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基督論]성경.교회.예배.

Ⅴ. 성령의 구원 적용은 어떠한가? (구원론)

好學 2012. 1. 20. 21:56

. 성령의 구원 적용은 어떠한가? (구원론)

 

 

 

성부 하나님께서 예정된 선택 가운데 이미 계획해 놓으신 "구원 사역"을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리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으니 그 속죄의 피는 지금 넘치도록 풍성하다.

그렇다면 이제 완성된 구원의 핏물을 어떻게 각 인간의 "마음"과 "생활"에 실제 적용시키느냐가 주요 관건이다. 피와 살을 먹어야 혜택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 적용 사역을 맡은 이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가 파송한 구속운동의 실제 실시자이시다.


 

지옥
성자께서 완성한 구원을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적용을 시킴으로 나타난 현상이 "부르심(소명)"이요, 거듭나게 하심(중생0이요, "회개"요, "믿음"이요, 그리고 "의롭다 하심"(칭의)이요,"자녀되게 하심"(양자)이요, "거룩케 하심"(성화)이요, "끝까지 붙들어 주심"(성도의 견인)이요, "영화롭게 하심"이다.

이렇게 성령의 구원 적용사역의 내용은 크게 아홉가지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이것을 "구원의 서정(순서) 9단계"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발생하는 순서라기 보다는 논리적인 순서라고 할 수 있다.

부르심(소명) 받는 그 순간 그는 영화까지 보장받게 되므로 한 번 선택된 자는 9가지의 순서가 완전히 성취되어 어느 한 곳에서 중도 탈락되는 일이 없이 반드시 구원을 받고야 만다(롬 8:30).

그래서 예정은 "유효적 부르심"임이고 가장 안심하고 신임할 수 있는 구원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기된 자는 아예 처음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러므로 불택자에게 있어 그 풍성한 십자가의 피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제 1과 소명과 중생

소명과 중생을 설명하기전에 먼저 롬 8장 29,30절의 내용을 먼저 파악하고 나서 다음을 정리하고자 한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 이니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① 미리 아심

여기 "안다"라고 하는 말은 어느 사건을 단순한 지적 대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시편 1편 6절은 "의인의 길은 아시나 악한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여기 "아신다"는 것은 인정하신다는 뜻이다.

또한 구약은 남녀간의 사랑을 "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마태복음 7장에도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나니"라고 했는데 이 말도 너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다"는 말은 인정, 특별한 사랑, 개인적 친근을 의미한다(요 10:14 참조). 마태복음 1:25절에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라고 했는데 "동침치 아니했다"는 것은 원문을 직역하면 "알지 아니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아는 것"은 깊은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② 구원하기로 예정

특별히 사랑한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미리 정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미리 아신 자, 즉 특별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신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도록 미리 정하신다. 하나님의 예정은 무조건적이며, 그 시기는 창세 전이다.


Ⅰ. 부르심(소명, Calling)

성령의 구원적용에 있어 제일 먼저 나타난 행위는 죄인의 "불러주심"이라 할 수 있다. 앞의 도표에서 보듯이 모든 인간이 지옥을 향해 내려가고 있을 때, 어느 순간 하나님이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하나 하나 불러들여 그들의 방향을 천국으로 돌려놓는 그 사역이 곧 소명이요, 또한 인간편에서는 그 때가 새로이 거듭나는 순간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부르심에 대한 두 가지의 경우를 말씀하고 있으니 하나는 "외적인 부르심"이요 또 하나는 "내적인 부르심"이다.

(1) 외적 부르심

죄의 용서와 영생을 얻도록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라고 하는 열심있는 권고와 초청의 부르심을 말한다. 성경에 보면 모든 사람들이 외적 부르심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보통 "전도"의 행위로써 표현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이러한 복음이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마음에 감동도 없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마 23:37).

복음이 귓가에는 미쳤으되 가슴까지 도달 못했으니 그것을 "외적 부르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이 많다고 외적 부르심이 중단되거나 좌절되지는 않는다. 받아들이건 배척하건 간에 복음의 초청은 계속되는 것이다.

이 외적 부르심은 그러므로 장소와 시기에 구애됨이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우주적인 부르심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간절하신 천국초청의 열망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불신자에게 핑계를 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전도자의 입을 통해서 돌아오라고 부르짖어도 역시 버리운 자는 돌아오진 못하고 만다.

① 구성 요소들

a.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속자라는 복음의 진리

b.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는 구원으로의 초청(요 6:28,29).

c.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어질 죄 용서와 구원의 약속(행 2:16-28).

② 중요성

a. 죄인들을 회심(回心)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과정이다(롬 10:14-17).

b. 창조주로서 죄인들에게 봉사를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통로이다.

c. 하나님의 거룩, 선, 긍휼하심을 보여 준다(시 81:13).

d.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강조적으로 보임으로써 자기 죄에 핑계치 못하게 한다.

(2) 내적 부르심

이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부르심을 말한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외적 부르심을 아주 효과있게 만드는 것이다. 벌써 영생받기로 예정되고 구원받기로 선택된 자는 "초정의 복음"이 귀를 통해 마음 깊숙히 파고 들어와 감동을 받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는 뱃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① 유효성(有效性이) 있어서 반드시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한다(롬 4:17).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② 불변성(不變性)이 있어서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롬 11:29). 즉 미리 정하신 자는 반드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롬 8:28-30).

Ⅱ.중생(重生)

성령에 의한 내적 소명은 결실을 맺어 죄인의 마음을 변화케 하고 회심에 이르게하여 구원으로까지 인도한다. 이러한 죄된 마음의 변화를 중생, 혹은 거듭남이라 한다(엡 2:1,8,9).

(1) 중생의 필요성

자유주의자들은 중생을 초자연적인 변화로 보지 않고 악한 사람이 어떤 동기로 성격이 바뀌어져 도덕적으로 선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선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중생이 불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은 중생의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직접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한편 중생이 필요한 세부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인간의 전적 부패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상태에 있어서나 성향과 행동에 있어서 완전히 부패 하였기 때문에 중생하지 않으면 선함이나 거룩함을 전혀 회복할 수가 없다.

② 인간의 전적 무능

모든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엡 2:1) 영적 선을 행할 수도(시 14:3) 하나님을 찾아 알 수도(고전 1:20), 하나님을 볼 수도(요 3:3),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요 1:12,13) 없다.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아야만 이런 일들이 가능할 수 있다(롬 3:11).

(2) 중생의 특성

펠라기우스파는 중생을 단지 인간의 의지에 따르는 도덕적 개선으로 본다. 그리고 카톨릭 교회는 중생이 영적 갱신일 뿐만 아니라 칭의, 사죄를 포함하며 교회의 영세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알미니안파는 중생을 신인협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다양한 중생의 개념은 개혁 교회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그러면 개혁 교회에서 말하는 중생의 특성을 살펴보자.

① 중생은 죄와 허물로 죽은 영적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기에 부패한 영적 성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인적 변화이다.

중생이란 새 생명의 원리를 인간 속에 뿌려 마귀를 축출하고 성령의 지배아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생은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이미 기존한 자아성품의 재생이며 그것은 온전한 거룩(성결)을 향한 계속적 변화가 뒤따라간다.

② 중생은 점진적 향상이 아닌 즉각적 변화이다.

③ 중생은 성령에 의해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오는 것이기에 의식할 수 없으며 결과를 보고 안다(요 3:8).

④ 중생은 인간의 협력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하나님의 단독 사역에 의한 것이다 (요 1:13).

⑤ 중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달린 것이기에 인간이 그것을 절대 거부할 수 없다.

⑥ 중생은 윤리적, 자연적 변화가 아닌 이적 중의 이적이다.

⑦ 신적 결정으로 주어진 중생의 은혜는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

 

 

 

제 2 과 회심과 신앙

회심이란?

죄인이 거듭났으니 이제는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마음과 생활의 변화가 뒤따르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개종(改宗), 회심(回心) 혹은 개심(改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회심은 중생의 필연적 결과이다. 성령의 내적 소명에 의해 중생한 신자는 이제 새로운 성향을 가지고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즉 중생이 새로운 탄생, 죽음에서 삶으로서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한다면 회심은 새로운 삶의 출발이다. 회심은 단순한 뉘우침이 아닌즉 그것은 반드시 "회개"와 "믿음"을 수반한다. 그래서 회심의 "소극적 요소"를 회개라 하고, "적극적 요소"를 믿음(신앙)이라 칭한다.

 

 

Ⅲ. 회개(Repentance)

(1) 회개의 정의

생명에 이른 회개는 조인이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의 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고 자기의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순종을 결심하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인 된 과거를 돌이켜 보고 참 마음으로 후회하여 애통하는 행위를 말한다.

(2) 회개의 요소

회개는 본질상 마음의 변화이므로 지성적, 감성적, 결의적 요소를 포함한다.

a. 지성적 요소

율법을 통하여 성격, 오염의 정도, 허물의 크기 등을 지성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롬 3:20).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b. 감성적 요소

죄에 대한 지적 깨달음의 결과로 하나님을 반역한 것에 대해 미안해 하고 슬퍼하는 감정적 변화를 가리킨다(시 51:2, 고후 7:9,10)

c. 결의적 요소(의지적 요소)

잘못된 것을 생각하고, 방성대곡을 했다고 회개가 완전해 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죄를 안짓고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결단력 있는 의지와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이와같이 회개는 지, 정, 의의 전인적 변화의 행위인 것이다.

(3) 회개의 특성

인간의 각성의식이다.

중생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방적 주권사역이지만 회개는 "인간의 협력"을 요한다. 회개는 인간의 각성의식에서 생기는 "지,정,의"의 인간적 표현행위이기 때문이다.

② 그러나 회개의 주체자는 역시 성령 하나님이시다.

인간 마음대로 회개하고 싶다고 회개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롬 8:28)에 의해 "회개의 영"을 불어 넣어야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슥 12:10).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카톨릭 신부 앞에서의 "마지못한 고해성사"는 회개가 하나님께로 열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인 신부에게로 돌아가는 인상이 짙다. 회개는 진정 하나님이 시켜서 하나님만이 받으시는 죄인의 고백이다.

 

Ⅳ. 믿음(신앙, Faith)

앞의 도표에서 보듯이, 믿음은 죄를 잊어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회심의 적극적 행위이다.

"첫째로 바른 방향으로 돌이키고, 다음에는 똑바로 앞을 향해 전진하라"

신앙의 궁극적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시다(요 14:1). 그런데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즉 성령께서 증거하신 말씀에 잘 계시되어 있다. 말씀은 구원의 대상에 가장 가까운 대상이다(요일 5:7).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본 신앙의 대상은 성경에 기록되어진 계시 진리 전체라 할 수 있고, 좁은 의미에서 본 신앙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라 할 수 있다. 오직 속죄하신 주님만 앙망하고 확신하는 마음이 곧 신앙, 즉 믿음인 것이다.

예수님 즉 그의 "십자가의 피와 부활하심을 믿는 것이다.

그리하여 구원의 주체자 → 하나님

구원의 대상자 → 죄 인

구원의 내 용 → 예수님

구원의 조 건 → 믿 음

구원의 결 과 → 영 생(요 3:16)이다.

"믿음 = 구원"이라는 원칙의 기초석은 에수 그리스도이시고 또 "예수를 믿음"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산물이 아니고 "신적 산물"이라는 것을 엡 2:8-9에서 배웠다.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대 전제는 구원도 하나님의 베푸신 선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회개케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구원을 얻도록 하신 이 원리는 한낱 철학적 논리나 도덕적 갱생을 넘어 성령의 초자연적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 13:48)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1) 믿음의 종류

① 파상적 믿음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앎(지식)"이나 감정적으로 믿는 신앙 인 바, 그것은 일시적인 믿음이다.

또한 이적(표적)이나 은사를 보고 잠시 감탄해서 수긍하는 것 등이다.

이것은 복음을 듣고 참으로 회개하지는 않지만 성령의 일반 은혜에 인도될 때 경험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히브리서 6장 4절에 "참예"라는 말은 "좀 따라갔다" 는 뜻인데 약간 믿어 보았다가 그치는 일시적 믿음을 가리키며 중생에 뿌리 박지 않은 신앙이다. 그러나 당장 보기에는 참 신앙처럼 보이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라야 그 본성이 밝혀진다.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마 13: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마 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② 구원적 믿음

중생에 기초하여 깊은 뿌리가 박혀 성령의 진액을 받아 하나님의 가꾸심에 따라 훌륭하게 자라 결실을 맺게 되는 신앙이다(마 13:8). 즉 성령의 역사로 중생한 결과 복음의 진리에 대해 견고한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에게만 진실히 의뢰하는 신앙 이다. 믿음은 곧 구원에 도달해야 참 믿음이겠다. 예수님이 참 나의 구주로 믿어지고, 그의 십자가의 보혈이 믿어지고, 부활, 승천, 우편 계심, 재림, 천국 이 믿어지며, 성령의 복음진리가 믿어지고, 그것의 약속과 축복이 믿어짐으로 서, 자신이 정말 구원받았음을 믿는 진실한 신뢰가 바로 참된 믿음이니, 죽음을 불사하고 믿는 것이다.

(2) 신앙과 구원에 대한 여러 교파의 견해

a. 로마 카톨릭 교회의 견해

구원은 세례시에 받는 주입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구원은 자신이 세례를 받은 공로에 의한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든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는 전연 아니라고 주장한다.

b. 알미니안주의의 견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지만 부분적으로 인간이 협동해야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께서 무조건으로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믿을 때에 그 믿음을 조건으로 하여서 주시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c. 칼빈주의의 견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자격과 조건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받을 택자를 기억하시고 그 택자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

이와같이 구원을 받을 처지와 입장이 되지 못하는데도 구원하여 주시므로 구원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다. 사람들의 어떤 선행이나 공로도 구원의 조건은 못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단지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시는 구원의 방편으로 보아야 한다.

참조: 헬라 원문에 "믿는다"는 "피스튜오"인데 거의가 동사 독자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반드시 전치사를 동반하는데, 예를들면 "엔"(in...안에) 혹은 "에이스"(on,to...에게로) 등이다. 다시 영어로 표현한다면 "believe in Jesus Christ", "believe on him" 등이다. 이것은 믿음이라는 것은 반드시 "예수 안에서", "예수에게로 향하는" 적극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니, 예수를 배놓은 믿음은 있을 수 없다는 표현이다.

 

제 3과 칭의와 양자

Ⅴ. 칭의(의롭다 하심, Justification)


 

(1) 칭의의 의미

칭의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에 근거하여 죄인에 대한 율법의 모든 요구가 만족된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재판적 행위이다. 즉 칭의는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표출됨으로 인해 죄인의 신분이 바뀌어 의인으로 불리워지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여 택한 성도가 실제는 자신의 죄된 허물로 인하여 의인이 아니나 그리스도께서 대신 그 죄의 허물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셔서 결과적으로 성도를 율법상으로는 의인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한편 구원의 서정에 있어 칭의는 죄인의 내적 생활이나 변화와 직접 관계없으며 다만 법률적 신분에만 관계됨이 중생, 회심, 성화와 같은 다른 개념들과 다른 점이다.

(2) 칭의의 특징

칭의는 죄인 자신의 내적 변화나 갱신의 과정이 아니라 법정적 선언으로 단번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구원 서정상의 다른 개념들과 구별된다. 특히 칭의와 그 내용상 구분되는 성화와 비교하여 칭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죄책 제거, 곧 죄에 대한 형벌의 완전 면제는 즉각적이고 단회적으로 그리고 사전에 미리 일어난 칭의의 결과이나,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구출은 성화에 의해 점차적으로 이루어진다.

② 칭의는 외부적으로 일어나는 법정적 선언의 결과 신분이 변하는 것이지만, 성화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인간의 내부 상태의 변화이다.

③ 칭의는 믿음과 함께 단번에 이루어지나, 성화는 신앙의 생활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④ 칭의는 성부에 의해, 성화는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다(롬 8:32-34).

(3) 칭의와 반복적 회개와의 관계

주 기도문에서는 죄의 용서를 위하여 매일 기도할 것을 가르친다(마 6:12). 이것은 한 번 칭의 받은 후에도 계속해 반복적 회개가 필요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여기서의 회개는 칭의 받기 이전의 회개와 질적으로 다르다.

① 칭의 후 반복적 회개는 정죄함이나 영원한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② 반복적 회개는 재판장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되신 하나님 앞에서 하는 죄의 자백이다(요일 1:9).

③ 반복적 회개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소원해지고 흡사 칭의 이전 상태로 돌아간 듯한 죄책감이나 슬픔 같은 것들을 제거하기 의해 요청된다.

④ 반복적 회개는 보혜사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성부 하나님의 채찍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⑤ 반복적 회개의 결과 하나님과 아버지로서의 교제와 기쁨이 회복된다.

(4) 칭의와 최후 심판의 관계

칭의를 받은 성도도 최후의 심판 날에 심문을 받는 것(마 12:36)은 다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① 칭의 속에 감긴 혜택이 최후의 날에 법적 절차로 효력을 발생할 기회를 가질 것을 뜻한다.

②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받은 개인적 칭의가 전 우주와 그 구성원 앞에서 재차 선포됨은 최후의 날에 공적으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며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의식을 통하여 자기 영광을 선포함과 더불어 성도 각 개인에게 공식적이고 영원한 칭의가 선포됨을 뜻한다.

(5) 그리스도의 의(義)의 전가

칭의는 아직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된 결과로 주어진다.

따라서 칭의는 인간의 공로나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신적 사역에 의한 것이다.

① 전가란 법적 권리나 책임을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② 의의 전가란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에게 직접 주입되어 신자 자신이 실제로 거룩하고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③ 우리가 받을 죄책이 그리스도에게 옮겨지고 대신에 그리스도의 의의 공로와 보상이 우리 것으로 법정에서 계산되는 것이 바로 의의 전가이다(요일 1:9).

 

Ⅵ. 양자

(갈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1) 양자의 정의

① 양자 삼으심은 죄인을 세속 가족으로부터 하나님 자신의 가족 중에 전입(轉入) 시키는 하나님의 행위이다(Calvin).

②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수효 가운데 들게 하고, 그 모든 특 권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2) 양자의 성질

a. 법적으로 양자

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인이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1:12).

② 물론 양자 삼으심의 주권자는 "성부 하나님"이시다(요일 3:1).

b. 영적으로 양자

① 그리스도인은 중생했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갈 4:6).

② 물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롬 8:15),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다(롬 8:31).

(3) 양자의 기업과 축복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가?

① 자녀된 특권을 받는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을 왕자 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누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 된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그래서 바울은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했고,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고 한 것이다.

② 하늘의 유업을 받는다.

어떤 아버지에게 신실하지 못한 아들이 있다. 그런 그 아들의 친구는 매우 신실하다. 신실하지 못한 아들과 매우 신실한 아들의 친구 그러나 아버지가 유산을 남길 때 누구에게 남기겠는가? 마찬가지이다.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7).

③ 절대의 보호를 받는다.

황태자에게는 경호원이 따른다. 그리하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이와 꼭 같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잠시도 잊지 않으신다(사 49:15). 그리고 영접하시며(시 27:10), 그의 출입을 영원까지 지키신다(시 121:8).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한 것이다.

a. 양자의 기업

양자로서의 법적 특권은 미래 하늘 나라에서만 누리게 되는 거이 아니라 과거, 현재에도 깊은 관계가 있다.

① 과거와의 관계

양자로서 성도는 율법의 형벌이 주는 공포에서 해방되었고, 죄의 사슬에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롬 8:15, 갈 4:1-7).

② 현재와의 관계

양자로서 성도는 하나님의 포도원을 기업으로 물려받았으며 성령의 은사와 천부적 재능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길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성도들간의 교통, 그리스도와 교통의 특권도 누린다. 또한 성령의 보호하심과 일용할 양식 을 공급받으며 위로와 평강도 얻게 된다.

③ 미래와의 관계

부활과 영광과 영생을 얻게 되며 그리스도와 같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며, 하나님과 앞서 간 성도들과 함께 사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롬 8:17,23).

 

이런 면에서 성경은 양자를 후사(後嗣)로 표현한다.

b. 양자의 축복

①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요 17:23)

② 아버지의 보호와 양육의 대상(마 6:33)

③ 아버지의 관심인 자녀의 호칭(요일 3:1)

④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갈 4:6)

⑤ 하나님의 후사로서 받을 기업(롬 8:17)

(4) 양자의 증거

a. 양자가 되기 이전

① 죄악의 노예(롬 6:16)

② 죽음의 노에(히 2:15)

③ 마귀의 노예(엡 2:2)

④ 진노의 자녀(엡 2:3)


b. 양자가 된 이후

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롬 8:14)

② 빛의 열매를 맺는다(엡 4:8-9)

③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간다(엡 3:12)

④ 형제에 대한 사랑을 가진다(요일 5:1)

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갈 4:5)

(5) 양자의 의무

하나님의 자녀라고 어찌 그 특권을 누리고만 있을 수 있는가? 은혜를 입은 것만큼, 축복을 받은 것만큼, 그 의무에 대하여 더욱 성실해야 한다.

① 행실이 착해야 한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② 순종을 해야 한다

(행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③ 감사를 드려야 한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6) 중생과의 관계

중생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영적 출생을 가리키며 중생과 동시에 우리는 실질적인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동시에 우리는 실질적인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법적 지위는 양자됨에서 얻는다. 즉 중생에 출생에 해당된다면 양자는 출생신고에 해당된다.

(7) 칭의와의 관계

칭의는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측면에서 법적으로 양자됨과 영생권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양자는 능동적인 측면에서 법적으로 양자의 권리와 하늘나라의 기업에 대한 상속권을 누리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양자는 칭의의 결과로서 죽어지는 것이므로 원인과 결과라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8) 성화와의 관계

양자로서 법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할지라도 온전히 하나님 자녀답게 되었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즉 양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아직 육신의 소욕이 남아 있고 성결치 못한 점들이 많이 있다. 이런 요소들은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점차 성결케 변화되어 가야 한다. 따라서 양자는 신분의 획득을, 성화는 신분에 걸맞게 변화 되어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Ⅶ. 성화(거룩하게하심)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성화란 구원받은 성도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죄와 부패의 영향력에서 떠나 성결케 되고 선을 행할 능력을 얻게 되어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한편 중생과 칭의, 양자가 즉각적인 변화에 의해서 된 것이라면 성화는 지상에서 육신의 몸으로 살고 있는 동안 계속해서 되어져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이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깨끗이 지키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성령의 부단한 정화(淨化)작업이라 할 수 있다.

(1) 성화의 특징

① 성화가 소극적으로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죄의 성향을 제거하는 것이 나, 적극적으로는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 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는 것이다(롬 6:6).

② 성화는 주로 신자의 내면 생활에서 진행되나 결국 외면 생활까지 변화를 일으키며, 사람의 영혼과 육체, 지, 정, 의를 포함한 전인적(全人的) 변화를 가져온다(롬 12:1, 살전 5:23).

성화는 현실적으로 신자 안에 있는 죄와 죄책으로 인한 불안, 근심, 공포 등을 제거해 주며 기쁨, 소망, 평강을 증진시켜 준다.

④ 중생에 의해 새 생명을 얻은 신자라면 반드시 성장하며 성화되어 간다.

⑤ 성화는 현세에 완성되지 않는다 즉 영혼의 성화는 신자가 죽을 때에, 육신의 성화는 세상의 종말 곧 육체의 부활시에 완성된다(롬 3:10).

그러므로 성화는 "전 생애적 "이라 할 수 있다. 신자는 그가 살아있는 한 죄와 더불어 계속적인 투쟁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약3:2,빌 3:12). 영과 육의 끊임없는 일생의 투쟁이다. 신자는 늘 자기 죄를 고백하고 또한 죄의 용서를 위해 늘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자신을 씻어내고 쳐서 복종시키는 "경건 생활"이 일생을 두고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 성화란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다. 다만 "완전"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완전성화는 죽어야 가능하다.

⑥ 성화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공작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협력하는 하나님의 공작 이다. 이 뜻을 밝히 말씀이 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라고 한 말씀이 그것이다. 즉 다시말하면, "소명부터 양자까지"는 성령의 단독 사역에 의해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구원작업인데 비해 성화는 인간의 내부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 지는 점진적 "신인협동"의 작용이라 말 할 수 있다. 앞의 구원론에 대한 전체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중생받은 그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인간은 성화의 과정에 들어간다. 그것은 장기적인 과정을 거쳐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재 창조적인 성결 작업이다.

성화는 중생사건처럼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이 사실 이다. 그러나 성화는 감나무 밑에 드러누워 입 벌리는 식의 무책임한 침체가 아니다. 중생했다고 예수 다 믿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아니된다. 이제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고자하는 요구에 응답하여 인간 스스로가 상호협력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3) 성화의 방편

성화는 신인 협력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성령은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성화의 방편들을 사용하신다. 따라서 신자들은 지, 정, 의를 사용하여 성화의 방편들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때 내적, 외적 생활의 성숙을 빨리 이룰 수 있다.

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신자들에게 거룩한 생활의 객관적 표준을 제시하여 영적 활동의 동기와 목적,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가르쳐 준다(벧전 1:22, 벧후 1:4).

② 성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집행되는 성례는 신자들의 심령에 성령의 감화를 깨닫 게 하여 성화에 큰 유익이 된다(롬 6:3, 고전 12:13).

③ 섭리적 지도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와 말씀을 통하여 신자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적 지도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롬 2:4, 히 12:10).

④ 기도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대화와 교제가 성도의 거룩함을 증진시켜 준다

(4) 성화와 선행(善行)

성화는 성도의 외적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며 선행이라는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나 모든 선행이 성화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선행은 세속적 선행과 영적 선행으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① 세속적 선행

중생하지 못한 자연인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의해 선행을 행한다(롬 2:14).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내면적인 순종이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목적으로 행하는 선이 아니라 자연적인 생활의 필요에 의해 행하는 선이다.

② 영적 선행

성화의 열매로서의 선행이라 하더라도 율법의 요구에 일치하는 완전한 행위는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는 율법을 완전하게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중생에 의해 주어진 거룩한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일 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행이 된다. 즉 영적 선행은 중생한 자가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성향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동기로 행하는 것이며(마 12:33), 그 궁극적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란 점에서 세속적 선행과 구별된다(고전 13:31).

* 성화와 율법

1. 율법 준수의 필요성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요, 율법을 준수하여서 얻은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여전히 율법을 준수해야할 필요성이 남아 있다. 율법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성도들이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지적될 수 있다.

①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나타나 있으므로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할 수가 있고(신 29:29).

(신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②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더욱 성화를 힘쓰게 되며

③ 율법은 성도들의 감사 생활의 규칙으로서 자발적인 준수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2. 율법 폐기론(Antinomianism)

율법 폐기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율법에의 순종을 통해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켰으므로 신자는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해방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신자는 무슨 일이든 믿음으로만 행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율법 폐기론은 다음 이유들로 받아들일 수 없다.

①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의 복사판이기 때문에 여전히 지켜질 것이 요구된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②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받는 것뿐만 아니라 율법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영에 동참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롬 8:7, 갈 5:22-24).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③ 성경이 말하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율법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요, 율법을 지키는 의무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에 불과하다(약 2:26).


제 5 과 성도의 견인과 영화

Ⅷ. 견인(끝가지 붙들어 주심)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한 번 선택하여 부르시고 중생시켜 회심하여 칭의된 양자는 결코 버리움을 당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일단 선택된 자는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

(1) 견인(堅靭)의 의미

① 견인은 굳을 견과 참을 인이다. 따라서 성도가 굳게 믿고 참아야 된다는 교의로 오해하기 쉽다.

② 견인은 문자 그대로 "참고 꼭 붙잡는 행위"인데, 내가 굳게 믿고 내가 끝까지 참는 종교가 아니다.

③ 견인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굳게 붙잡으사 마침내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교의이다.

④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를 보전하는 것이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Ⅸ. 영화(영화롭게하심, Gloryfication)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 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소명, 중생, 칭의는 구원을 보장하는 과거적 사건이며, 성화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현재적 사건이라면, 구원의 최종 단계인 영화는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죄와 죄책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영원한 행복으로 들어가는 미래적 사건이다. 즉 영화는 구속의 전 과정의 완성이다.

(1) 영화의 개념

영화는 죄의 세력과 부패로부터의 해방이란 소극적 측면과 천국의 영원한 행복으로 들어간다는 적극적 측면을 지닌다. 또한 최후 심판 이후의 완전한 영육의 영화라는 좁은 의미와 각 개인 성도의 사후 영혼만의 영화까지를 더 포함한 넓은 의미의 접근이 가능하다.

① 좁은 의미에서의 영화

성도 개개인이 죽을 때가 아니라 전 성도가 세상 끝날 그 육신이 부할할 때에 영육이 함께 들어가게 되는 천국에서의 궁극적 행복을 가리킨다.

② 넓은 의미에서의 영화

성도 개개인이 죽을 때에 결국 죄의 세력과 부패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그 영혼이 먼저 영화의 상태에 이르고 후에 육체가 부활할 때에 영육이 함께 영화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가리킨다.

(2) 영화의 시기

성도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 즉각적으로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육신은 무덤에서 잠자고 있다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과 함께 부활하여 썩지 아니할 새 몸을 입고(고전 15:51-53) 완전한 영화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