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인천]역사이야기

[인천이야기] 도호부청사 복원 ‘유감’

好學 2012. 1. 24. 00:59

[인천이야기] 도호부청사 복원 ‘유감’

 

 

“다음날 아침, 시끄러운 기계 소리에 잠을 깬 나는 부랴부랴 갑판으로 올라갔고, 제물포만의 경탄할 만한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평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행가 ‘샤를르 바라’는 1888년 제물포를 보고 그 첫인상을 이렇게 적고있다. 그는 또 “조선의 이 커다란 마을은 길 하나와 몇 개의 좁은 골목들로 얼기설기 짜여져 있다.”고 전하고 특히 인천감리서의 사진과 함께 “그 곳을 관할하는 널찍한 관아는 끝이 약간 올라간 큰 지붕을 이고 있었는데, 중국과는 눈에 띄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며 예리한 관찰력으로 당시 건축물의 양식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에 의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막연히 추측했던 인천감리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최근 인천광역시가 오늘의 시청에 해당하는 ‘인천도호부 청사의 복원을 마쳤다고 한다.

과연 옛 인천도호부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복원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천도호부의 전모를 밝혀줄 역사 자료가 발굴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차에 인천광역시는 신축 청사의 안내판을 통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되어 있는 ‘화도진도를 근거로 복원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복원이란 말뜻이 ‘원래대로 회복함’ 일진대, 이를 어찌 ‘복원’이라 할 수 있을까 적이 의문이다.

여기서 새겨 둘 것은, 화도진은 소규모의 군영이었지 감영이 아니었으며, 건립 연대도 최근세인 1879년(고종16년)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인천도호부 는 이미 1400년대에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번 복원이 사리에 크게 어긋나 있음을 일게 된다. 더구나 옛 인천도호부의 동헌과 객사의 일부가 인근 문학초등학교 교정에 엄연히 현존해 있음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다. 제 나라 역사를 제대로 읽고, 기록을 왜곡하지 않으며, 그를 고스란히 후세에 전할 줄 아는 국가가 진정한 선진국일 터이다.

물론 이번 청사 ‘복원’이 시민들에게는 내 고장의 정체성을 심어 주고 월드 컵 손님들에게는 인천의 전통 문화를 알린다는 뜻에서 이루어진 것이겠으나 의욕이 앞선 나머지 그 본연의 건립 취지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아무리 급해도 ‘역사’를 ‘창작’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