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신학자들] 생애

교부 Origen 의 삶과 사상

好學 2011. 12. 17. 05:43

교부 Origen 의 삶과 사상 

 

 

1.들어가는 말

Origen은 교부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경로가 그러하고, 그의 신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그러하고, 그의 깊고 폭넒은 사상적 저술이 그러하다. 그의 삶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자료는 그의 제자였던 Eusebius Pamphilos의 대표적인 저술인 Ecclesiastical History의 Vi에 나타난다. Eusebius의 언급에 대한 사실성의 여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과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추측된다. 왜냐하면 Eusebius는 Origen을 추종하던 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확실성은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Eusebius의 언급을 사실로 인정하고서 모든 논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Origen의 생애는 매우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별다른 특별한 논의 없이 최소한으로 요약된 내용을 제시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가능한 객관적으로 각 내용별로 제시하고, 각 내용에 대한 몇몇 학자들의 평가를 비교 분석하는 순서로 글을 진행할 것이다.

2.Origen의 생애와 저술들

2.1.Origen의 생애

Origen은 A.D.186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였다. Origen이라는 이름은 이집트인들의 신인 Horus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처럼 추측되는데, 그것은 그가 이 신의 축제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아버지는 Leonides로 헬라문학 선생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헬라문학과 기초적인 성경지식을 배웠다. 202년 Septimius Severus 황제 때에 기독교는 무서운 박해를 받게 되었는데 이때 그의 아버지인 Leonides도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후 그는 Pantaenus와 Clement에게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18세 때에 이미 Demetrius감독의 명에 따라 알렉산드리아의 교리문답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는 성경말씀의 문자적 해석과 지나친 금욕에 대한 열망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되었다. Porphyry에 의하면 그는 여러 철학에 관하여 신플라톤 철학자인 Ammonius Saccas에게서 배웠다.

211년 Severus 황제가 죽고 박해가 중단되었을 때 로마를 방문하였고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 다시 문답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자신의 제자인 Heraclas를 보조자로 택하여 함께 가르치게 되었다. 이때 쯤 그는 자신이 개종시킨 영지주의자였던 Ambrosius의 재정적 도움과 격려로 구약성서 번역대본인 Hexapla를 편찬했다. 215년에는 아라비아의 태수를 가르치기 위해 아라비아로 여행했고, 216년에는 Caracalla황제의 박해를 피해 다시 팔레스틴으로 도망하였고, 그후 218년에는 Julia Mammea의 초청으로 안디옥을 방문하였다.

228년경 그는 그리스지역의 교회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그리스지역으로 가던 중 팔레스틴에서 예루살렘과 가이사랴 지역의 감독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성직자로 임명을 받았다. 이 일과 원리론이란 작품 속에서의 잘못된 논제, 그리고 Demetrius의 시기로 인해 231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영원히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이 일 후에 그는 Casarea에 가서 학문적인 기독교학교를 세웠다. Maximin Thrax황제의 박해를 피해 캅파도기아의 씨자리아로 도망하였다가 2년 후 다시 Casarea로 돌아왔다. 240년 아테네와 니코메디아를 여행하고 244년에는 아라비아의 보스트라로 여행하였다. 그는 마지막 10년간의 기간 중 켈수수반박문을 저술하고 그의 신학연설집, 그리고 연설문과 편지들을 썼다. 250년경 Decius황제의 박해시 감옥에 잡혀 많은 고난을 당하다가 출옥한지 약 3년 만인 254년경 Tyrus에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그는 무쇠같은 근면으로 Chalkenteros(Worker With Brazen Bowels)라고 불리웠고 Eusebius는 그에 대하여 "그의 교리는 생활이요 그의 생활이 곧 교리였다"고 당시의 평가를 언급한다.

2.2. Origen의 저서

그의 저서는 대부분 상실되었지만 매우 많은 그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A. 성서주석적 작품: Hexapla(6개국번역대조-이 본문들 중 하나를 그는 여리고 가까운 동굴에서 발견하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최대의 발굴인 사해문서중 일부가 아닌가 추측한다. 이것은 현재 전해지지는 않는데 150년 후의 Jerome은 가이사랴의 교회도서관에서 이 번역본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 Oktapla(8개 국어 역), Enneapla(9개 국어 역), 그 외 단편적으로 Scholien, Kommentare, Homilien 등이 남아 있다.
B.변증적인 작품: 전 8권의 켈수스반박론이 있는데 이 작품은 고대교회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C.교리적 작품: 양탄자에서는 부활론과 자유의지론이 몇 개의 단편만 남아 있고 원리론은 라틴역과 몇 개의 원문이 전해지고 있다.
D.실천적 작품: 기도론과 순교에의 권면 등이 남아 있다.


3.오리겐의 사상

3.1.성서의 해석

오리겐은 영지주의와 논쟁을 거치는 동안 성경해석의 올바른 원리를 깊이 연구하였고 마르시온과 같은 성경문자주의자들을 대항하기 위해 성경의 상징적 주해를 발달시켰다. 그는 자신의 모든 가르침과 연구의 근거와 권위가 성경임을 확신하였다. 그는 성경 안에는 직접 영감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놀라운 유기체적 전체를 나타낸다고 확신하였는데 그는 성경배후에 있는 영감을 단순한 인간저자 편에서의 믿음의 고백과 세속역사의 서술에 대한 증거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신비의 바다인 신적 계시의 영원한 본질로 해석했다. 성경은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 어리석은 외적 의미를 가진 구절들, 비도덕적인 구절들이 있지만 이것들은 그 내부에 깊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령께서 영적인 가면으로 그 사상들을 숨기신다. Prov 22.20F에 근거하여 오리겐은 성경의 세 가지 의미를 가르쳤는데 이것은 플라톤의 인간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첫째 성경의 신체적, 문자적 의미로서 이것은 누구에게나 이해될수 있다. 둘째 성서의 혼적, 도덕적 의미의 해석이다. 세째 성서의 영적, 풍유적 의미인데 이것은 오직 완전한 사람에게만 알려진다. 이 세 번 째 의미를 알기 위해서 알레고리적 해석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는 알레고리적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의 모든 부분에서 영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하여 복음의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복음서를 지혜서로 영화롭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성서해석방법들은 그리스도인의 두 계층에 대응되는데, 단순한 계층과 군중들은 독단(Ipse Dixit)에 의존하고 그들의 비합리적 신앙과 함께 문자적 의미를 고수한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그러나 열등하고 부정한 사람으로서 그를 생각한다. 그들은 심판에 관한 성경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순수한 의미로는 이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든 것은 오직 심판에 대한 두려움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명령한 것과 같이 성경의 영적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찾는 교양있는 신자들을 나타내기 위한 낮은 계획이다. 그리하여 좀더 높은 수준의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평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였지만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신 이유를 이해하며 그리스도를 더 이상 의사로서가 아니라 선생으로 받아들인다. 기독교는 권위에 근거한 믿음과 심판의 두려움으로 죄에서 돌아섬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에 더 높은 단계 즉 이해하고 조망하는 단계가 따라온다. 그는 이 더 높은 단계를 본질적으로 지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성경해석방법은 알렉산드리아의 후대의 신학자들과 팔레스틴의 교부들(에피파니우스만은 예외였다), 카파도키아의 교부들, 그리고 암브로시우스, 초기의 제롬, 그리고 어거스틴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쳐 이 방법을 수용하여 사용토록 했다. 그러나 4-5세기경 이런 풍유적 해석에 대한 강한 반발이 일어났는데 그 중심지는 안디옥으로 타르수스의 디오도레, 몹수에스티아의 데오도레, 그리고 요한 크리소스톰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은 오리겐의 성경해석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벵트 헤그룬트는 오리겐에게 있어서 특이한 점은 그가 모형론적 방법과 함께 풍유적 해석방법을 사용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한 플라톤적 전통에서 빌려온 풍유적 해석방법의 도입으로 범세계관의 수용을 용인하였다고 완곡하게 지적한다. Walker은 "오리겐은 풍유적 성서해석법을 사용하여 신플라톤주의 철학운동과 성서를 조화시키려 하였다"고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다. 맨슈택은 "역사적으로 오리겐의 성경해석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신봉했던 신비주의 체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함으로 오리겐의 성경해석방법이 기독교전 역사를 거쳐 많은 영향을 끼친 사실을 간과하는 듯 하다. 폴 틸리히는 "이 방법은 종교개혁자들이 매우 강하게 공격하였지만 이 해석의 필연성은 하나의 권위있는 텍스트의 의미가 문자적으로 무의미하게 되었을 때, 그 텍스트를 살리려면 그 안에 있는 문자적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발견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명해진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분명히 스스로가 언급하듯이 불트만의 비신화화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캄펜하우젠은 오리겐이 이방인들과 영지주의 ,마르시온에 대항하기 위해서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을 필연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이런 해석방법이 필연적으로 언제나 성경의 요점을 간과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3.2.삼위일체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과 목표로서 정신과 존재자체를 초월해 있고 '완전무결한 단자(Monad)이고 일자(Henad)이다.' 하나님은 불가해적, 불변적, 영적 존재이며 모든 선한 것의 절대적 동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활동하시고 그러므로 그는 결코 홀로 존재하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의 활동의 대상을 가지셨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의 원인이시며 창조주, 보존자, 통치자이시다. 그분은 로고스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계시를 통하여 자신은 나타내시는데 이 계시는 제약을 함한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자로 창조하셔서 자신을 제한하셨다.

로고스

하나님은 그 분과 함께 영원한 신령한 존재들인 영혼의 세계를 존재하게 하셨는데, 자신의 절대적 단일성과 영혼의 다수성 사이를 중재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 즉 자신의 명시된 형상을 갖고 계셔서 '모양들'의 복수성과 만나는 합류점을 이루셨다. 이 모양들은 말씀이 그 영원한 존재에 있어서나 혹은 성육신되신 여러 성격들을 표현해 주고 있다. 성부께서는 시간의 범주밖에 있으므로 영원한 행위로 아들을 나으셨고 "성자가 계시지 않았을 때는 없었다". 결국 성자는 제2의 하나님이시다. 즉 인간의 마음에서 의지가 나오는 것과 같이 출생하셨다. 이 출생은 영원한 출생인데 이를 통해 오리겐은 로마가 지지하던 독재론(Monarchiannism)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오리겐은 성자를 성부에게 종속시키는 종속설을 극복하지는 못하였는데, 즉 그는 아들이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왔다는 표현을 거부하였고 단지 아버지의 의지에서 나왔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당시 노스틱주의의 유출설에 반대하고 성부수난설을 반대하기 위한 하나의 반동이었다.

성령

성령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데 그러나 한 객체이며 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성령은 오직 성도들의 영혼 속에서만 활동하신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삼위중 가장 작다. 이상의 오리겐의 삼위일체는 성부를 가장 크게 그리고 성령을 가장 작게 그린 삼중의 동심원으로 된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 삼위의 관계는 경륜적인 동시에 존재론적이다.

이러한 오리겐의 삼위일체개념은 이후의 초대기독교신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 이후의 거의 모든 신학적 논쟁이 오리겐의 사상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분열과 되풀이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리겐의 하나님사상에 관하여 니이브는 "오리겐은 신플라톤 사상을 따라서 영적인 것만을 실재라고 인정하여 결국 추상적인 신개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플라토주의적인 사상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에티엔느 질송은 "오리겐은 철학적 기초에서 하나님의 비물질성을 수립하려고 한 최초의 교회 저술가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또한 "오리겐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것 즉 존재의 무한하심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오리겐의 로고스론에 관하여 니이브는 "오리겐은 하나님으로부터 누우스가 나온다는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따랐다. 그러나 그는 성부와 성자의 동등한 영원성을 최초로 진술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성자를 성부에게 종속시키는 종속설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질송은 "최초로 플라톤주의가 기독교신학 안으로 대량으로 유입된 것은 효과가 많은데, 그것은 오리겐이 순수하게 영적인 존재라는 개념을 세우고 비물질성은 실재의 가장 높은 형태라는 확신과 더불어 하나님의 관념이라는 교리이다. 또한 오리겐은 말씀이 하나님의 형상일 뿐이라고 말하여 오류를 범함과 동시에 말씀이 성부와 절대적으로 비슷한 존재이며 이 존재를 통하여 모든 존재들이 신적인 모양을 가진다고 덧붙임으로 옳은 태도를 취했다"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질송 자신의 철학적 입장에서 접근을 보여준다. 켈리는 다음과 같이 아주 적절한 평가를 하고 있다:"중략---이것에 대한 이유는 오리겐이 중기 플라톤주의에서 가져온 공리이다. 중략---그러나 그 결과로 부수적 질서를 초월하신 삼중적인 하나님이라는 기독교적 관념을 손상시키게 되었다. 더 제한된 영역에서는 플라톤 주의의 영향이 철저한 종속설에서 나타나는데 이러한 종속설은 오리겐의 삼위일체론적 도식에서 절대 핑요한 요소이다. 중략---이러한 하강적 존재계급의 관념 그 자체가 플라톤주의화하는 배경의 산물이거나와 성부의 활동이 모든 실재에 확장하는 반면에 성자의 활동은 이성적 존재들에게 국한되고 성령의 활동도 성화되고 있는 자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진술 속에 잘 요약되어 있다."

3.3.세계

오리겐은 창세기에 기록된 사건을 우주적인 신화로 변형시키고 인간적인 죄된 상태의 시원을 자상적인 평면에서부터 초월적인 평면으로 올려 놓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으로부터 일정한 수의 이성적 존재들을 창조하셨다. 이성적 정신적 존재들은 피조물이지만 영원한 것이다. 이들은 본래 동등한 것으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신과 분리되어 떨어져 나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 물질과 결합되었다.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는 이들을 벌하고 정화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인간은 이세상의 활동을 통하여 정화되고 훈련되어야 한다. 즉 영적 실재가 타락하여 인간의 영혼이 되었는데 이 인간의 영혼은 육체 속에 갖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속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오리겐의 우주이전 타락설인데 이것은 그에게 보편적인 죄의 상태를 설명해 준다.

다른 말로 한다면 오리겐은 타락에 대하여 두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타락이란 초월적인 사건인데 이것을 신화론적으로 말한다면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신과의 합일에서 신과의 분리에로 옮아가는 영원한 이행이라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타락을 역사 내적인 사건으로 보는데, 초월적 타락은 역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행위에서 현실화된다. 죄 그 자체는 정신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육체적 사회적 실존을 통해서 강화된다.

정신의 창조에 관해서 말하자면 창조는 타락에 선행한 것이지만, 물질적 세계에 관해서 말하면, 창조는 정신적인 것이 가지는 자유에 의한 타락 다음에 일어난 것인데 이 자유 때문에 새로운 타락이 가능하고 그것은 영원에서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끝이 반드시 역사의 끝은 아니며 새로운 타락이 일어날 가능성은 영원히 계속된다. 이점에서 오리겐은 그리스적 순환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오리겐의 세계와 타락,죄의 보편성에 관한 사상은 20세기의 칼 바르트의 원역사(Urgeschichte)와 유사한 것 같다.

3.4.구원론

오리겐에 의하면 성서의 계시는 인간의 구속을 위한 것이다. 자연법에 더하여 모세의 율법이 주어 졌고 그 다음에는 문자적 복음이 나타났고 마지막으로 영원한 복음이 나타났다. 그리스도는 저차원의 신자들, 즉 외면적인 것이 없이는 믿을 수 없고 따라서 어떤 감명을 필요로 하는 신자들을 위하여 인간을 속량함으로서 사실상의 구속을 이루어야 했다. 이와 반대로 진정한 노스틱, 즉 하나님의 모든 신비를 통찰할 수 있는 진정한 신자들을 위하여는 제사장과 교사로 나타나서 그들에게 심오한 지식을 얻게 하고 자신의 신적 생명에 참여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이 되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오리겐의 기독교적 그노시스와 노스틱주의자들의 거짓 그노시스간에는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후자는 구속의 역사성과 현실성을 부정하였으나 오리겐은 그것을 믿고 가르쳤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리겐에 의하면 이러한 구속의 사실들은 단지 저차원의 초신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고 참된 노스틱은 기독론이나 구원론 즉 구속의 역사적 사실들을 설명하는 교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역사적 계시의 모든 사실들은 진정한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진리 자체는 아니다.

오리겐의 속죄론의 근본원리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영혼을 악마에게서 속량하기 위하여 자기의 영혼을 대가로 내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마는 완전히 속임을 당하였는데 그 이유는 악마는 이 무죄한 영혼을 결코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은 악마로부터 해방되었다. 한편 오리겐은 하나님에 대한 화해의 필요성도 인정하였는데 그리스도는 마땅히 우리가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으며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와 화해하게 되었다. 오리겐은 이러한 성서적 견해에다 자신의 독특한 개념인 화해의 역사는 천사들의 세계에까지 미치며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사업을 영원토록 계속하신다는 사상을 첨가하였다. 이것은 그의 삼위일체론과 세상에 대한 사상에서 나온 필연적인 덧붙임이다. 그리고 또한 오리겐에게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하나님과의 화해의 필요성이라는 성서적 사상과 자신의 삼위일체와 세계에 대한 사상이라는 조화되지 않는 모순점이 동시에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3.5.기독론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야 했던 이유는 단순하고 불완전한 신자들을 위함이었다. 그리스도는 로고스와 예수의 육신을 연결시키는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영혼은 타락에 참여하지 않은 순수한 영이었다. 고난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영혼이었고 로고스가 아니었다. 오리겐은 그리스도의 두 성질에 각각 그 본래의 특성을 부여하였는데 인간 예수는 참으로 가사적(可死的)이었고 참으로 고난을 당하여 죽었다. 한편 로고스는 변할 수가 없으며 죽을 수도 없다. 이와 더불어 오리겐은 그리스도의 두 성질의 진정한 결합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사귐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됨이다. 이러한 하나됨에 의하여 로고스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신성화 해 간다. 결국 로고스는 예수를 영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결합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오리겐의 기독론에 대하여 니이브는 하르낙의 말을 인용한다:"비록 조심스럽게 제한되기는 했지만 모든 종류의 이단사상이 여기에 포함되었으며-----그 중 유일한 예외는 양식론뿐이다" 폴 틸리히는 "그렇게 함으로서 비그리스도교의 표상을 그리스도교적 신비주의로 바꿔 놓았다. 이 신비주의는 구체적 신비주의인데 왜냐하면 신적 영에 붙잡힌 혼은 신적인 심연 속으로 소멸되지 않고, 신적인 것의 구체화인 로고스가 혼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이 신비적 결혼에는 인격성이 보존되어 있다"고 평하고 있다. 켈리는 다음과 같이 길게 평가하고 있다:"오리겐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자기의 출발점으로 삼고 자기 자신의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성육신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할 수 있었다. 첫째로 그는 로고스와 그리스도의 인간적 영혼사이의 통일성을 실지의 통일성으로 나타내려는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이론으로는 거의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말았다. 중략---그의 관념은 인성 속에 내주하고 지도하는 로고스에 관한 것이었다. 둘째 요점은 성육신 자체가 정말로 오리겐체계의 논리밖에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략---그는 성자가 인간본성에 참여한 것을 영구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고 본질적인 것으로도 보지 않았다. 중략---성부와 인간사이의 참 중보자는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기원이 없는 신성과 피조물사이의 간격을 다리놓아 주시는 말씀이다"

3.6.종말론

오리겐은 몸의 부활에 관하여 조잡한 문자주의와 지나친 영지주의 모두를 반대하였다. 그의 출발점은 물체의 물질적 기체가 항상 유동하는 상태에 있는 그것의 성질들은 날마다 변하고 있으나 그 성질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특수한 형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즉 성도들이 다시 살아날 때 몸들은 땅위에서의 몸과 동일할 것이다. 반면에 그들이 지닌 물질적 기체의 성질들은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들은 더 순수하고 천상적인 영역에 맞는 더 좋은 옷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특수한 형식을 설명하기 위해 오리겐은 그것을 에네르기의 원리와 동일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스토아적 원리에 의하면 항상 변하는 질료의 유동 속에서 몸의 동일성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는 심판에 대하여 외형적인 표현과 영적인 실재사이를 혼돈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한편으로 그는 심판의 문자적 의미를 인정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문자적 심판 배후에 있는 영적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취급한다. 즉 그는 종말에 관한 원시적인 표상을 정신화 해서 그리스도의 내림을 믿는 자의 혼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영적 현현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그는 의인이 상속받는 나라는 신적 진리의 사색이며 죄인이 고통당하는 지옥의 불은 양심의 고통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지옥의 불은 정화의 불인데 이것에 의하여 결국 세상의 모든 존재는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때에도 여전히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락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며 결국 세상은 연속적인 순환을 하게 된다. 오리겐은 이러한 사상 때문에 결국 이단으로 정죄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하여 폴 틸리히는 "종말론의 정신화로 인하여 오리겐은 고대 교회의 최대의 신학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는 이단자로 몰리게 되었다. 중략---오리겐에 대한 반발은 두 가지 동기를 가진다. 하나는 그리스적 이원론에 반대하고 유대교적 실재론에 바탕한다. 또 다른 하나는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에서 나왔다."라고 평가한다. 이것은 틸리히의 신학적 배경에서 나온 오리겐에 대한 지나친 칭찬이요, 성경에 대한 잘못된 그의 생각에서 비롯된 평가이다. 고대에서의 오리겐에 대한 정죄는 정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니이브는 "종말론에 있어서 오리겐은 교회의 정통성을 깨뜨렸다"라고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다.

4.오리겐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

오리겐에 대하여 니이브는 "종교와 철학의 종합을 시도한 그의 방법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독교는 하나의 체계로서 확립될 수 있는, 그리고 그 내용을 철학적 개념에 쏟아 넣어서 표현할 수 있는 내적 충동을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리겐은 처음으로 신학의 방법을 문제 삼은 선구자였다. 오리겐과 그의 후계자들은 삼위일체론을 확립하는데 실로 위대한 공헌을 하였다"라고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다. Walker는 "오리겐에 와서 희랍철학의 개념으로 기독교진리를 해석해 오던 오랜 과정은 드디어 완료된다. 그는 기독교 체계에 완전한 학문적인 입지를 부여하고 당시 학문의 시험대에 기독교를 올려놓았다. 오리겐의 철학적 입장은 본질적으로 플라톤주의와 스토아철학에 근거하였고 당시 발흥하던 신플라톤주의에 가깝게 기울어져 있었다." Kurt Aland는 "그리스 철학이 오딧세이에 나오는 사이렌요정의 노래소리같이 오리겐마저도 길을 잃고 헤매이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의 신학에서는 예수의 대속의 죽으심이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문으로서의 신학의 길을 연 사람이다. 그의 사고방식과 학문의 방법은 수 세기동안 신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켈리는 "오리겐의 삼위일체론은 그가 교회인으로서 섬기던 전통적인 성삼위의 규칙을 똑같은 중기 플라톤주의의 뜻으로 풀이한 빛나는 재해석이었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벵트 헤그룬트는 "오리겐의 신학체계를 살펴보면 전형적인 플라톤의 사상이 기독교의 전통과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략---오리겐의 방법은 양대사상체계를 통일적이고 조직적인 사상양식으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중략---그는 신중하게 신앙규범의 내용을 통일적 기술방법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당시의 당면과제였던 인생에 관한 철학적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을 시도하였다."고 평가한다. 캄펜하우젠은 "그는 이방철학을 논박하기 위해서 이방철학을 공부하였고 자신의 근거의 출발점을 성경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적들의 입장에 빠져드는 위험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철학에 대한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관심에서 지적문제들에 대한 방법적 연구에로의 변화와 교육적 논의의 격언으로부터 잘 만들어진 신학적 체계의 신뢰성 있는 구조로의 변화에 책임이 있다. 처음부터 오리겐은 교회의 가르침에서 이탈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제공한 것은 세상의 타락과 구원과 지나감에 대한 영지주의적 신화와 더욱 유사하였다. 그러나 유일하게 다른 것은 이 신화는 매우 넓게 철학적 개념으로 바뀌었고 다소 상징적으로 해석되었다는 것이다. 오리겐은 성경적 개념들이 그의 손에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깨닫지 못하였고 자신은 오직 그것을 더욱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고 개인적 헌신과 열정을 가졌을 때에만 세상에 대한 그의 견해의 기독교적 특징들이 보여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리겐은 구원의 과정을 철학자들보다는 덜 인간학적으로 묘사했다. 즉 타락과 영혼의 고향으로의 복귀가능성 등의 단순한 용어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사랑과 인도의 신적 목적의 표현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단순한 삶에 대한 동일한 기본적 가정 내에서 강조점의 뉘앙스의 차이일 뿐이다. 결정적으로 유일하게 기독교적인 점은 모든 지식과 성화를 그리스도의 인격과 모범에 관련시키는데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과 성경은 그의 신앙을 지지하고 보증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서로 남았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그는 초대 기독교 선생들의 입장을 따랐고 그의 신화의 야만주의에 대한 철학적 경멸은 그를 결코 방해하지 못했다."고 아주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다.

5.나오는 말

기독교신학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오리겐은 빠질 수가 없는 인물이다. 그의 신학의 방법론과 무엇보다도 당시의 일반사상과의 기독교와의 연관성을 통해 기독교를 체계화시킨 점은 높이 살만하다. 우리는 그의 사상 속에서 그 이후 계속적으로 기독교의 안과 밖에서 논쟁되어 왔던 거의 모든 신학적 문제들을 접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최초의 기독교 학문적 신학사상가라고 불리울만하다. 또한 그의 뜨거운 신앙과 학문에의 열정,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은 우리의 눈길을 돌리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또한 신학하는 자의 위험성과 어려움도 함께 보야야 한다. 오리겐은 당시의 플라톤사상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가서 성경으로 돌아와 세상의 모든 학문과 사상에 대하여 담대하게 "Nein"라고 외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결국 그는 많은 업적과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단으로 정죄받고 말았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에도 역사 동일하다. 얼마 전 감신대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논쟁을 보더라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위험을 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릇 신학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주의의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는 모토는 절대적 호소력을 갖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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