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과 룻기(2): 엘리멜렉과 룻(2장) 9 |
룻은 나모미의 영혼을 깨어나게 한다.
하나님은 생명을 다 해 헌신하며, 자신의 모든 수고의 댓가를 아낌없이 시모에게 주는 한그루 나무와도 같은 룻을 통해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소생시키신다.
19-23절
(1) "여호와의 복이 그(보아스)에게 있기를 원하노라."(20a)
먼저 나오미의 변화를 보자. 나오미가 다시 고향 베들레헴으로 귀향할 때 그녀의 입술에 있었던 고백들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나를 '마라'라 칭하라! 전능자가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1:20)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1:21a)
"여호와께서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괴롭게 하셨거늘."(1:21b)
그런데 보라. 이제 그녀의 입술에 "복이 있기를"(19), 그것도 "여호와의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20)는 영적인 깨어남이 발견되어 진다. 놀라운 변화다. 우리는 앞에서 이러한 나오미의 변화의 원동력을 어디에서 찾았는가? 예,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오미의 며느리 룻의 '그것'에서부터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룻의 헌신과 사랑을 사용하셨다. 그렇다. 룻은 시모 나오미로 하여금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서도록 쓰임 받는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
그녀는 이제 영적으로 회복되었다. 잃었던 신앙을 다시 찾은 것이다. 어디까지 성장했는가? 예, 하나님의 복을 말하는 자리까지다. 인생의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드디어 나오미는 깨닫고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좀 복을 만들어 보겠다고 -아니, 만들 수 있다고- 몸부림치던 모압에서의 10년이 얼마나 불신앙이며, 죄악이었는가를 지금 나오미는 보고 있다. 여기까지 그녀의 영혼이 잘 된 것이다(요삼1:2). 나오미의 이어지는 고백을 보라.
(2) "그가 생존한 자나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20b).
원문에 보면, 여기 '그'는 하나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번역본 가운데 KJV, NASB, 현대인을 위한 성경은 이 해석을 취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압으로 이사를 가기 전부터 모압 기간을 포함한 지금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변함없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범은 나오미로 하여금 드디어 신앙의 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오미가 어디까지 하나님의 은총을 확장시키고 있나요? 지난 세월까지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은혜 받은 자의 특징은 주신 복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점이다. 동일한 면을 누가복음에서 만날 수 있다. 5장으로 가자.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8절)
이처럼 진짜 은혜를 받은 사람은 부스러기에서도, 한 에바의 보리자루에서도 은혜를 본다. 베드로의 일생을 놓고 볼 때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된 고기는 부스러기였다. 나오미 역시 보리자루와 먹다 남은 음식을 보고 "수고 했구나. 내일은 또 얼마나 주워올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는 자리까지 나아간다. 베드로가 죄인임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3) 보아스는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다(20b).
→ 다음 시간에 하자. 한가지 생각하자면, 율법을 버렸던 자리에서 율법을 사모하는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말씀을 자신의 문제 해결의 근본으로 삼기 시작한다.
(4)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하라(22-23)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무엇인가 무르익어 가는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하루하루 이삭줍기와 자부 룻을 기다리는 두 모녀였지만 그들에게는 꿈(희망)이 있었다. 보아스와 그의 밭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다. 이처럼 당신은 만나기만 하면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인가?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23)
사람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함께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있다. 고난도 함께, 축복(영광)도 함께! 이것이 가정과 같은 교회며, 교회같은 가정의 모습이다. 그녀들은 비록 지금은 가난하고, 참담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다. 하지만 이 비 그치면 저 선 너머로 찬란하게 드러나는 무지개, 바로 이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본다.
룻은 서서히 회복되어져가는 시모 나오미의 신앙을 보며 함께 한다. 또한 시모 나오미는 룻을 통해 이루어져가는 하나님의 회복을 꿈꾼다. 되가는 가정이다. 되가는 교회다. 하나님이 이들을 깨어나게 하신다. 생각해 보자. 아들이 죽으면 며느리는 어떻게 되죠? 그런데 그 며느리가 새사람에게 시집을 가면 또 그 며느리는 더더욱 어떻게 되죠? 그런데 룻은 계속해서 시모와 함께 있다.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부스러기 묵상
이 사람을 보라!
아무 것도 가진 건 없어도 희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복되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축복을 아무 대가 없이 그저 취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하면 룻을 만날 수 있을까, 나에게도 보아스 같은 사람이 나타났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보라. 이 사람들을 만나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이 사람이 되기 위해 값진 댓가를 지불하라! 백마(白馬)를 탄 기사를 기다리지 말고 자신을 준비하라.
시어머니의 신앙이 회복되는 것을 위해 쓰임 받는 며느리가 되십시오!
자녀들의 일생을 영적으로 짚어 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십시오!
변함없이 은혜를 베푸는 보아스가 되십시오!
세상은 보아스, 룻과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룻이기 때문에 보아스를 만났다. 그러니까 보아스를 만나서 룻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보아스이기 때문에 룻을 만난다. 자, 이처럼 영적으로 회복되는 이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계속해서 3막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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