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5과 룻기(3): 룻과 보아스(3장) 5

好學 2011. 12. 26. 21:40

제55과 룻기(3): 룻과 보아스(3장) 5


룻의 '고엘' 승부

룻은 주저하지 않는다.  룻이 사용한 '옷자락'(9절)은 이미 보아스가 사용했던 '날개'(2:12)와 같은 단어다.  보아스는 룻을 가리켜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왔다고 말했었다.  룻은 이 말을 지금 3개월 후에 그대로 받아 보아스 당신의 '웃자락'(날개)으로 자신을 덮어주는 그런 보호받기를 원한다는 뜻의 청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시어머니는 4절처럼 행동하라고 말했으나 룻은 더 적극적으로 정면승부를 하고 있다.  그것은 이어지는 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이것은 오직 말씀대로 되어지기를 원하는 믿음의 선언이다(2:20).  시모 나오미의 말씀 위에 서 있는 믿음을 룻이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순종은 말씀(율법)에 명시된 기업 무를 자를 통한 가문의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알았고, 그 약속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cf, Lev. 25:25).  믿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9b).  룻의 순종은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그녀로 하여금 순종하도록 이끈다.  

(1) 말씀에 대한 믿음은 곧 시모 나오미에 대한 순종을 낳았다.
 
한치의 갈등도 없이 시모와 며느리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상호 신뢰와, 그 말씀대로 살고야 말겠다는 깊은 신앙이 있었다.  생각해 보라.  전혀 상식(풍습, 관습,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모의 요청을 어떻게 룻이 그대로 순종할 수 있었겠는가?  
그녀가 이처럼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둘러싼 한계상황들 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이 더 깊었기 때문이다.  룻이 결혼을 둘러싼 자신의 환경을 극복했다면 당신은 당신을 둘러싼 여러 환경의 힘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있는가?

(2) 룻은 시모 나오미로부터 충분한 리허설을 말씀을 따라 준비했다(3:1-5).

지금 보아스의 타작마당으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사소한 풋사랑에 목숨 걸 때가 아니라는 것을 이 현숙한 룻이 놓칠 리가 만무하다.  보아스 또한 언제나 그가 서 있는 곳에 말씀이 있었고, 그것은 입술로만이 아닌 하나님을 앞세우는 영적 무장이 항상 그를 따랐다(2:4,11-12,20, 3:10,13).  

이 두 사람은 말씀 외에 그 어떠한 것도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오늘 본문이 빛나는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언뜻 보면 남녀간의 사랑이야기 정도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만을 본다면 사랑의 핵심에 하나님의 섭리와 임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그리하여 나약함과 지극히 인간적인 것으로 밖에 사랑을 이해하는 그런 사람일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은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스의 사랑만들기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믿음은 사랑이라는 기차가 탈선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렇듯 남녀간의 사랑은 '믿음'(신앙)이 그 기초에 자리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결과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통해 '자기만들기'에 성공해야 한다.  이와같이 믿음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기차가 레일을 탈선하는 것을 막아준다.  

결혼을 앞 둔 마혼 청년들은 룻처럼 먼저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결혼은 세속적인 여러 조건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혼합물이 아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결혼에 있어서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는가를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아닌 다른 부스러기들을 붙들고 시작한다면 하나님의 큰 축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혼을 시켜야 할 부모들도 시모 나오미처럼, 또한 룻처럼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로 놓고 혼인을 계획하고, 또한 이루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먼저 믿음의 등불을 준비하라.  그래야만 우선순위에 그 믿음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오래 참고 …."  

사랑은 한순간 타다 마는 장작개비가 아니다.  진실한 사랑을 원하나요?  그렇다면 기다리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는다.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는다.  사랑에는 그 중심에 언제나 하나님이 서 있다.  하나님 없는 사랑은 미래가 없다.  왜냐?  당장 눈앞의 달콤한 것 때문에 보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룻과 보아스는 이처럼 우리가 걱정하는 남녀 사이의 위기를 글자 그대로 하나의 걱정에 불과했다는 것으로 가볍게 넘어선다.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그 무엇을 한 순간의 그 무엇으로 날려버릴 사랑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 땅의 것으로 하늘의 것이 그만 공수표(空手票)로 돌아가 버리도록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다.  사랑은 하나님보다 먼저 결정하지 않는다.  사랑은 하나님보다 앞서 행동하지 않는다.  사랑은 하나님을 앞세우며, 하나님 뒤에서 행동하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며 거기에 발맞추어 걸어가는 것이다.  룻이 그랬다.  보아스가 그랬다.  나오미가 그랬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하심이 희미하나요?  그럼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 생각하세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세요.  그런 다음 말씀대로 움직이십시오,  그럼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거예요.  룻 이야기 제3막 1장이 주는 교훈이다.

자, 이제 룻의 청혼은 끝났다.  공이 보아스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보아스가 어떻게 룻의 청혼(求婚, proposal)을 이어갈 것인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들의 앞길을 섭리하실지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