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基督論]성경.교회.예배.

Ⅱ.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신론)

好學 2012. 1. 20. 21:30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신론)

 

* 여기에서 특수계획이란 구원계획을 말한다.

 

제 1 과 하나님의 존재

1. 하나님의 존재하심

(딤전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하나님은 정말 계시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물론 인간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는 없으나, 다만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알 수는 있다.

첫째, 일반 계시를 통한 앎이다(종교성).

(1) 선천적으로 아는 앎이다.

이를 다른 말로 선천적 지식 혹은 생득적 지식이라고 부른다.

앞과에서 말했듯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절대자"에 대한 흠모에서 오는 종교심이 발생한다고 했다. 역시 인간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별수 없이 종교성이 있는 존재이다(행 17:22).

인간에게는 밖으로부터의 경험이나 탐색의 결과로 얻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외에도 필연적으로 마음속에 내재한 종교적 소질이 있다.

(행 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 후천적으로 아는 앎이다.

또한 인간은 선천적 지식 뿐아니라, 하나님의 일반계시 즉 천문학을 하다가, 의학을 하다가, 생물학을 하다가...,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노력과 연구를 통해서 일부 획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식이나, 역시 완전한 것은 아니다.

(사 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둘째, 특별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앎이다.

앞과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인간은 스스로 도저히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섬길 수도 없는 즉, 일반 계시(자연계시)로써는 구원자 하나님을 전혀 알 수 없다고 배웠다.

그리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어떤 특별하신 "자신의 나타냄"(계시)을 받지 않고서는 아니되니, 그것의 최고의 방법은 바로 성경(특별계시)을 통하여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성경은 결코 하나님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으로 말하지 않고 항상 살아 계셔서 자기의 창조물들과의 여러 관계에서 자신의 속성들을 나타내시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추호의 변론도 없이 아주 분명하게 일러준다.

성경 서두에 이미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하여, 무신론자를 한마디로 우둔하고 악한 자라고 못박는다.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여 시작하고, 해석하여 결론에 이른다. 즉,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고 순종하며 생각하는 것이다.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2. 하나님의 본질(본체)

본체란 모든 의식과 활동의 근원이 되는 주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실체(實體)라

하기도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먼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 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 따라서 지식이 커감에 따라 이에 대한 관념도 점점 구체화 된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능력은 오염되었으므로 여타 일반 존재들로부터의 유추(類推)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데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 주신 성경을 통해서만 그것도 신앙을 가지고 읽을 때에만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조차도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 인간 구원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만 보여 주셨으므로 부분적 지식만을 소유할 수 있다.

1) 영성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 이는 하나님이 자의식적(自意識的)이고 자기 결정적 존재이며 동시에 어떠한 육체에 비견될만한 것도 가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순수한 영적 존재이다(딤전 6:16).

이 말은 하나님이 어떤 종류의 육체를 가지셨거나,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눅 24:30).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하는 따위는 엄청난 모욕이다. 오늘날 카톨릭 교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육신의 눈으로 영을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요,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이다.

첫째로, 만약 하나님이 영이시라면 어찌하여 성경은 하나님이 신체를 가진 자처럼 하고 있는가?

여호수아 4:24에는 "주님의 손", 왕상 15:5에서는 "주님의 눈들"을 볼 수 있다. 또 출 24:10에는 모세와 다른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았다"고 했으며, "그 발 아래는 청옥을 편 듯하고"라는 등등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이러한 표현들은 하나님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의인화(擬人化)하여 표현한 데 불과하다. 많은 곳에서 사람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의 출현을 언급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실제로 본 대로 묘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영물들인 천사들이 인간의 모양으로 자신을 드러내듯이 그리스도께서도 구약 때에 그러하셨다. 칼빈 선생은 이것을 "신인(神人)으로서 장차 나타나심에 대한 서막"이라 칭했다.

하나님의 형상이 실상으로 나타난 유일의 모습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둘째로, 만약 하나님이 불변하시다면 성경이 마치 그 분이 변하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시 된다.

창 6:6에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이 후회할 때는 그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러나 불변하시다면 어떻게 탄식할 수 있는가?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이와같이 말할 때 성경은 언제나, 사실상 인간이 먼저 변함을 나타낸다고 대답한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관계에 있어서 변한다. 그러므로 변화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거룩하시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했을 때에 인간은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 가지시는 거룩하신 진노 하에 처하게 된다. 하나님이 불변하신 이유는 자신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그가 행하시는 일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는 항상 그의 완전하신 본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한 피조물이 악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슬퍼하시게 된다. 하나님 자신의 불변하신 거룩을 고려할 때 하나님은 가히 변할 수 없으시다.

2) 생명성

하나님은 생명이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살아 계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생명(生命)이심은 결국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永生)의 소망을 제공하는 것이요, 그것이 부활(復活)의 사건으로써 증명된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3) 인격성(人格性)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라고 말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자기 결정(自己 決定)을 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어떤 절대적 힘 혹은 세력으로 알아 전혀 인격이 없는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이 있는데 이는 큰 잘못이다.

성경 어디에서나, 하나님은 인간과 교제도 하시고, 말씀도 하시고, 생각도 하시고, 탄식도 하시고, 기뻐하기도 하시고, 인간생활 속에 들어와 더불어 호흡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의 임재는 구약과 신약에 서술되어 있는바와 같이, 분명히 인격적 임재이시다. 오기도 하시고 가기도 하시며, 인간과 말씀하시고, 인간이 신뢰하며, 인간의 경험속에 들어가시고, 시험과 고난에서 인간을 보호하시며, 또한 승리의 희열로 인간의 마음을 채우시는 인격적 하나님으로 묘사되었다. 더욱이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는 인격적 계시인데, 하나님의 인격적 나타남의 최고의 표현이 바로 성육신(Incarnation)되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보이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4) 완전성(完全性)

하나님은 무한한 완전성 때문에 그의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신다. 그는 어떠한 제한이나 불완전한 것 없이 그의 존재와 덕(德)을 소유하신다.

그는 무한히 완전한 하나님으로써, 한계나 제한이 없을뿐 아니라, 숭고함과 형언키 어려운 위엄 속에서 그의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시는 것이다.

5) 단일성(單一性)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무한하신 하나의 영이시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 다른 요소들이 혼합되어 존재하는 양상을 띠지 않으심을 보여 준다. 즉, 절대 완전하심으로 자존(自存)하시는 하나님은 외부로부터의 어떤 도움도 필요치 않으신다.


제 2 과 하나님의 이름(名稱)

사람의 이름은 그 인격의 대명사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의 신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의 고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계시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방 종교는 모두 사람에 의하여 신들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어떠한가?

하나님이란 명칭은 하나님의 자신의 여러 가지 성품과 활동하심(사역)을 나타내고 있는 특수한 이름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1) 구약에 나오는 명칭

a. 엘

이는 하나님을 지시하는 가장 단순한 명칭으로서, 제일(first), 주(Lord), 혹은 강한(strong), 힘있는(mighty) 등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가지신 대주재임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b. 엘로힘

이는 복수형으로 아마도 위에 설명한 엘과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한 듯 하며, 이는 위엄하신 하나님, 창조주와 통치주 하나님으로서의 일반적인 면을 지시하며, 경외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c. 엘리욘

숭고한 자, 즉 숭배와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임을 나타내 주는 명칭이다.

(창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d. 주(主) (아도나이)

① 이는 재판한다, 통치한다의 의미이다.

즉, 하나님은 전능하신 통치자, 모든 것의 굴복을 받으시는 주이심을 지시한다.

②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명시하는 이름이다.

e. 엘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것에 능하신 권세있는 자로서 백성의 위안과 축복의 근원이 되는 분임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출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f. 여호와

이 이름의 출처는 출애굽기 3장 14절로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즉, 영원 자존자라는 말이다. 특히 언약에 있어서 전혀 변함이 없는 신실하신 분임을 표현하는 명칭이고, 또한 구원자라는 의미도 강하게 나타난다.

(출 6: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출 6: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2) 신약에 나오는 명칭

신약에 나오는 명칭들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구약의 이름들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 뿐이다.

a. 하나님(데오스, Theos)

이는 구약의 엘, 엘욘의 동의어로 하나님이 전능자이심을 나타낸다. 흔히는 "나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과 같이 소유격의 표현과 같이 사용되어 하나님께 개개인의 인격적 관계를 맺고 계심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녀들의 하나님이시며 또는 그들 각자의 하나님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b. 주(主, 큐리오스, Kurios)

이 명칭은 "주"라는 말인데, 하나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사용된 이름이다. 만물 특히 신민(神民)의 소유자요 지배자로서의 하나님, 왕의 권세와 권위를 가지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c. 아버지(파테르, Pater)

이 명칭은 모든 신자들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을 지칭하니 하나님과 신자는 "부자지간(父子之間)이라는 따스한 가족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다정스런 명칭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많은 것일까?

모세가 하나님에게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하고 물었을 때, 하나님은 "여호와"가 나의 영원한 표호(俵筃)라고 가르쳐 주었다(출 3:13-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다. 그 밖의 호칭은 본명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여러 성품과 사역에 대한 이름들이다.

 

* 참조(히브리어로 나타난 하나님의 8가지 이름)

하나님의 이름들의 뜻을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들이 많아집니다

1.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에스겔 48:35)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 나는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겔 48: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지라

(삼하 7: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2.여호와 로이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다(시 23:1)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보호하신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 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3.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나의 제공자이시다(창 22:14)

내가 요구하기 전에 하나님은 내가 필요한 것을 아신다

(창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신 1:33)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4.여호와 로폐

하나님은 나의 치료자이시다(출 15:26)

하나님은 나의 신체의 병, 감정과 인간 관계를 치유하실 수 있다

(출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시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시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시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5.여호와 치데크누

하나님은 나의 의다(렘 23:6)

하나님께서 예수님 때문에 나를 받아 주시고 용서하신다

(렘 23: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원래 의인은 참으로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을 가리키는데, 거룩한 하나님의 보혈은 우리를 일순간에 의인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셨으며,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게 해 주었습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6.여호와 므카디쉬

하나님은 나의 거룩함이시다(레 20:8)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예수님 같이 해주신다

(레 20: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7.여호와 살롬

하나님은 나의 평화이시다(삿 6:24)

환경을 이기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평화를 주신다

(삿 6: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롬 15: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롬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대상 22:18)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느냐 사면으로 너희에게 평강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이 땅 거민을 내 손에 붙이사 이 땅으로 여호와와 그 백성 앞에 복종하게 하셨나니

8.여호와 닛시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시다(출 17:15)

하나님께서는 싸움과 전쟁에서 나의 승리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승리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출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제 3 과 하나님의 성품

우리는 이제 하나님은 어떤 성품을 가지신 분이신가를 논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이것을 "하나님의 속성(속성(屬性), attributes)"이라고 칭한다.

하나님의 속성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절대적 속성이요, 둘째는 상대적 속성이다. 절대적 속성이란 하나님 혼자서만 가질 수 있는 단독성품이요, 상대적 속성이란 하나님 뿐만 아니라 인간도 같이 가질 수 있는 상통하는 성품이다.

1. 절대적 속성

이 속성은 인간과 공동으로 갖지 않고 하나님에게만 있는 고유의 성품이라는 말이다.

(1)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다(자존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최후 최종의 존재이다. 어떤 다른 존재에게서 발생된 자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계시는 분이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도 계실 영원한 현존(現存)의 분이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인간처럼 외부의 어떤 것에 그 존재를 의존하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그의 존재 근거를 자신 안게 가지고 계시는 필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원인(原因)이 없이 존재하시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와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요 5:26)"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존성을 잘 나타내 준다.

하나님은 그의 존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사상(롬 11:33,34), 의지(롬 9:18),

능력(시 115:3), 계획(시 33:11)에 있어서도 자신 이외의 다른 원인을 갖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자존성은 독립성이라고도 불리운다.

(사 4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시 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 33:11)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2)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다(불변의 하나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생성하거나 소멸하지 않고 그의 속성이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이다.

즉, 우리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영원불변하시니, 그의 계획이 그러하고, 언약이 그러하며, 성취가 그러하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성서가 가르치는대로 하나님에게 동작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의 내적 존재에서, 속성에서, 목적에서, 행동의 동기(動機)에서, 또는 약속에서 불변하시다는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이 "뉘우치신다", "뜻을 돌이켜", "후회하신다"는 등의 표현이 있는데 이것 역시 신인 동형 동성적 표현(神人同形同性的 表現)으로 비유와 유추적인 의미를 갖는 표현이다. "뜻을 돌이켰다"할 때 그 변경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계에 있다. 하나님의 불변적 공의는 의인과 악인을 다르게 처우하시는데 만일 의인이 악인이 되고, 악인이 의인이 된다면 그 처우를 변경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들이 회개할 것도 미리 아셨으니 뜻을 변하심이 아니다.

아모스 7장 1절에서 3절에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려 하다가 아모스의 기도로 뜻을 돌이키심은 하나님의 뜻이 변하신 것이 아니다.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공변된 형벌과 동시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신인 동형 동성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21장 4절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 두로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고, 가이사랴에서는 아가보 선지자가 성령이 말씀하신다고 하면서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할 것을 경고했다.

이 구절들을 얼른 보면 하나님이 처음에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막으려 하시다가 바울이 듣지 않으니 그만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허락하신 것같이 보이신다. 그러나 사건 전체를 보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바울을 가지 못하게 막은 것은 신앙을 무장시키고 그로 하여금 용기를 분발시켜 나아가게 하려는 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에 관하여 생각할 때에 그것을 종합하여 전체적으로 살펴서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과 근본적인 목적을 찾아내지 못하면 오해하게 된다.

(히 13: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3) 하나님은 제한을 받지 않는 분이다(무한하신 하나님)

무한성은 외부의 어떤 요소로부터도 전혀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완전성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무한성은 하나님이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하여 그의 실유(實有)나 속성들에 제한이 없음을 말한다. 즉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주에서 제한을 받거나 우주 안에 국한되지 않으신다(왕상 8:27)).

그리고 이 무한은 비록의 양의 무제한한 가능성을 포함하지만 그 자체는 양적 개념이 아니라 질적 개념임을 알아야 한다.

(왕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① 본체적 의미에서의 무한성(완전성)

인간은 지식이나 지혜, 사랑, 의 등에 있어 육체와 죄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어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롭고, 무한한 사랑이며, 의롭고, 거룩하시니(욥 11:9) 모든 것에 완전하시다.

(욥 11:9)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② 시간적 의미에서의 무한성(영원성)

하나님의 무한성, 곧 하나님의 영원성은 시간과의 관계에서 고찰할 때 칭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은 무시무종(無始無終)하시며 모든 시간의 연속으로부터 자유하시고 초시간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언젠가는 죽는다.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한 학자들의 설명)

 


하나님의 영원성은 하나님이 모든 시간적 제한과 모든 순간들의 연속 이상에 높이 오르시고 그의 존재 전부를 하나의 분할할 수 없는 현재에 소유하시는 하나님의 완성(完成)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時制)구분이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이 없고 모든 것이 항상 현재이시다.

③ 장소적 의미에서의 무한성(편재성)

하나님은 시간뿐만 아니라 장소에 있어서도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공간을 초월하심과 아울러 그 모든 공간들 속에 함께 내재하고 계신다.

다시 말해서 공간을 초월하시는 것을 가리켜 무변성(無邊性) 또는 무량성(無量性)이라 하고, 모든 공간 속에 계시는 것을 편재성(偏在性)이라고 부른다.

(왕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렘 23: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렘 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행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행 7: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행 7: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④ 하나님은 단순한 분이시다(단순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단순성)

우리가 하나님의 단순성(單純性,simplicity)을 말할 때, 그는 혼성(混成)된 분이 아니라는 점과, 어떠한 의미에서도 분할(分割)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유일성을 숫자적인 의미에서 보아 하나님은 오직 하나의 절대 자존, 무한, 불변하신 분이라고 할 때는 단수성(單數性)이라고 부르고, 한 분이신 하나님은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구성되었거나 나뉘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할 때는 단순성(單純性)이라고 부른다.

이 속성은 하나님의 삼위가 하나님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부분이 아니라는 의미와 하나님의 속성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는 의미, 그리고 그 속성들은 하나님의 본질에 첨가된 무엇이 아니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신 4: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딤전 1: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2. 보편적 속성

하나님과 인간이 상통하는 성품, 즉 인간과 공통으로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인데, 차이점을 말한다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품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성품은 무한하고 완전한 성품이라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지식(知識)

하나님은 실재적인 것이나 추상적인 것이나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의 것은 물론 모든 지식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하여 완전하고 영원한 지식을 가지신다.

그런데 이 지식은 하나님안에 고유하게 있는 것이요, 외부에서 섭취된 것이 아니다. 즉, 그의 지식은 어디에서 배워 아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가지는 지식이다.

그것은 총포괄적(總包括的)이기 때문에 전지(全知,omniscience)라고 불리워진다.

(사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겔 11:5)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2) 하나님의 지혜

① 하나님의 지식이 이론적인 앎을 강조한다면 지혜는 그것의 적용과 관계된다. 성경의 여러 구절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고 있으며, 잠언 8장에는 심지어 이것을 인격화하여 말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고 있다.

(시 19:1-7;104:1-34;33:10).

유명한 조직신학자 챨스 하지는 "하나님의 지혜는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는 최대한의 목적으로 선택하시고, 자기 사역의 모든 부분에서 그 목적을 달성할 가능한 최선의 방편을 선택하고 지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와같은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 영원, 불변하시다.

②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지식이 특수한 면으로서 그의 목적에 대한 수단의 적용 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지혜는 창조에서(시 19:1-7;104:1-34), 섭리에서(시 33:10,11;롬 8:28) 그리고 구속사업에서 볼 수 있다(고전 2:7;롬 11:33).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 하나님의 선(善)

이것은 하나님께서 타자에 대한 선행으로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는 그의 선인 것이다. 다시말하면, 행동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선, 곧 다른 사람에 대한 선행에서 자체를 계시하시는 그의 선인 것이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막 10:38)라는 성경 구절은 하나님이 모든 선의 근원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선은 인간에게 있어서 좋다고 느껴지는 것 정도의 개념이 아니라 근본 선이신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4) 하나님의 사랑

이것은 피조물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선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신고로 이성적 피조물들을 특별한 관심의 대상으로 사랑하시며 비록 죄악된 상태에 있을지라도 그의 사랑을 완전히 철수하지 않으신다(요 3:16, 마 5:44,45). 동시에 신자들에게는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하신다(요 16:27, 요일 3:1).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요 16: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① 하나님의 은혜

이는 특히 죄인이므로 멸망받을 수밖에 없었으나 구원의 대상이 된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선이다. 즉, 구원이나 행복은 인간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건없이 베풀어주는 은혜 때문이다.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② 하나님의 긍휼

이는 범죄의 결과로 가련한 상태에 있는 죄인들을 그들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을 계획하기에 이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그의 긍휼하심으로 병든 자에게는 고침을, 재난 중에 있는 자에게는 놓여남을, 절망중에 있는 자에게는 소망을 주신다.

(신 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엡 2: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③ 오래 참으심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악을 바로 심판하실 수 있으나 노하시기를 더디하심으로

(딤전 1:16), 죄인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치 않는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으로, 패역한 죄인을 즉시 멸망 시키지 않고 오래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의 사랑이다(롬 2:4).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없다면 멸망을 면할 인생이 없을 것이다.

(딤전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 하느뇨

(4) 하나님의 거룩하심

거룩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카도쉬(৒ࢫࠃএ)라고 하는데 "벤다, 분리한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구약의 가장 탁월한 종교적 용어들의 하나로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적용된다.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이중적이다.

① 본래적 의미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절대적으로 구별되어 무한한

엄위 속에서 그들 위에 높이 올라 계신다는 것을 표시한다(사 6:1).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거룩은 하나님의 초월적 속성중에 하나이며 가끔 중심적 최고 완성으로 언급된다.

하나님은 그를 계시하시는 모든 것에서, 즉 지식과 자비와 공의와 전능에서 다 거룩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위엄적 거룩이라 칭할 만하다.(출 15:11) (사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출 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② 하나님의 거룩은 또한 윤리적 방면을 특별히 가졌다.

하나님의 윤리적 거룩의 근본 개념도 역시 분리의 관념이지만 이 경우는 도덕 적 악이나 혹은 죄로부터의 분리이다.

그에게는 불순이나 죄성으로부터 완전 구별된 도덕적 완전하심만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거룩은 인간의 양심에 새겨진 도덕률과 하나님 의 특별계시에 계시 되었고 특히 하나님의 최고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났다(행 3:14).

(합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5) 의로우신 하나님

공의(公義)라고 말할 수 있다. 그에게는 불의(不義)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는 공의에 철저하셔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며,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리는 심판관이 되신다. 상선(賞善)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고, 징악(懲惡)은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함이다.

(6) 진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참되시다, 즉 거짓이 없으시다는 말이다. 그의 존재하심이나, 계시(성경) 그리고 그의 언약에 있어서 절대 진실하시므로

거짓이 있을 수 없고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백성의 신뢰의 근거요, 희망의 토대요, 환희의 원인인 것이다.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7) 주권의 하나님

하나님은 그의 "뜻(의지)"이나 "능력 행하심"에 있어서 "자아주권"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의나 죄에 있어서도 그렇다.

하나님은 누가 시켜서 자기의 뜻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고,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행하신다.

또한 그는 한 번 계획하시고 성취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무엇이든지 그의 뜻을 따라 반드시 수행하시고야 만다.

이것을 "토기장이 권세"라고 성경은 말한다(사 64:8, 렘 32:27, 롬 9:19-24).

하나님은 모든 이성적 피조물의 길을 정하시며,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시고, 또한 그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시나, 그러면서도 그의 의지는 그들의 행동을 관리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전능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시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거짓말하는 것, 죄를 범하는 것, 변절하는 것, 자신을 부정하는 것 등, 이 여러 가지를 그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제 4 과 삼위일체

1. 삼위일체의 뜻?

이 교리의 가장 좋고 간명한 정의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5문에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신격에 삼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라. 본체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은 동등이니라".

이것을 쉽게 설명해 보면, 하나님은 본질상 하나이시나, 이 한 분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 불리우는 삼위가 존재한다는 말이며, 여기서 "위(位)"란 인격(Person)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한분이신 하나님 안에는 "세 인격"이 존재하는 바 곧, "성부 하나님이요, 성자 하나님이요, 성령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세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일체(一疜)" 즉, 한 본질 되시는 한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면서도 그 안에 세 인격을 가지고 계신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세분(세 하나님)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다 하나이시며, 그의 영광과 본질에 있어서 동일(同一)하고, 영원하신 한 하나님이신 것이다.

성경은 삼위의 명칭을 항상 성부, 성자, 성령의 순서로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적 실존의 순서를 지시하는 것이며, 시간적 순서나 본체의 지위의 종속을 가리킴이 아니다.

왜냐하면, 삼위는 본체적 실유에 관한 한 실체에서 동일하고, 속성도 동일하고, 영광에도 절대적으로 동일하며, 위적 존위(位的 尊位)에도 차이가 없다.

요한 복음 14장 28절에 "하나님께서 나보다 크시니이다"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중보로 인정하고 또한 비하의 신분으로 그의 인성의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삼위중에 제 2위로 말씀하실 때는 "나와 아버지는 일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30). 신학적 용어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명사는 성질의 동일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독생자(only-begotton-son)는 원어로 모노게네스인데, 이것은 모노와 게네스의 합성어이다.

그러나 게네스는 겐나오(낳다)에서 인출된 것이 아니고, 게노스(종류, 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할 때,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유일한 종류 즉, 바로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란 어구도 생성(生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존재와 우선(優先)을 의미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삼위가 구별되는 일정한 상이한 요소들이 있다.

① 실존에 있어서 성부는 스스로 존재하시며, 성자는 성부로부터 발생을 통하여 존재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하여 존재하신다.

② 삼위의 사역에 있어서 구속 사역과 일반적 정치에 있어 일정한 절차가 있다.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그 계획을 성취하시며, 성령은 성취된 적용을 적용하시는 사역을 한다.

2. 성경이 밝히는 삼위일체

삼위일체 교리는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 또는 철학적 사색의 산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교리이다. 따라서 그 증명도 특별계시에 의거해야 한다.

(1) 구약 성경

구약에서 보통 하나님이라 하면 성부만 아니라 삼위, 즉 여호와로서의 하나님을 말한다.

이 사실은 다음 경우들에서 입증된다.

① 우리(We)라는 복수 표현(창 1:26; 11:7; 시 45:6; 사 6:8; 42:1)에서 이것은 하나님 안에 하나 이상의 인격이 있음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② 여호와의 천사라고 언급한 구절에서 (창 16:7-13;18:1-21;19:1-22;32:22-32;단 3:25;수 5:13) 구약에는 여호와의 천사를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동일한 자로, 다른 한편으로는 그와 구별된 자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동일한 하나님이면서도 그 안에는 인격적 구별이 명백한 여호와의 사자 가 별도로 존재하여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단 3:25)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 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수 5: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③ 이 외에도 삼위가 다소 명백히 지시된 곳이 약간 있다.

(사 48:16; 61:1; 63:9,10).

(사 48:16)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 말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여기서 주 여호와 - 성부 하나님

나 - 성자 예수님

그 신 - 성령을 말씀하고 있다.

④ 이상과 같은 삼위의 구별과 함께 다음 구절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말하고 있다(신 4:35, 왕상 8:60).

(신 4: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신약에서

① 최후의 분부중에서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② 요단강에서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③ 성령의 은사 설명 중에서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 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고전 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④ 바울의 축도(특히 이 구절은 아주 결정적이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3. 삼위의 사역(Works) - 구원론적

(1) 성부 하나님

구원을 계획하시고(예정, 선택), 만물을 창조하셨다.

(2) 성자 하나님

계획된 구원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성취하셨다.

(3) 성령 하나님

성취된 구원을 인간의 마음과 생활에 적용시켜 완성을 이루신다(실시).

제 5 과 하나님의 사역(事役)

하나님의 일하심은 크게 "계획, 창조, 섭리"로 나눌 수 있겠다.

Ⅰ.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선하신 뜻(= 의지)에 따라 자신의 계획이 있으신 것이니, 하나님의 모든 하시는 일(사역)이 곧 그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계획없이 우연히 된 일이란 이 세상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원하신 계획을 분명한 목적을 두고 세워 추호라도 헛되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계획 중에 일반적인 것은 보통 "작정(作定)"이라 하고, 특수한 것을 예정(豫定)"이라고 한다.

1. 하나님의 작정(Decree)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 계획으로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다스리는 그의 모든 사역을 말하니 구원계획까지라도 사실은 그의 작정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이므로 그가 일단 작정하신 것은 반드시 실천되고 성취되어, 영원 불변적인 효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① 성경은 만사 만물, 즉 온 세계, 땅의 모든 거민,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지며, 아무도 그 경영과 뜻에 따라 펴신 손을 돌이키거나 금할 자가 없다고 말한다(사 14:26,27).

(사 14: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사 14: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② 성경은 특별한 사물이나 사건, 즉 인간의 연대와 거처, 수명, 죽는 방법까지 하나님에 의해 작정되었다고 말한다(욥 14:5).

(욥 14:5) 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③ 성경은 구속 사역 즉 신자들의 구원, 그리스도의 나라 건설, 그 나라에서 신자들이 할 일이 하나님에 의해 작정되었다고 한다(고전 2:7).

(고전 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2.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이라는 용어는 자주 혼동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많은데, 그러나 이 둘은 엄밀히 구별된다.

하나님의 작정은 만사 만물에 관계하는 넓은 범위의 하나님의 영원한 도모를 의미하고, 예정은 특별히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도 구원에 관계하는 좁은 범위의 것을 가리킨다.

예정이란 미리 정하셨다(Pre-destination)는 뜻이다.

만세 전에 구원받기로 이미 예정되었다는 의미이니, 예정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특수 계획이고 따라서 "예정론"은 구원이 그 중심내용이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시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차이점

칼빈주의의 5대 교리

알미니안주의 교리

① 전적 부패

죄는 치명적인 것이었으나 아직도 의지의 자유가 남아 있음

② 무조건 선택

예지 예정(조건적 예정)

③ 제한 속죄

보편 속죄

④ 불가항력적 은혜

은총을 항거할 수 있음

⑤ 성도의 견인

성도의 견인여부는 의심스러우므로 연구해봐야 되겠음

인류 중에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요, 예정이다.

예정은 하나님의 일반적 작정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이성적 피조물(특히 타락한 인간)에게만 관계하는 것이다.

(1) 선택(選擇, election)

a. 선택에 대한 성경적 개념

인간이라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어느 일정한 무리만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선택의 교리이다. 좀더 쉽게 말하면, 선택은 인류 중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다.

b. 선택의 종류

① 민족적 선택을 말한다.

하나님은 많은 민족들 중에서 어떤 민족은 택하여 특별계시를 주시고, 특별히 봉사하게 하사 복을 받게 하셨다.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은 포도나무 가지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 었다. 그러나 민족적 선택과 개개인의 구원은 별개의 문제이다.

② 직무적 선택이다.

하나님은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하나님께 특별한 봉사를 할 자들을 선택 하신다. 혹자는 선지자로, 혹자는 제사장으로, 혹자는 섬기는 자로, 혹자는 섬김을 받는 자로 선택하신다.

그러나 이 직무적 선택도 구원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③ 은혜의 외면적 방편으로서의 선택을 말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접하기 쉽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유익한 교제를 나누기에 용이한 형편을 누리도록 하시나, 다른 사람은 평생토록 복음에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여 주시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 편에서의 어떤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다.

이 선택도 구원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④ 구원적 선택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죄인을 구원받도록 부르시는 선택이다.

우리가 논하는 선택은 이것을 의미한다.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c. 선택의 목적

하나님의 선택의 근본 목적은 택자의 구원이다(살후 2:13).

그러나 하나님의 최종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엡 1:6,12,14).

(2) 유기(遺棄, 버리움)

유기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그의 특별 은혜를 주시지 않고 죄 가운데 버려 두셨다가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형벌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다.

(마 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Ⅱ. 창조(創造)

천지창조는 시간의 시작이요, 공간의 시작이다.

그것은 무에서의 유의 창조이니 곧 전혀 없는 것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있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창조의 개념

① 창조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행동이다.

만물은 단번에 성부로부터, 성자로 말미암아, 성령에 의하여 나왔다.

(Out of the Father, through the Son, by the Holy Spirit)

② 창조는 하나님의 자유적 행동이다.

성경은 만물이 기존 물질로부터 필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유의 행동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되었다고 교훈한다.

③ 창조는 하나님의 시간적 행동이다.

태초에(창 1:1)란 말은 시간적 사물의 시작, 심지어 시간 자체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물질도 시간도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독자적으로 존재하시지만 창조는 하나님의 시간적 사역이다. 즉, 하나님은 이미 있는 시간 가운데 태초라 부르는 어떤 시 점에 창조 사역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영원이라는 배후에서 비로소 시간과 더불어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④ 창조는 무(無)로부터 무엇을 만들어 내는 행동이다.

철학자들 중에는 기존 물질로부터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천지의 창조는 기존 재료의 사용 없이 우주 만물을 만들어낸 것을 의미한다. 이 무로부터의 창조는 기독교의 독특한 교리이다.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시 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⑤ 세계는 창조주와 판이(判異)하나 창조주에게 항상 의존한다.

a.세계는 하나님과 판이한 존재이다.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피조물인 세계와 창조주인 하나님 사이에 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세계는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한 부분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과 판이한 무엇이다. 하나님은 세계 위에 높이 초월하여 계시므로 범신론자들과 같이 하나님과 세계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b.세계는 의존적 존재이다.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세계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고, 하나님과 더불어 기동하며, 하나님에 의하여 존재가 유지된다(행17:28).

하나님은 초월적인 신이실 뿐 아니라 세계를 창조하신 후 창조한 세계를 그냥 두시지 않고 세계의 각 부분에 임재하시고 영으로 전 세계 내에 역사하신다.

이것을 일컬어 하나님의 내재성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해 계신다(시 139:7-10, 엡 2:22, 렘 23:24).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시 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 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시 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 시리이다

⑥ 창조의 최종 목적

인간의 창조가 6일간 창조 사역의 절정이며 다른 피조물이 인간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들어(창 1:27-30) 인간의 행복이 창조의 최종 목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이론은 성경적이 아니다. 성경에 그렇게 교훈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인생의 행복이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완전히 실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세계에 많은 고난과 불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론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낳기 때문에 그릇된 이론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의 행복은 분명 창조 목적의 일부이나 결코 최종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창조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신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창조 사역을 수행하신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이성적 피조물에게 영광을 받으시려는 종속적 목적도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이는 결과적으로도 피조물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1. 영적 세계의 창조

하나님은 영적 세계 즉 보이지 않는 것들도 창조하였다.

(1) 천사

a. 천사의 성질

① 천사는 피조된 존재이다.

천사들은 영원부터 있어온 존재가 아니라 피조된 존재라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친다.

그들은 우수한 영적 존재들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옹위하고, 인간(성도)들의 시중을 들 의무가 있다(마 18:10).

(마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히 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② 영적 존재이다.

천사는 영이지만, 어떤 때는 실제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때 그들이 취한 신체가 실제이었는지 혹은 단지 모양뿐이었는지를 말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천사들은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인간보다는 시간과 장소에 관하여 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그들 역시 유한하고 한정된 존재임이 분명하다.

③ 이성적, 도덕적, 불사적 존재이다.

이것은 천사들이 지성과 의지를 부여받은 인격적 존재임을 의미한다. 천사들이 지성적 존재라는 사실은 그들이 영이라는 사실에서 추론할 수 있지만, 성경에도 역시 그렇게 교훈되어 있다(삼하 14:20).

(삼하 14:20)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변하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 이다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하니라

그리고 천사들은 도덕적 성질을 가졌다.

즉, 도덕적 의무 아래서 순종하면 상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

성경은 충성하는 천사들을 거룩한 천사라 하고(막 8:38; 눅 9:26; 계 14:10),

거역한 천사는 거짓말장이와 범죄자로 묘사했다(요 8:44; 요일 3:8-10).

(계 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 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 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그리고 선한 천사들은 사망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사적이다. 이 점에서 천국에 있는 성도들은 천사들과 유사하다(눅 20:35,36). 또 여기에 첨가하여 천사들에게는 큰 능력이 돌려지고 있다. 그들은 비록 전능하지는 못하나 사람보다는 강하다.

(시 103:20; 마 28:2; 행 5:19; 벧후 2:11).

그리고 선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천군을 구성하여 강한 용사들의 군단으로서 항상 주의 명령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시 103:20).

그리고 악한 천사들은 사단의 군대들을 형성하여 주의 사업을 파멸하려고 하고 있다(눅 11:21; 살후 2:9; 벧전 5:8).

그래서 악한 천사들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공중의 권세 잡은 자", "큰 용" 등으로 묘사된다.

④ 대표의 원리를 적용받지 않는 존재이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온 인류에게 사망이 왔고,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해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

이것은 죄나 의가 대표의 원리에 의하여 전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에게는 이런 대표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천사들 은 사람과 달리 한 천사의 불순종으로 인해 모든 천사가 악한 천사로 타락하지 를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의 타락은 개별적인 타락이다. 왜냐하면 천사는 사람처럼 생육의 방식에 의해 번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b. 천사의 수와 조직

(1) 수(數)

성경에 의하면 천사들은 다수로 큰 군대를 구성한다고 교훈한다. 그들을 가리켜 "만군", "천천이요 만만", "군대"라고 한다(신 33:2; 시 68:17)

그러나 천사들은 결혼하거나, 태어나거나 죽는 일이 없으므로 그 수효는 처음 창조시에 다 지음받은 것으로 보인다.

(시 68:17)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2) 조직

성경에는 천사들을 사자(使者), 하나님의 아들들, 거룩한 자들, 순찰자, 영들, 하나님의 병거로 칭하고 있다. 이러한 천사에 대한 명칭들은 성질적 명칭이 아니고 직무적 명칭이다.

① 그룹

하나님의 거룩을 수호하기 위해서 임명된 천사들이다. 이 천사들은 타락한 인간이 생명나무에 이르지 못하도록 낙원의 입구를 지키고, 하나님의 임재장소인 속죄소를 덮고 있으며, 지상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수행한다(창 3:24; 출 25:18; 삼하 22;11; 시 18:10).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삼하 22:11)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② 스랍

이 천사들은 하나님을 보좌에 모시고 서서 하나님의 거룩을 찬양하고 그의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서 항상 예비되어 있다(사 6:2,6).

그룹이 무사(武士)적이라면, 스랍은 귀족적 특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③ 정사, 권세, 보좌, 주관자

이 칭호들은 천사들의 다른 종류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그들 중에 등급과 존위의 차이가 있음을 가리킨다(골 1:26; 엡 1:21)

④ 가브리엘과 미가엘

이 천사들은 다른 모든 천사들과 구별되어 고유 명사로 호칭된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소개하고 해석하는 직무를 가진 것 같고, 특히 긍휼과 약속의 사자인 듯하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영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단 1:16).

미가엘은 천사장이라 칭한 것을 보면 천사들 중에 독특한 지위를 가진 듯 하다.

그는 주님의 권위 아래 있는 군장 중의 하나이며(단 10:13), 이스라엘의 원수에 대항하고 영계의 악한 세력에 대항하여 여호와의 전투를 행하는 용감한 천사이다.

그 이름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리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단 10:13).

(3) 악한 천사

천사는 원래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자기의 위치를 떠나 교만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 지옥에 떨어지므로 악한 천사가 되었으니 그것들이 "사단(붉은 용, 마귀)과 그의 무리(귀신)들이다(벧후 2:4, 살후 2:4,9). 악한 천사들은 완전히 버림받아 소망이 없는 영들이므로 마침내 불못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마 25:41; 계 20:7-10)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2. 물질 세계의 창조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6일간의 천지만물의 창조를 말함이다.

엿새동안 창조하신 후에 일곱째 날에 쉬셨다(창 1:1-3).

첫째날

빛의 창조

넷째날

일월성진(日月星辰)

둘째날

궁창, 물의 나눔(위,아래)

다섯째날

새, 물고기

세째날

땅과 물의 나눔,식물

여섯째날

짐승(육축), 사람


Ⅲ. 섭리(攝理,Providence)

하나님의 섭리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인 하나님의 작정들의 실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섭리란 창조주가 자기의 모든 피조물을 유지하시며 세계에 일어나는 만사(萬事)에 공작하시며 만물을 그 정하신 목적을 향하여 지도하시는 신적 에너지의 계속적 행사"이다.

그런데 신학자들은 이 하나님의 섭리를 일반 섭리와 특별 섭리로 구별한다.

전체로서의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관할을 일반 섭리라 하고(히 11:3; 골 1:16,7), 특별히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그의 자녀들을 돌보심과 관련된 것을 특별섭리라 한다.

즉, 기도 응답과 환난 중에서 구출하심과 위험한 환경 가운데서 은혜 주시고 도우시는 경우를 의미한다(창 28:15; 사 40:11; 단 12:1).

하나님의 섭리에는 보통 삼 요소가 있다고 말하는데, 즉 보전(Preservation), 협력(Concurrence), 통치(Government)를 말한다.

(1) 보전

만물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지켜 나가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비록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자연 세력의 질서를 설립하셨다 할지라도 우주와 그것의 능력들을 유지하심에는 하나님의 계속적 활동이 함께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시고(시 66:8,9) 정신 생활까지도 유지하신다.

(딤전 6: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면 참새 한 마리라도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

(느 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인류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보존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계를 보전하시고 역사를 연장시키는 것은 인류 중에서 택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 때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창 8:21,22).

그리고 베드로전서 3:20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오래 참고 계심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 보전의 의의는 인류 구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 협력

보전이 피조물의 존재를 유지시키는 신적 사역이라 한다면, 협력은 피조물의 활동배후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신적 사역이다.

즉, 협력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창조물과 합력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을 정확히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말한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과 떨어져 자력으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과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 특히 "성화"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즉 믿음과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도록 노력하고 진실하고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애를 써야 한다.

가만히 드러누워 거룩하기를 바란다든가 달란트를 파묻어 놓고 주님의 능력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구원은 협력이 하나님의 독자적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생활과 축복 받음에 있어서는 반드시 협력관계에 놓인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3) 통치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그 존재 목적에 맞도록 다스려 나가신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주적이어서 만세와 만대에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과 그의 행동들을 다 대상으로 포함한다(딤전 1:7; 6:15; 단 4:34).

즉, 태초 이래의 과거, 현재, 미래에 행하시는 모든 관할이 다 포함되는 영원한 신적 계획의 실행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통치하시는 피조물의 성격에 맞도록 그의 법칙을 적용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지만(사 33:22), 역시 전 세계를 통치하시는 왕이기도 하다(시 47:9). 아무것도 그의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 33:22)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시 47:9)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