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과 룻기(3): 룻과 보아스(3장) 6 |
룻 3:9-13 | 한 밤의 약혼식장
룻은 이름 없는 들꽃처럼 피다가 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려면 하나의 전제(前提)가 필요하다. 만약 모압에 그대로 남아 있었거나, 아니면 이삭줍기를 하는 들판에서 피어 버렸다면 말이다. 어두운 들판,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둘만의 만남, 서로 마음이 오고가는 사이, 이 정도면 기회이자 위기의 순간이 동시상영되고 있다.
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
그러나 보라. 룻은 그렇지 않았다. 만약 룻이라는 꽃이 노적가리 곁에서 피었다면 그녀는 거기서 지고 말았을 것이다. 타작이 끝나고 아침이 밝으면 하루 밤 사이에 피었다가 외롭고 쓸쓸하게 그만 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모압에서 피다 지는 꽃이나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룻에게는 보아스의 타작마당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절정이 아니었다. 그녀는 타작마당에서 또 하나의 시작을 감행한다. 그것은 결단이요, 도전이요, 하나의 승부수다.
마치 동족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면서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b) 결심했던 에스더의 심정으로 타작마당으로 나아간 것이다. 말씀만이 희망이었다. 룻은 타작마당 이후의 자신의 전부를 철저하게 보아스를 통해 이루어질 말씀에 맡겨 버린다 : "당신은 기업 무를 자입니다!"
이미 제3막이 시작되었다.
과연 룻과 보아스의 은밀한 만남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룻은 지금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익숙한 카피(copy)를 생각하게 한다.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이름 모를 한 여인이 자신의 이불 속에 들어와 함께 잠을 자고 있는 그 순간에도 -룻인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는 자신의 무게 중심을 결코 잃지 않았다 : "네가 누구뇨?" 그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도 '너'를 본다. 보아스는 자기 방어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비열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어떤 목적을 위해 이 사건을 약용하지 않았다. 룻을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불리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부도덕한 여인이라고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그리하여 자신의 목숨과도 바꾸어야만 하는 그런 생사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온 룻이다. 그런 그녀에게 보아스는 "네가 누구뇨"라고 묻는다.
때로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부르실 때 쓰시는 표현이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한 사건을 기억하게 된다. 그것은 일명 '야곱의 씨름'이라 부르는 장면이다(창32:22-32). 본문과 창세기의 장면은 서로 유사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구조 비교 - 야곱 vs. 룻
창세기 32장 룻기 3장
*밤에(22) *밤중에(8)
*당신이 네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9)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26)
*네 이름이 무엇이냐?(27) *네가 누구뇨?(9a)
*야곱이니이다(27)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9)
당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생사를 건 만남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주님은 지금도 이처럼 당신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을 향해 물으신다 : "네가 누구뇨?" 도대체 나는 누군가?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는가? 오늘 이 예배와 말씀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인가?
날이 밝으면 형 에서를 대면해야 하는, 죽음보다 더 무섭고 떨리는 문제 앞에서 천사의 옷자락을 붙들고서 "당신이 네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며 절규하고 있는 야곱, 또한 보아스의 이불을 덮고 누워서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9)라며 청혼하는 룻, 그러나 만약 두 사람 모두 이 요청이 거부되는 순간 날이 밝으면 야곱은 형의 칼 앞에, 룻은 음란한 여인이 되어 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룻은 생명을 건 실존의 모습 앞에 서 있다.
바로 이들을 향해 "네가 누구뇨?"라고 말씀하는 소리, 그것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고 무엇인가? "네가 누구뇨?" 이와같은 주의 음성을 듣는 이 시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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