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과 룻기(4): 룻과 다윗(4장) 3 |
인생은 언제나 두 지평 안에서 살아간다.
이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양분된다.
세상은 언제나 자기처럼 살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해 보이도록 "보암직 하고, 먹음직 하고, 탐스러운" 것들로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보아스의 지평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이것이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두 지평은 공존한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복을 1순위로 받을 수 있었던 '그 기업 무를 자'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눈으로 보고, 또한 생각해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선택한 수준이다. 당장은 좋아 보였으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몰랐다. 그는 처음되었으나 나중 된 사람이다.
한편 보아스는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미래가 좋은 편을 선택하였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처럼, 말씀을 듣고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던 베드로처럼,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갔던 바울처럼, 오늘보다는 내일을, 내일보다는 영원한 미래를 보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편을 선택할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개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에 속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 사람은 축복을 피해 다닌다. 영적으로 눈먼 소경이다. 믿음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이 시간에도 보아스처럼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준행하는 사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갈망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그리고 내 안에서, 우리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지기를 위해 말씀의 지평 앞에 엎드리는 사람,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가는 사람,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있다.
룻 앞에 두 사람이 서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다. 제4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아무여의 후예인가, 아니면 보아스의 후예인가? 당신의 선택은 믿을 만 한 것인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 할 수 있는가? 거룩한 것을 택하라. 손해보는 일이라도 말씀이 명하는 것이라면 웃으면서 따르라.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아니라 이왕이면 말씀대로여야 한다.
부스러기 묵상
언젠가 삼성의료원 심방을 가려고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 그만 농협하나로&성남 이정표를 지나쳐 버린 적이 있다. 순간 이거 대전까지 가야 하나 싶으니까 등에 땀이 났다.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분당 톨게이트로 들어가면서 통행료 내고,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고속도로 진입하면서 통행료 내고, 그리고 20여분 늦게 삼성의료원 심방을 간 적이 있다. 이런 경우는 잠시 늦어지거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 선택하고 결정한 문제 때문에 발생한 인생에 대해서는 AS가 불가능하다. 인생은 AS를 할 수 있는 전자제품이 아니다.
하나님을 따르라. 말씀을 따르라. 이것이 가장 확실하다. 아무여와 보아스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라. 교회와 철학관 사이에서 무뭇거리지 말라. 주일성수와 들판에 계신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라. 말씀과 내가복음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라.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라.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라. 성령님과 사이비 영성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나님만이 희망이다. 복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살 길이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삼상7:3)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아직 당신의 인생행로는 선택해야 할 무수한 문제들로 가득차 있다. 아직 당신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하나님의 길고 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선택했는가? 이 시간에 대면해야 할 하나님의 질문이다. 두 지평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다음 시간에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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