회로의 영적 유산을 이어가는 교회를 향한 꿈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기를 기도하자.

                                     

- 룻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