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55과 룻기(3): 룻과 보아스(3장) 1

好學 2011. 12. 16. 22:26

제55과 룻기(3): 룻과 보아스(3장) 1


룻과 엘리멜렉

룻과 나오미

룻과 보아스

룻과 다윗

타락과 회개

구원(1)

구원(2)

회복과 축복

1장

2장

3장

4장


한 밤의 청혼 식장(룻 3:1-9)


더 이상 방황은 없다!  
1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의 영적 방황은 이제 종지부를 찍었다 : "방황하는 신앙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마침내 변화된 사람만이 고백하고, 느끼고,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영적 세계가 나오미에게 힘있게 펼쳐지기 시작한다 :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2:19b,20a)  얼마나 감사한가!  사람은 본시 입술의 열매대로 산다던가?  그랬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실패를 비관하는 나오미가 아니다(1:13c, 20-21).  과거로부터의 출애굽(Exodus)이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사실 변화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세상은 그대로다.  진정한 변화는 외적인 것으로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언제나 변화는 내부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자신이 변하니까 세상이 달리 보인다.  문제는 자신이다.  이 모든 일이 룻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것이 지난 2장이 주는 교훈이다.  룻은 축복의 통로다.  그녀는 환경에 제약받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이삭줍기에 연연할 만큼 가난과 싸우며, 또한 아직은 실의(失意)에서 회복되지 못한 시모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러한 외적 요소들이 룻의 '영적 기상도'를 흐리게 만들지 못했다.

나오미의 꿈이 시작되다.

먼저 살펴볼 것은, 나오미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던 적이 있다.  남편을 따라 모압으로 이민을 갈 때가 그랬다.  그러나 그 꿈은, 나오미의 '모노드라마'는 모압에서 상영되다가 거기서 그만 문을 닫고 말았다.  그녀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실패의 두려움 뿐이다.  다시 일어서기에는 너무 지쳐 있다.  다시 일어나 돌아왔을 때 베들레헴의 관객들은 그녀를 조롱하고 빈정거렸다.  이쯤이면 그녀의 가치는 그것으로 끝난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새 꿈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것이 서두(序頭)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3장의 나오미는 어떻게 1장과 다른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이 부분을 좀 더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1-4절

추수는 끝났다.  남은 것은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는 일이다.  나오미는 추수를 마치기까지 변함없이 룻에게 은혜를 베푸는 보아스를 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보리를 까부는 일은 어쩌면 첫 번째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가 아닌가.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 모두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조용하고 은밀한 시간과 장소를 생각해 낸다.  그리고 룻을 부른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