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신학자들] 생애

뒤르케임의 생애와 사상

好學 2012. 1. 21. 06:25


 

뒤르케임의 생애와 사상

 

목 차

들어가는 말 

1. 생애와 지적 배경

2. 뒤르케임의 저작

3. 사회분업론

4. 사회학적 법의 규칙들

5. 자살론

6. 종교와 지식 : 종교 생활의 초보 형태들

7. 정치

8. 교육

9. 나오는 말

 

들어가는 말

뒤르케임은 프랑스사회 특유의 사회적 역사적 역동성과 서구 전역을 휩싸는 변동의 급류인 산업화라는 두가지 변동물결에 따른 사회 현상 들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의 필생의 목표는 사회의 통합에 있었는데 거기에 더하여 사회학의 밑바탕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도덕성에 관한 문제를 포착하고 이를 특징적으로 부각시켰다. 뒤르케임이 활동하던 시대의 상황은 이렇다. 꽁트의 사회학이 뒤르케임의 시대까지 엉거주춤한 상태로 남아있었는데 그 이유는 꽁트의 사회학은 19세기 후기가지도 안정을 찾지 못했던 프랑스의 정치세력들 이 안정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789년의 대혁명에 뒤이어 백 년 동안 프랑스 사회는 혁명에서 독재로, 다시 혁명으로 되돌아가는 폭 력적인 요동의 반복이라는 끊임없는 위험에 처해있는 듯했다. 그것은 그 불확실성으로 인한 실패감, 다시 말해서 보불전쟁에서 프랑스의 비 참한 패배감을 심화시겼던 하나의 외부적인 자극제였다. 그러한 경험들을 한 후에 프랑스에서는 과학과 세속적인 공화원칙들에 터해서 근 대화에 전념했던 세력들이 패권을 잡았고 또 꾸준히 부상했다. 오로 지 그 기반 위에서만 프랑스가 강대해질 수 있으며 독일과 경쟁하기 위하여 힘을 합칠수 있다고들 생각했다.

그의 사상을 살피기 전에 몇가지 전제해야할 것이 있다. 그는 정치 적으로 현재의 여러 판단들과 쉽게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적 으로는 그는 어느 한 개인이 학문적인 분야로서 사회학의 발전에 이바 지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는 어느 하나도 일방적인 주장으로 강요한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입증을 해 주는 증거를 가진 하나의 사회학적 가설로 표현했다.

이제는 그의 저작을 중심으로 그 속에 나타난 뒤르케임의 사상을 알 아보기로 하자. 
 

1. 생애와 지적 배경

 

마르크스나 베버와는 달리 뒤르케임은 사실상 사회학을 대학 세계안 으로 수용해서 존경받는

학문분야로 발전시키는 사명을 자신의 직업이 라고 정의했으며,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직업상의 역할에 빈틈이 없이 맞추어 행동했다.

고등사범학교의 시절에 뒤르케임에게 영향을 준 스승은 에밀 부뜨루 인데 그의 지도 밑에서

그는 꽁트의 사회학을 배웠다. 철학자 르누비에에게서 뒤르케임을 매료시켯던 착상들은 르누

비에의 엄격한 합리주 의, 도덕성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관심과 도덕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필요성, 칸트의 관념들을 소위 그가 비판이라고 불렀던 것으로의 변 환, 곧 물질 세계의 결정

론과 인간의 자유와 도덕성의 개념들을 조화 시키려는 시도등이었다. 그리하여 르누비에는 개

인의 존엄성과 자율 에 대한 관심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개인의 일테감과 의존심에 터한 사회 결속 이론과 통합했다.

이 철학적인 영향 외에도 뒤르케임은 가브리엘 모노와 푸스텔 드 꼴 량쥬의 모범을 본받았다.

그들의 엄정한 역사적 방법들은 뒤르케임에 게 커다란 감명을 주었으며 이것은 사회학에서는

실증되지 않은 허울 뿐인 일반화라는 평판을 반드시 떨쳐내버려야 한다는 자기나름의 견해 에

반영되었다. 꼴랑쥬는 사건의 역사와 제도의 역사를 구분했으며 뒤르케임은 이 후자를 사회

학의 핵심 요소로 발전시키려했으며 이를 정의하기를 제도의 과학, 곧 제도의 기원과 기능이라고 했다.

뒤르케임은 독일을 방문하던 시절에 이미 사회 구조적 분석 방법을 정립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빌헬름 분트의 <윤리학>에 대한 그 의 주해에서 이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독일의

도덕과학에 관한 논문 의 거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분트의 접근은 도덕적 현상들을 사회

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그 도덕적 현상들을 사회적 존재의 사실들로 곧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사실들로 다루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도덕 사회학을 발전시키겠다는 목적은 뒤르케임의 전생

애동안 내내 그를 따 라다닌 것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죽기 바로 전해에 그 주제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

뒤르케임은 정치적 사건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드레퓌스 사건 때에 뒤르케임은 그 반유태주

의의 쟁점을 단순히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도 덕성의 문제로 규정했다. 뒤르케임은 공리주의

의 개인주의와 자유경 제학의 개인주의를 구분했다. 전자는 이기주의로 묘사되나 개별인간

을 하나의 신성하 목적으로 삼는 이상들로서의 개인주의는 후자이다.

그는 현대사회는 바로 그러한 종교난 집합의식을 필오로 한다고 주장 햇다. 그는 그 다음에

이 현대적 형태으이 개인주의에 정치적 충성을 표현하는 본인의 성명서를 덧붙였으며 그런 개

인주의는 자유주의를 지 나서 이제는 사회주의로 나아가고 있었다.

 

2. 뒤르케임의 저작

뒤르케임의 저작에 접근하는 방법의 하나는 전기-문헌 목록 접근법 이다. 이것은 뒤르케임

의 저작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몇몇 책들을 연대순으로 늘어놓는 것으로 대체로 <사회분업

론>,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 <자살론>, <종교생활의 초보 형태들>이 있다.

뒤르케임은 기능에 대해 많은 언급을 했는데, 그 중 하나는 "분업의 기능, 즉 분업이 충족시

켜주는 사회적 필요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한 <분업론>을 시작으로 해서, 종교

와 그 구성 요소들-제 식, 의식, 상징-각각이 사회에서 행하는 통합적인 기능을 시범으로 보 인

<종교생활의 초보 형태들>로 끝을 맺고 있다. 그는 사회학의 목적 을 언제나 도덕과학의 토

대 위에 놓고 싶어 했는데 사회학과 같은 학 문 분야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점점 더 정교하

고 특수한 정의들과 가설들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과학적 진보가 계속 이루어 진다는 것이 다.

뒤르케임이 반대했던 것은 사회분석에서 방법론적 개인주의였다.

사회학은 공리주의 철학에서처럼 개인을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은 이론 에 터할 수 없었다.

이것은 실재하지 않았던 전사회적 개인이었다.

그 개인은 사회에 의해 침해되었다. 곧 사회화되었다. 그는 관념론 적 전체주의라는 대조적인

사상적 전통에도 역시 반대했다. 그 사상 은 근본적으로 보수 지향적이었으며 개인과 사회 간

의 관계를 소우주 와 건체 우주의 관계로 보았다. 한편, 허버트 스펜서는 산업사회는 기능의

전문화를 가져왔으며, 그리고 이 점에서 사회는 개별적인 차이 들과 개개인들의 더 큰 자율성

을 가꾸고 북돋우어주어야 한다고 확신 했다. 곧 추상적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의존했다는 그의 신념에 있었다.

뒤르케임의 직무는 사회학을 하나의 독자적인 연구 주제를 가진 학 문으로 확립하는 것이었

으며 사회현상들은 그들 나름의 독특한 실재를 가졌다는 것과 또한 그 현상들은 엄격하고 객관

적인 연구방법에 의해 분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그 다음의 직무는 총체적 사회 현상

의 본질과 이를 관장하는 일반 원칙들을 밝히기 위하여 이 결과들을 통합하는 것이었으리라.

인간 행동을 구조화하는 것은 비인격적인 숨겨진 힘들이다. 뒤르케 임은 구조화하는 원칙들

과 과정들을 찾아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의 사회학에 결코 놓칠수 없을 정도로

뚜렷하게 보이는 구조 주의적 성격을 부여했으며, 그 성격은 그의 사회학의 가장 독특한 특 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사회학적 분석을 위한 뒤르케임의 첫째 규칙은 "사회적 사실들을 사 물들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인간 행위에 관한 모든 설명들을 개인 심리학이나 생물학 수준으로 떨어뜨리려는

기세등등한 추세에 대 항해서 싸워야 했으며 그래서 사회적 사실들을 강조해야 했다. 둘째 로,

그는 사회적 사실들은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인식되어야한다고 주 장함으로써, 사회학자가 과학

자다운 초연한 자세를 취하고 또 모든 사 회현상을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도록 설득하려고 했

다. 사회적 사실의 특징은 외면성, 강제성, 일반성이다. 사회적 사실은 어느 개인에게든 지 그

외부에 또는 어느 개인의 마음에든지 그 외부에 존재했다. 사 회적 사실은 개인에 대해 수많

은 방식으로 강제력을 행사했다. 이 두 가지 양식의 강제의 하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부과된 강제이며, 다른 하나는 당연히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확정된 생각에 따라서 선택 하도록

하는 압력이다. 형태적 요인들은 대체로 물질적 자원의 형태 와 분배를 통해서 첫째 유형의

강제를 행사한다. 제도들과 집합적 표 상들은 이를테면 가치, 신념, 여론의 흐름은 두번째 유형의 강제의 본 보기들이다.

집합의식 또는 공동의식은 "그나름의 독자적인 생활을 지닌 하나의 확정된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동일사회의 일반 시민들에게 공통적인 신념들과 정서의 총체"로 정의되었다. 집합의식은

점차 한결 더 선별 적인 개념인 집합적 표상들로 대체되었다. 뒤르케임이 이것에 관해 제시

하는 보기는 토템신앙과 씨족조직간의 일치성이다. 더 나아가서 만약 씨족이 더 높은 신들을

믿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더 상위 수준의 사회조직, 이를테면 부족에 합세하는 것과 같다.

뒤르케임은 "제도"라는 개념으로 규범적이 된 신념들과 관례들을 이 해했으며 되풀이되거나

계속적인 사회적 관심에 촛점을 맞춘 신념들과 관례들을 이해했다. 제도들이란 단순히 존재의

우연성들을 다루는 개 인들이 꾸며낸 합리적인 설비들로서 설명될 수 없다. 제도들이란 개 개

인들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또는 본연의 성품을 표현하도록 해주기 위해 생겨났다.

어던 관례들이 제도화될 것인지의 가장 그럴 듯한 선별 결정인자는 적합성 여부의 요건, 곧 각

제도는 다른 제도들 과 어울려야 한다.

뒤르케임은 규범의 시행을 두개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규범의 구조 적 구성요소들인 긍정적

제재 또는 부정적 제재의 영향력, 그리고 규 범이 개인의 위에 있는 어떤 우월한 곳에서 나온

다는 착각을 가지도록 하는 이 집합적 표상들의 위세가 만들어낸 정당화 효력이다. 전자는 처

벌의 제재와 보상의 제재이고, 후자는 도덕성의 강제이다. 그는 또 한 성스러움과 세속스러움

을 구분했는데 현저하게 세속적인 활동조차 도 거룩한 영역과 일단 관계를 맺고 나면, 현대

사회에서까지도 어떤 경제적 규범들은 준수되었다. 홰냐하면 그 규범들은 성스러운 본성을 가

진 우월한 권위에 근거해서 예컨대 종교적인 기원을 가진 의무 윤리 와 직업윤리에 근거해서 이

데올로기상으로 정당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일정발전 단계에서 주어진 일정 사회유형과 관련시켜 보아 서 어떤 한 사회적 사실

이 그것과 상응하는 진화단계에 있는 보통의 인간 사회에 현존할 때에 그 사회적 사실은 정상

이다." 그래서 범죄 는 반드시 병리적인 것은 아니었다. 범죄가 병리적이라는 것은 상식 적

인 생각일수 있지만 어떤 범죄들이나 범죄율은 일정의 주어진 사회 유형에서는 오히려 전적으

로 정상적이었는가 하면, 다른 유형의 범죄 들과 범죄율은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뒤르케임의 주요 저작에 있는 사회적 사실들의 연구는 저마다 세 부 분으로 짜여져있다. 첫

째, 그는 연구주제를 정의하고, 둘째, 이 현상 에 대해 제시된 다양한 설명들을 소개하고, 그 다

음에 그는 이들 설명 들의 부적합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논지와 자료를 함께 묶어서 사용한 다.

 

3. 사회분업론

뒤르케임 저작의 모든 측면에서 문제들을 구성하는 것은 개인과 사 회사이의 관계들이다.

사회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개개의 부분 들과는 구별되면서도 개인들 형성하고 강압하는

사회적 힘들과 사회구 조들의 층으로 이루어진 실체의 사회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 개인은 한층 더 자율적이 되어가는 반면에 한층 더 사회에 의존하 는가? 어떻게 해서 개

인은 더욱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더욱 결속적일 수 있는가?" 그 대답은 분업의 꾸준한 증대로

인한 사회적 연대의 변 동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분업에는 두갈래의 발전이 있었다. 하나 는

유기체의 기능들이 전문화되면 전문화될수록 유기체는 더욱 더 발 달한다는 것을 보여준 생물

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개념의 범위가 확장 된 것이다. 이것은 다시 또 다른 발전으로 이끌었

는데 그것은 사회적 노동의 분업이 가진 도덕적 장점에 관한 논쟁이었다.

스펜서의 사회학은 19세기 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스펜서의 사상은 다윈의 진화론이

가진 위세와 과학적 생물학의 진보들에 의해, 그리고 개인의 노력 및 사적 소유권의 신성함 그

리고 소비자로서의 개 인을 강조하는 경쟁적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요구들에 의해 지지되 었

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이 원칙들은 국민적 단결과 진 보의 토대로는 부적합한

듯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펜서와 소위 멘체 스터학파에 속한 경제학자들의 자유방임 원칙들에

대한 가장 광범위하 게 논의된 대안은 국가가 사회적 연대를 창출해내며 사회발전을 지도 하도

록 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사회학적 입장에서 뒤르케임은 산업 사회는 직업구조 안에 실재

하는 유기적 연대의 토대를 보유한다고 주 장했으며, 그 유기적 연대는 자기 이익이나 국가에

의해 강제된 기계 적 연대보다 더 우월한 사회적 연대의 토대라고 했다. 그는 연대를 창출

해 내는 데 있어서 국가라는 조직 아래에 있는 여러 수준의 사회 조직들이 가진 역량을 강조

한다. 그의 사회학적 모델에는 그 모델의 가장 근본적인 수준, 즉 집합의식인 공유된 신념들과 감정들이 있었 다.

뒤르케임의 주요한 이론적 관심은 현대 사회학이 이른바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많이 포함

하고 있는 집합의식과 집합표상들이 기능하는 바와 그 내용에 있었다. 문화적 요인들이 사회

성의 토대를 마련해주 고 또 뒤르케임의 총체적 사회현상 모델에서 근본적인 수준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요인들은 우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분업론>에서 그가 변동

과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주목하는 것은 물질적 요인들이다. 이 책의 논지는 물질적, 도덕적

밀도의 증가에 따라 기 능적 전문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인구밀도의 증가와 그로

인한 사회적 상호교섭과 교환들의 증가를 뜻한다.

<사회분업론>의 가장 독창적인 사회학적 공헌은 아마 뒤르케임이 그 의 모델과 근접하는 사

회들의 지표들로서 법과 처벌을 사용한 것일 것 이다. 뒤르케임은 본래부터 범죄적인 행위라

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려 했다. 법과 형벌제도는 도덕과 여론의 흐름과 같은

현상들의 경험적 지표를 마련해준다. 억압적 법률은 종교적 규정을 어긴 위반 행위에 대해

가장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는 집합의식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

문이다. 억압적 법률의 또 한가지 특징은 제재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일일이 명시되어 있지만

도덕적 신념들이나 정당하다는 규정들은 자세히 열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처벌은 집합의식의 요소들을 재확인하는 의식되지 못한 기능을 수행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적 연대를 유지시킨다. 배상적 법률의 확 대와 억압적 법률의 축소는 노동분업의 증가의

지표였으며 사회적 연 대의 토대였다. 그러나 노동의 분업이 인위적이고 강요가 되면 그 결

과로 아노미가 광범하게 퍼지고 강요된 분업으로 인한 소외 현상이 일 어난다. 아노미 현상의

만연은 노동분업의 발전노선이 그것의 순리적 인 과정에서 벗어났음을 확증해 주었다. 현존하

는 산업자본주의 사회 들이 걷고있는 발전의 길은 비정상적이거나 별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홰냐한면 그 길은 유기적 연대를 발전시키는 길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 문이다. 노동의 분업이

진전된 사회에서 유기적 연대를 생성해내려면 기회의 평등이 필요하다. 개인들의 선천적인 능

력과 상관없는 불평등 들은 모든 계급들에 영향을 주는 노동의 강요된 분업으로 이끌었다.

노동의 아노미적 분업은 또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조정장치가 없을 때에는 언제나 계급들

사이의 갈등에서 특히 임금을 둘러싼 분쟁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이 아노미의 근원은 급격한

경제변동과 또한 그와 같은 상대적 박탈감의 조건에서 두드러진다.

뒤르케임은 자유에 터한 노동의 자생적인 분업이 나타나기 전에 외 재적 불평등들과 불공정

들을 제거해야한다고 분명히 했다. 뒤르케임 이 요즈음의 노동조직, 노동조합과 산업관계의 연

구들이 이바지한 가 장 중요한 기여는 사회정의, 윤리 및 가치들의 중대성에 대한 끈질긴 주

장이었다.

 

4.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

이 저작은 과학적인 사회학적 분석의 주의주장을 펴기 위한 선언서 이다. 뒤르케임은 그의

방법의 기초를 다음과 같이 발전시켰다:사회 적 사실들을 실재하는 사물들로 취급한다. 다른

사회적 사실들을 특 정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원인이었을 수 있는 그런 류의 사회적 사실들 에

관해 의문들을 제기한다. 그리고 제도와 같은 어떤 사회적 사실이 충족시켜주는 사회적 요구

(기능)가 무엇인지도 묻는 그런 방법의 기초 를 마련했다.

사회 유기체의 여러 다양한 층위들은 어느 한 생물학적 유기체의 내 부 환경처럼 어떤 기초적

인 암호에 의해 지배된다. 바로 이렇게 해서 사회의 내부 환경은 개인에 의해서도 역시 내면

화된다. 이 암호들 덕 분에 큭히 상징적인 암호들 덕분에 사회의 조직과 그것의 집합적 표상

들이 서로 상응하며 또 이것들은 개인의 의식에 반영된다. 이런 식으 로 사회는 계속적으로

그 자체를 재생산한다. 뒤르케임의 사회학의 연구 주제를 이루고 있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통합(연대)에 터한 바로 이 사회적 재생산이다.

사회 유형들을 분류하는 취지는 사회현상들 간의 관계에 관한 가설 들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회형태학은 사회 유형들 의 구성과 분류를 그 직무로 가진 사회학의 한

부분이다. <규칙들>에 서 가장 잘 알려진 진술은 사물로서의 사회적 사실들이다. "현상들을

사물로 취급하는 것은 그것들을 자료로 취급하는 것이며, 그리고 이것 들이 과학의 출발점을 형성한다."

또 뒤르케임이 이데올로기적 분석이라고 비판했던 것은 사물들의 연 구를 그 사물들에 대한

통상적인 선입견들과 관념들의 연구로 대체하 려는 경향이었다. 사회학적 방법론의 첫번째 소

극적 규칙은 선입견을 모두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규칙은 필수적인 것인데, 모 든

사회학적 연구의 연구주제는 어떤 외형상의 특징들에 의해 미리 정 의된 일단의 현상들로 이루

어져야 하며 그리고 그렇게 정의된 현상들 은 모두 이 집단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뒤르케임이 다음에 제시한 규칙은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이었는데 주

어진 일정 발전 단계에서 주어진 일정 사회유 형과 관련시켜 보아서, 어떤 한 사회적 사실이

그것과 상응하는 진화 단계에 있는 보통의 인간 사회에 현존할 때에 그 사회적 사실은 정상

이다. 보기를 들면, 모든 범죄를 일탈적이라거나 병리적이라고 판단 하는 대신에 범죄란 하나

의 정상적인 현상으로 모든 사회들에 존재한 다는 것을 견지하는 것이다.

뒤르케임의 견해에는 만약 사회학이 과학이 되려고 한다면 인과분석 은 사회학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또 뒤르케임의 방법론적 규칙들은 인과적 설명은 기능적 설명에 의해 보완

되어야 한다고 명확 하게 규정했다. 기능이라는 단어의 잇점은 그 상응이 의도적이거나 고

의적이었다고 반드시 함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여러 다양 한 인과적 기능적 관계들을

밝혀내기 위햐여 사회학은 비교-역사적 접 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사회학은 실험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간접실험 방법인 유사한 사례들의 비교에 의존해야 했다. 그에게 있 어 비

교-역사적 접근법은 사회학적 방법론의 핵심이었다.

<규칙들>에서 뒤르케임이 사용한 언어와 유추들은 이제 과학적인 방 법론과 인식론의 논술

들을 표현하기에는 좀 뒤떨어진 듯하며 적합치 않은 듯하다. 특히 생물학적-유기체론적 유추

는 많은 한계점들을 지 녔다. 생물현상과 사회현상 간의 생래적인 차이라는 이유에서와, 그

리고 그의 시대의 생물과학의 결함들이라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한계 점이 있었다.

5. 자살론


 

뒤르케임은 겉으로는 가장 개인적인 행위들처럼 보이는 것, 곧 자살 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함

으로써 사회학의 과학적 지위를 실증하고 확립 하고 싶어했다. 사회구조적인 힘들의 불균형이

가져온 결과라고 설명 해야하는 사회적 사실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자살률들이었다. 그 가

말하는 두쌍의 힘들의 불균형은 집단의 통합 또는 상호작용의 정도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가리키며, 도덕적 규제의 정도-아노미와 숙 명론-을 가리킨다.

이기적 자살은 이기적인 집단들에서 나타나는데 상호작용율이 낮으 며 모든 성원들은 공통

된 가치들, 믿음들, 전통, 감정등을 지니지 않 았다. 이것의 보기는 개신교도들의 자살률이 카

톨릭교도들의 자살률 보다 더 높았다는 것이다. 또 미혼자들이 같은 연령의 기혼자들보다 더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대가족일수록 자살이 일어날 확률은 낮았다 는 것이다. 이타적 자살은

지나친 통합의 결과였다. 현대의 군대와 원시사회가 이점에서 유사하다. 즉 두집단 모두에서

개인성은 존재하 지 않았으며 자기 희생을 촉구하는 강한 압력이 있었다. 아노미적 자 살도 있

는데, 아노미는 사회적 규제를 유발하는 사회변동의 결과였다.

급성적인 경제적 아노미는 경제호황과 불황의 시기에 일어났고 개인들 은 사회적 제약에서 해

방되었는데, 이는 불균형, 곧 불행을 야기시켰 고 자살의 증가를 초래했다. 만성적인 경제적

아노미는 산업을 수단 으로 간주하는 대신에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상황에서 일어났다. 급성

적인 가족적 아노미는 미망인이 그 본보기인데, 그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 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자살에 별로 저항하지 않았다. 숙명 론적 자살은 규제의 정도를 표시하는 연속선의

가장 높은 점에 있는 데, 자녀가 없는 기혼여성, 젊은 남편, 노예들의 생활이 그 보기들이 다.

"사회생활은 이와같이 결정화되는데 말하자면 사회생활은 물질적 토 대위에 고정되며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만큼 외재화되어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 특징들은 자살

률에 영향을 크게 주 지 못했다. 왜냐하면 개인적 차이들이 서로 상쇄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

문이다. 개인들을 통합하고 수단-목적 관계들을 규제하던 옛 조직 들은 쇠퇴했으며 허물어졌

다. 적절한 기능적 대체물들은 아직 발달하 지 못했고 따라서 사회적 불균형의 병리적 상태가

존재했는데 그 징표 가 자살률이었다.

뒤르케임은 자살의 병폐에 대한 치료책으로 교육을 지지했다. 교육 은 단지 사회의 영상이며

반영일 뿐이다. 교육은 사회를 흉내하고 축 약된 형태로 재생산한다. 교육은 사람들 자신들이

건전한 상태에 있 을 때 건전하다. 사회 그 자체가 개혁될 때에만 비로소 교육도 개혁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를 괴롭히는 그 근원부터 타도해야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은 뒤르케임의 아노미 개념을 자살보 다는 특히 일탈행위의 설

명에 사회학적으로 적용하는데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뒤르케임은 무규범 상태를 합

의된 사회적 가치들의 부재로 인한 불균형 상태로 검토한 반면에, 머튼은 수단의 관점에서

무규범 상태에 강조점을 두었다. 아노미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 들을 정의하지 못하고 오

직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에만 내맡겨두는 미 약한 문화였으며, 또한 범죄와 일탈보다는 차라

리 절망감과 자살로 유 도한 무의미 상태였다.

 

6. 종교와 지식 : 종교생활의 초보 형태들

이 책에서 선택된 사례는 씨족에 터한 사회의, 곧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토템종교였다.

이 사례는 종교와 사회조직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들의 표본이다. 이 책의 개괄적인 결론은 종

교란 두드러지게 사 회적인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종교적인 표상들을 집합적인 실제에서 생

겨나고 또 이 집단들에서 어떤 정신 상태들을 흥분시키고 유지하고 또는 재창출하도록 되어있

는 하나의 행동하는 양식이다.

뒤르케임은 종교현상을 두가지의 근본적인 범주로 나누었다. 곧 신 념들과 의례들인데, 전자

는 소신들이며 표상들로 되어있고, 후자는 확 정된 행동 양식들이다. 이 종교적 신념들은 성과

속을 나누는데, 세 상을 하나는 성스러운 모든 것을 담고있고 다른 하나는 세속적인 모든 것을

담고있는 두 영역으로 나누는 이 분할은 종교적 사고의 독특한 특징이다. 종교적 신념들의

판단기준을 마련해준것은 바로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간의 절대적인 구별, 곧 그것들의

논리적 상반성이 었다.

성스러운 것의 근원-사회적인 것의 도덕적 우월성-때문에 종교는 도 덕 공동체에 들어가 있

었으며, 뒤르케임은 이 도덕 공동체를 교회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는 종교의 정의에 이르는

데, 종교란 성스러운 것 들, 말하자면 따로 떨어져있고 또 금지되어 있는 것들과 관련되어 있

는 신념들과 관례들-그것들을 신봉하는 사람들 모두, 곧 교회라는 하 나의 단일 도덕 공동체

로 합일하는 신념들과 관례들의 통일체계이다.

토템은 생명소의 상징이며 사회의 상징이었다. 왜냐하면 신과 사회는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토템은 씨족의 기이다. 그러므로 씨 족이 개개인의 마음에 불러일으킨 감명을 씨족의

관념에 보다는 코켐 의 관념에 스스로 새겨둔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원주민들의 생활은 분

산기간과 종교적 회합, 또는 제사나 전투전날 전야제 두 양식이 있 는데, 후자의 회합들의 효

과는 그 성원들에게 더 큰 통일체에 참여한 다는 느낌을 주고 혼돈과 무질서에서 그들을 구해

준 우월한 도덕적 힘 에 대한 의존의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로버트 벨라와 같은 현대 사 회

학자들은 미국인들을 그들 나라와 나라의 가상적인 사명에 헌신하도 록 결합시키는 신념들과

의식들을 설명하기 위해 시민종교의 관념을 사용했다.

<초보 형태들>에서 뒤르케임의 가장 예리한 관념은 상징화의 위력에 관한 것으로 상징들,

또는 집합적 표상들은 실재를 창조했고 실재는 복종을 명했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성스러운

것의 사회적 힘은 가장 통상적인 것들에 대한 존경을 이끌어내기 위해 스스로 완벽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그 힘은 얼마나 많이 세분되었든지 간에 강력한 채로 남아 있었다.

뒤르케임은 종교의 미래를 무엇으로 보았는가? "종교에는 영원한 그 무엇이 있다. 사회

의 일체성과 개성을 만들어내는 집합적 감정들 과 집합적 관념들을 정기적으로 고무하고 또 재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회란 있을 수 없다." 요즈음의 몇몇 종교사회학자들은 개인주

의로 흐르는 경향에 관한 개인주의의 가설을 발전시켰다. 피터 버거 와 토마스 루크만은 종

교적 개인주의는 현대의 산업화된 사회들에서 가장 흔한 종교형태가 되어가고 있다고 시사했다.

<초보 형태들>에 퍼부어진 비판은 증명되지 않은 전제를 기초로해서 논쟁한다는 것이다. 뒤

르케임은 종교란 신봉자들을 하난의 도덕 공동 체로 결합시키는 것이라는 바로 그의 정의에서

볼 수 있는데, 도덕 공 동체는 이 저작의 중심 논제들 가운데 하나를 전제하고 있다. 또 가 장

단순한 사회형태는 가장 단순한 종교형태를 가질 것이며, 그래서 씨족과 토템 사이에는 등식

이 성립된다는 주장은 너무도 일반적이고 지나치게 거창했다. 그러나 그가 사회학적 종교 분

석을 발전시키려고 채택했던 방법들은 사회학자들과 다른 학계의 학자들에게 계속적으로 영감

을 불어넣어 주었다. 최근에는 <초보 형태들>은 사회적 위계의 기원과 그 위계 구조에서 권

력의 유지-특히 사회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의식을 스스로 재생산함으로써-에 대한 설명이라고

읽을 수 있다고 보 기 시작했다.

뒤르케임의 착상들을 적용한 학자는 스완슨으로 그는 뒤르케임의 은 유적 평행을 가장 철저

하게 적용한 사람이다. 벨라도 국가에 구현된 시민종교를 찾아내기에 좋은 사례를 착상한다.

거기에서 민족주의 이 데올로기는 국가의 의도와 목적을 성스럽고 초월적이라고 그린다. 에 릭

슨도 뒤르케임의 착상들을 17세기에 메사추세츠의 살렘에서 있었던 반대자 박해들(마녀 사냥)

에 관한 연구에 적용했다. 에릭슨은 위기의 경계선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집합적 표상들에

원기를 불러넣고 또 집합적 감정들을 부활시키려는 공공의례들의 기능에 한층 더 밝은 빛 을

던져주었다.

<초보 형태들>에서 뒤르케임의 자료와 논쟁에 나타난 결함이 무엇이 든 간에 토템종교와 씨

족 조직에 관한 이 사례 연구는 사회학적 구조 주의 분석의 발전을 위한 씨앗임을 입증했다.

 

7. 정치

뒤르케임은 갈등과 변화에 관심을 가진 인물로 묘사될 수 있었던 마 르크스와 대조적으로 질

서와 안정을 우선시하는 접근을 한다고 인정되 었지만 이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그는 사

회변동의 필요성에 대 해 관심을 가졌다.

개인주의가 프랑스와 그 밖의 다른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달했을 때, 이는 병리적인 특징들을

띠었으며, 바꾸어 말해서 도덕적 개인주의라 기보다는 오히려 이기주의가 득세하면서 위협적이

되었다. 개개인들 의 의견을 규합해서 국가에 전달하고 또 국가의 지도력을 일반 대중들 에게

로 내려 보내기 위한 결정적인 개혁을 개인과 국가 사이를 중개하 는 제도들을 발전시키는 것

이었다. 그러한 제도들은 또한 개인과 국 가 사이에 완충제 구실을 했을 것이며, 국가 권력의

균형을 잡아주었 을 것이다. 산업사회들에서는 경제 분야가 중요하기 때문에 핵심적인 중개 제

도는 경제적 기능과 도덕적 기능을 결합한 제도였을 것이다.

<직업윤리와 시민도덕>에서 뒤르케임은 사유재산 소유권의 철폐에 대해 추호의 말설임도

가지지 않았다. 재산에 관한 그의 요점은 현대 사회에서는 재산 소유권에 성스러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주 는 것이었다. 그는 사회진화의 추세는 각 개인에 대한 기회의 평등을

두둔하는 도덕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고 믿엇다. 재산상속은 가족 이 재산을 쌓아두던 사회

단위였던 그 전 시대로 부터 유래했으므로 고 래적 풍속이엇다. 왜냐하면 재산의 맨 처음 형

태는 토지였으며 그 토 지는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뒤르케임의 정치와 국가에 대한 이론은 <직업윤리와 시민도덕>에 나 오듯이 통치받는 사람들

과 통치자들 사이의 본원적인 대립과 분석상의 구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떠한

정치 집단에든지 그 집 단의 개념에 들어가는 본질적인 요소는 통치하는 사람들과 통치받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이며, 권위자와 그 권위에 종속된 사람들 사이의 적대이다." 국가는 집합

체를 존속시키는 어떤 표상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책임인 특수한 기관이다. 세계 국가는

너무나도 먼 미래에 있어서 지금 도래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고 그는 믿었으며 그리고 유 럽

공동체가 아주 많이 진척되리라고 믿지 않았다.

<사회주의>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정의를 숙고함으로 반박했다.

첫째, 사회주의란 사유재산의 순전한 부정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회 주의조차도 얼마간의 재산

소유를 사적 수중에 맡길 수 있는 여지를 남 겨둔다. 두번째, 사회주의란 집합체에 해한 개인

의 종속에 기초한다 는 주장에 대한 것이다. 만약 이 집합체가 국가를 의미한다면 그 때 에

그것은 국가를 철폐하려한 마르크스주의와 맞지 않았다. 세번째, 사회주의란 경제 관계들에 더

많은 평등을 삽입함으로써 노동계급들의 형편을 개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 이것은

사회주의에만 있 는 특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8. 교육

 

교육학에 대한 중요한 서적은 <교육과 사회학>과 <도덕 교육>이다.

교육학 이론과 실제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핵심은 도덕의 문제였다.

모든 도덕적 행위는 한가지 공통특징을 지녔다. 그것은 그 전부터 존 재하고 있는 규칙들에

순응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별 행윙가 일정 한도를 벗어났을 때에는 반드시 제재를 가

하는 한계들을 정해놓 았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일 특징은 권위의 의식이다. "우리는 우리 보

다 우월하다고 인정하는 모든 도덕적 힘을 우리에게 떠맡기는 바로 그 영향력을 권위라는 것으

로 이해해야 한다." 또 다른 특징은 사회 집단들에 대한 집착인데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집합적 이익에 따 라 행동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개별 목적들보다 더 우월하거나 또는 능가

하는 목적들을 향하여 일할 때에만 오직 도덕적으로 행동한다." 어것은 자율성을 그 특징으

로 가지는 도덕적 개인주의와는 완전히 달 랐다.

사회학의 사명에 대한 뒤르케임의 견해는 사회학은 어떻게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지를 밝혀내기 위해 구조적인 분석을 사용하는 하나의 과학적 학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으

며, 그리고 그 결과로 생겨나는 깨어난 의식은 오래 보전될 현명한 변동들을 우리가 일으킬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오는 말

"사물로서 사회적 사실들"을 연구해야 한다는 뒤르케임의 신조는 사 회적 사실주의라는 칭호에 걸맞는 모습은 물론이려니와 절제되고 냉정 한 그의 학문태도를 보여준다. 연구대상인 사회적 사실들을 사물과 같은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연구자 개인의 주관성을 배제할 수 있게 했으며 사회 현상을 객관적 토대 위헤 올려두고 분석하고 논리적인 연관 성을 찾아서 해석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그의 관심의 궁극점은 사회통합에 있었는데 사회 경속을 다지는 것 은 어떤 제도적인 장치에 보다는 새로운 도덕성의 출현에 기대를 걸었 다. "우리는 과도기와 도덕적 범용을 경험하고 있다. 옛 신들은 점 점 늙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었는가 하면 아직 새로운 신들은 태어나지 않고 있다." 이 말은 현대사회의 아노미적 상황을 잘 나타내 준다고 생각된다. 과학문명의 홍수속에서 사회내에서 행해지는 행위의 근거 는 이제 테크네, 즉 기술적 지식으로 대치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그토록 강조한 프로네이아, 즉 실천적 지혜 는 이제 추상적인 언어로 전락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말하는 새 로운 도덕성의 출현이란 우리 삶의 본령을 찾으려는 하나의 시도로 보 인다.

뒤르케임은 사회학을 하나의 과학학문으로 정립시켰다. 그에 의해 사회학은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특히 종교적인 현상을 사회 학적인 차원에서 파고들어간 것은 현대의 종교적 현상들에 대해서 하 나의 중요한 통찰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책을 다 읽고 쓴다고 써봤지만 이제 와서 느끼는 것은 사회학에 대 한 전이해가 없이 한 사회학자의 생애와 그의 저작에서 나타난 사상을 이해하기란 내겐 너무 벅차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에밀 뒤르케임 이라는 한 사회학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겠다. 내 개인의 생각에 아노미적인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또한 사회학의 필요 성과 도전이 절실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